지난 1년을 돌아보며...
지난 주, 휴직 중인 회사에서 이메일이 왔다. 1년마다 갱신해야하는 배우자 해외발령 휴직의 연장을 위해, 서류를 제출해야한다는 안내 메일이었다. 휴직하고 독일에 온지 벌써 1년이 지난 것이다. 주재원 와이프로'만' 살고 싶지 않아 고군분투하면서 지냈던 시간이 순식간에 흘러가있었다. 아쉽게도 아직까진 주재원 와이프 이외의 다른 무언가는 찾지 못했다. 그리고 남은 기간동안에도 어떤 것을 할 수 있을지 명확한 답 또한 찾지는 못하였다. 다들 좋은 기회라고 여기는 주재원과 그 가족의 생활. 직접 겪어보니 좋은 점도 있고, 환상에 불과한 일들도 있었다. 혹시라도 주재원 혹은 주재원 배우자 생활이 예정되어 있으신 분들에게, 장점에도 불구하고, 조금은 삐딱한 시선으로 본 나의 지난 1년을 공유해보려한다.
# 배우자 이외의 인간관계와 나만의 사회생활을 무조건 만들어야한다.
나는 한국에서 상당히 '인싸'였다. 하지만 독일로 오면서, 나의 그 많던 친구들과는 카톡에서만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고, 만나서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남편 한 명만 남게 되었다. 집에서 요리를 즐기며, 출근한 남편이 귀가하길 오매불망 기다리는 일은 나와는 맞지 않았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서 대화하고 에너지를 얻는 일이 내게는 필요했다. 대부분의 주재원 분들은 자녀를 동반하는 경우가 많아, 주재원 배우자들은 자녀를 케어하는데 대부분의 일과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자녀 덕분에 인간관계를 형성할 기회가 좀 더 생기는데, 자녀의 친구나 학부모 모임을 통하여 사람을 사귀는 것이 훨씬 더 쉬워보였다. 아니, 어쩌면 자녀를 위해 불가피하게라도 인간관계를 맺을 수 밖에 없는 경우도 있어보였다. 반대로 말하면, 자녀가 없는 나같은 사람은 누군가를 사귈 수 있는 기회가 오히려 더 적었다.
주재원 와이프가 사람을 사귀기 어려운 이유는 바로 이 곳에 '잠깐' 살고 가기 때문이다. 이 곳에 정착한다고 하면, 직장을 통해서든, 자녀를 통해서든 현지인과 교류할 수 있는 범위가 넓어지고, 현지인이 아니더라도 크고 작은 한인 커뮤니티를 통해서 인간관계를 뿌리내릴 수 있다. 하지만 주재원 가족들은 정해진 기간 잠깐 살고 가기 때문에, 현지 사회에 완벽히 동화되기도 어렵고 (사실 그러고 싶지 않아하는 경우가 많고), 그렇다고 한인 사회에도 깊게 뿌리 내리고 싶어하지 않아한다. 지난 1년동안, 내가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면, 스스로를 고립시킬 수 있는 아주 최고의 환경이었다. 아무도 나와 만날 일이 없고, 아무도 나를 몰랐다.
그래서 나는 독일어 어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사실 어학원을 다니지 않고, 혼자 공부하는 것이 공부 효율은 더 좋았을지도 모른다. 사실 공부보다 사람을 사귀고, 외출을 하기 위해 어학원을 등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정말 좋은 친구들을 사귀게 되었다. 친절하고 적극적인 선생님을 만나 마음을 기대고, 터놓을 수 있는 사람이 생겼고, 어학원에서 만난 세계 각국의 친구들을 통해서 다양한 시각과 문화를 배울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낯선 나라에 이방인으로 살고 있다는 그 마음을 같이 나눌 수 있다는 것이 참 위로가 되었다.
특히 독일의 여름은 짧디 짧고, 그 외에는 대부분 흐리고, 비가 오며, 해가 적게 든다. 내향적인 사람들도 집에만 있으면 쉽게 외로워질 수 있는 환경이다. 어학원이라도 다니지 않았다면, 정말 나는 외로웠을 것 같다. 남편을 제외한 나만의 인간관계가 조금이라도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 여행은 생각보다 자주 다니기 어렵다.
독일로 오면서 유럽 전역을 마음껏 여행 다닐 수 있다는 기대에 가장 설렜었다. 그래서 지난 1년동안 크고 작게 부지런히 여행을 다녔다. 친구와 함께 네덜란드, 이태리 여행도 다녀오고, 여동생과 함께 독일 소도시도 탐방하고, 시부모님을 모시고 독일 남부여행을 다녀왔다. 주말에는 남편과 종종 근교로 나들이나 드라이브를 다녀오기도 했다. 사실 이는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고 있는 동안 휴가와 주말을 이용해 틈틈이 놀러 다녔던 것과 비슷한 빈도로, 딱히 독일이라고 더 많이 여행을 다닌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평소에 여행을 즐기는 나로서는 조금은 부족하게 느껴졌다. 유럽에 살고 있다는 이점을 마음껏 누리려면 왠지 억지로라도 여행을 더 해야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한국에서와 비교해봤을 때, 생각보다 여행을 자주 다니기는 어렵다. 나는 매일이 휴가이고, 쉬는 날인 반면에 남편의 휴가일수는 한국에서의 휴가일수와 동일하다. 하루하루씩 연차를 낼 수는 있어도, 여름휴가 같은 긴 휴가를 매번 쓸 수는 없는 노릇이다. 1년에 한 번 정도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유럽 여행의 물가가 어마무시하다. 얼마 전 남편의 친구가 신혼여행으로 스페인에 온다는 소식에 그 곳에서 접선하려는 계획을 세워보았다. 비행기로 2시간도 채 안 걸리는 거리고, 저가항공편도 취항하고 있어서 가볍게 갔다 올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저가 항공은 전혀 저가가 아니었다. 그리고 2박을 머무는데도 숙박비가 어마무시했다. 유럽의 비싼 외식 물가에 술까지 마시게 된다면, 얼마나 나올지 상상이 안되었다. 2박 3일의 일정에 우리 부부 두 명 비용으로 최소 3백만원 가량 쓸 것이 예상되었다. 물론 친구들과 쌓을 추억을 생각한다면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가 있기도 했다. 하지만 단 며칠에 그정도의 비용을 들인다는 것은 한참 씨드 머니를 모으고 있는 우리 부부의 사정과는 전혀 맞지 않다고 판단되었다. 그래서 결국 여행을 가지 않기로 결정하였다.
휴가 때는 그동안 일한 것에 대한 보상심리로 지갑을 쉽게 연다. YOLO의 마인드가 허락되는 유일한 기간이 아닐까. 그래서 이 짧은 휴일을 위해서 오랜 시간 돈을 모으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여기서 여행자처럼 산다고 해서, 매 번 여행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남편의 휴가 일수와 소득이 한국에서와 비슷한만큼, 휴가도 한국에서처럼 1년에 한 번이어야했다. 총 여행 경비를 두 명이 각각 자기의 돈으로 부담하는 것과, 한 명의 소득으로 두 사람의 여행경비를 부담하는 것은 천지차이이다. 실질적으로 4배가 더 비싸게 느껴졌다. 또, 여행을 크게 즐기지 않는 남편의 성격도 한몫했다. 그래서 결국엔 동네 산책, 근교 드라이브 정도로 여행의 아쉬움을 달랠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다행히 어디 멀리 가지 않아도, 아직까진 충분히 여행하는 기분이 나긴 한다. 그럼에도 아직 가보지 못한 나라들에 대한 여행이 아쉬워서, 서울에서 1년에 한 번 뿐인 휴가를 계획하는 마음으로, 벌써 내년의 여름휴가를 상상해보고 있다.
# 부업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주재원 와이프로서 경제활동을 하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은 아니다. 자녀 케어가 우선이 되는 경우도 있고, 자녀가 없더라도 언어 등 제약사항들로 주재국에서 직장을 얻기가 쉽지가 않다. 독일의 경우에도 현재 경제 사정이 좋지않아, 현지인들도 취업하기가 어려운 실정이라는데, 잠깐 머물다가는 이방인에게 기회는 더 귀하다. 물론, 나는 현재 구직활동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으며, 겸직불가 조항으로 경제활동에 종사할 수 없다.
그럼에도 돈이 아닌 무언가 성과가 보이는 일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유튜브, 블로그, 브런치 등 SNS 활동을 시작해보았다. 이 플랫폼들은 수익창출도 할 수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단순히 돈을 벌려는 목적보다는 나만의 경험들을 기록하고 공유를 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고, 이를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함께 공감하고 싶었다. 부가 창출된다면 좋겠지만, 그건 부차적인 문제였다.
직장인 3대 허언 중에 하나인 유튜브 하겠다는 것부터 시작해보았다. 주제가 없어도 쉽게 시작할 수 있는 브이로그는 단순히 일상을 담는 것 같지만, 생각보다 정해진 시나리오나 사전에 방향이 정해져 있지 않는 이상 편집하기가 어려웠다. 그게 아니면 전부 찍고, 거기서 스토리를 만들어내 추려내야했는데, 일상의 모든 순간에 카메라를 들고 있기가 참 어색하고 습관도 들지 않았다. 몇 개 찍고 편집해보다가 내가 봐도 도저히 재미가 없어 그만 두었다. 재미있는 영상을 만드는 것도 타고난 감각이 필요한 일이었다. 여행 블로그도 마찬가지였다. 블로그 특유의 알고리즘을 위해 정해진 말투나 포멧을 사용하는 것이 좋겠지만, 나는 그냥 내 방식대로 써내려가기 일수였다. 그래도 꾸준히 올려보았는데,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 못하니 그 동력이 쉽게 상실됐다.
그래도 브런치에서는 나름 성과가 있었다. 매 번 연결되지 않는 단편적인 글들을 연재하고도, 독자님들을 70분이나 얻게 되었다니! 나름 뿌듯하고, 참 감사한 일이다. 이제 매 주 어떤 주제로 글을 쓸까 고민하고, 월요일 연재 마감 기일에 쫒기기도 하는 모습이 제법 작가 같지 않나라는 생각에 혼자 슬쩍 웃어보기도 한다.
감각이 좋으신 분들은 빈티지 제품을 수집하거나, 명품 해외 직구 등과 같이 진짜 부업을 하시기도 한다. 요즘엔 다양한 플랫폼들을 통한 다양한 부업 루트들이 있지만 사실 말처럼 쉽지 않다. 감각과 끈기가 필요하다. 나에게는 영상 편집의 감성은 없지만, 글 쓰는 끈기는 아직까지 있는 것 같다. 어렵더라도 계속 이렇게 글쓰기를 해나가고자 한다.
# 가족에 집중할 수 있다.
그래서 결국 주재원 와이프는 가정에 아주 집중할 수 밖에 없다. 나는 한국에서 사실 그리 가정적인 사람은 아니었다. 결혼 전에도 부모님과 동생들과 보내는 시간보다 밖에서 친구들과 놀거나, 사회생활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사람이었다. 집안일은 부끄럽게도 많이 도와드리지 못했고, 요리의 요자도 쳐다보기 싫었다. 하지만 이 곳에서는 남편이라는 단 한 명의 가족을 위해 새삼 헌신적인 사람이 되었다. 각종 집안일을 하고, 요리를 하고, 남편을 챙기는 일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당연해졌다. 독일에 방문한 여동생이 나의 이런 가정적인 모습을 본 후, 언니에게 이런 모습이 있었냐며, 살림을 하고 있는 내 모습에 꽤나 놀란 눈치였다. 주재원 와이프가 되고 싶지 않았지만, 착실하게 '와이프', '양처'의 역할을 무의식적으로 잘 수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해외에 지내다보니 원래의 가족들과도 더 끈끈하고 애뜻한 마음이 생겼다. 가급적 매 주 엄마와 영상통화를 하면서, 오히려 더 안부를 묻고 대화를 하게 되었다. 특히 여행을 올 때면 짧게는 며칠, 길게는 몇 주 함께 생활하면서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지난 여름에는 사촌동생이 독일로 여름 휴가를 왔다. 명절 때 서로 안부를 물으며 웃으며 지내는 사이었지만, 동생의 속깊은 이야기까지 들어보면서 교류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 사촌동생과 지내는 며칠동안 서로 지난 세월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하고, 고민도 들을 수 있는 아주 소중한 시간이었다. 사촌동생은 돌아가서 여행지를 관광한 것보다 나와 함께 보낸 시간이 더 좋았었다고 했다.
시부모님도 2주 넘는 시간동안 머물다 가셨다. 사실 시부모님과 오랜 시간 함께 생활하는 것은 불편함이 더 많았다. 하지만 그 분들과 함께 지내면서 남편이 어떤 어린 시절을 보냈고, 어떻게 자라왔는지, 그래서 왜 지금의 성격을 갖게 되었는지 알 수 있었다. 오히려 남편을 더 알고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한국에 있었다면 가족과의 이런 깊은 시간들을 갖기가 오히려 더 어려웠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해외 생활 덕분에 얻은 좋은 시간이었다.
그리고 결국 마지막 고민은 자녀 계획으로 끝나게 된다. 남편과 나 둘로는 무언가 가족의 구성이 조금은 미완성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지난 글들에서 자녀 계획에 대한 고민을 토로한 적이 있는데, 여전히 자녀를 갖는 것은 답이 없고 고민되는 일이다. 독일에서 남은 시간동안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얻어서 갈 수 있을까.
# 한국에서나 해외에서나 결국은 부부사이가 제일 중요하다.
어찌보면 재미있기도, 어찌보면 외롭기도 한 주재원 와이프의 일상 속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남편과의 관계이다. 남편과 나는 성격과 성향이 아주 많이 다르다. 물론 그 다른 점이 상호 보완이 된다고 생각해서, 그 다름에 이끌려 사랑하게 되었고 결혼하게 되었다. 하지만 신혼 극 초기에는 남편과의 여러가지 생활 습관 차이, 의견 차이로 크고 작은 다툼이 있었다. 그래도 한국에는 친정 가족도 있고, 친구도 있고, 당장 다음 날 출근해야하는 직장도 있었다. 남편과 싸우더라도 내 삶에 집중하면 되었다. 그래서 빠른 화해도 가능했다.
하지만 독일에서 남편과 싸우고 난 후에, 이 곳에는 남편 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 사실은 우리 사이에 더 큰 갈등을 만들어 내기도, 혹은 내 멘탈에 더 큰 좌절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남편에게 서운할 때마다, 내 마음 속에서는 나도 모르게 "너 때문에 내가 독일와서, 경력도 단절 되고..." 라는 식의 남편 탓과 원망을 하게 되었다. 사실 이 모든 것은 나의 선택과 의지, 남편과의 의견 조율로 이뤄진 것들이었는데도 말이다. 남편은 직장에 계속 다니길 권유하였지만, 휴직을 결정한 것도 나였다. 남편은 독일에 딱히 오고 싶지 않았지만, 내 뜻에 따라 독일에 지원하게 되었다. 하지만 내가 외롭고 좌절스러운 상황에 마주할 때면, 회피하고 싶은 나에게 남편은 좋은 핑계거리가 되었다.
물론 남편과 사이가 안 좋을 때면, 카톡이나 영상통화로 한국에 있는 사람들에게 미주알 고주알 털어놓을 수도 있었다. 그러면 답답한 마음이 조금은 해소될 수 있겠지만, 그러지 않았다. 친정가족에게 이야기하면 걱정을 할 것이고, 친구들에게 이야기하면 남편의 흉은 결국 내 얼굴에 침 뱉기이기 때문이다. 결국 지금의 '주재원 와이프'라는 선택은 내가 했다는 것을 잘 받아들여야만 했다. 주재원 배우자 생활의 장점보다는 경력단절로 인한 단점에 대해 늘 나는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가정주부로만 남고 싶지 않아 주재원 와이프 생활을 늘 삐딱하게 바라보았다. 하지만 분명 내가 남편 덕분에 누리고 있는 장점들도 많았다. 나는 남편 덕분에 휴식을 취하며,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하며 맘편하게 지내고 있다. 경력이며, 돈이며, 성과며 이런 것들은 어찌보면 피상적인 것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결혼함과 동시에 우리는 서로를 위해 각자의 삶의 일부분을 내어주기로 결정하였다. 이 중요한 사실을 늘 잊고 사는 것 같기도 하다. 한국에서든 해외에서든 결국엔 부부사이의 깊은 존중과 이해가 있어야 가족 밖에 없는 해외생활을 잘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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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독일 뷔르츠부르크 레지덴츠 궁전, 거울의 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