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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럭키젤리 Oct 21. 2024

17. 친구를 집에 초대하고 싶은데요,

해외에서 한식 상차림 초대가 어려운 이유

'밥 먹었니?', '언제 밥 한 번 같이 먹자' - 한국에서 사회생활을 하고 인간관계를 맺는데 이처럼 자주 쓰이는 인사말이 있을까? 함께 밥을 먹으며 나누는 정(情)이 한국 문화의 주요 특징 중에 하나임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 같다. 나 또한 성인이 된 이후에는 여러 사람들과의 식사, 술약속으로 늘 바쁜 저녁시간을 보내왔었다. 식사 약속은 대부분 외식으로 해결할 수 밖에 없었는데, 결혼 전에는 부모님과 함께 살았기 때문에 손님초대가 아무래도 어려웠고, 결혼 후에는 좁디 좁은 신혼집에는 발 디딜 틈도 없어 제대로 된 집들이도 하지 못했다. 외식 장소를 정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상대방과의 동선이 겹치는 지역을 고르고, 한식/양식/중식/일식 등의 장르를 고르고, 그 후에야 식당 분위기가 소위 '핫플레이스'인지를 고려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사소한 반찬 투정 정도의 편식은 있지만, 딱히 가리는 음식이나 못 먹는 음식이 없는 편인데, 내 지인들 또한 대부분 나와 비슷한 식성을 가지고 있어 메뉴 선정에는 큰 어려움은 없었다.


하지만 독일에 온 이후로는 많이 달라지게 되었다. 매일같이 있었던 저녁 약속이 없어졌다. 한국에 비해 극히 제한적인 인간 관계로 함께 식사를 하자고 제안할 친구 자체가 거의 없는 것은 당연했다. 종종 어학원 선생님, 친구들과 식사 약속을 잡긴 했지만, 따뜻한 끼니보다는 맥주 한 잔, 커피 한 잔과 같은 가벼운 자리가 더 잦았다. 역시 같은 한국인들끼리만 '밥으로 통하는' 것일까. 오히려 남편의 한국인 직장 동료들과의 식사, 술 자리를 자주 가졌는데, 대부분 외식으로 해결하였던 한국에서와는 달리, 우리 집으로 초대한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였다. 서울에서보다 넓고 쾌적한 집이라 손님을 초대하는 것이 전혀 부담이 되지 않는 것도 있었지만, 사실은 독일의 맛없고 비싼 외식문화 때문이 더 컸다. 독일은 식자재물가는 저렴한 반면에, 인건비가 많이 들어가는 외식 비용은 만만치가 않다. 그런데 또 지불하는 돈에 비해서 딱히 음식이 엄청나게 맛있는 것은 아니라, 비용 대비 큰 효용을 느끼지 못하는게 문제였다. 그래서 요리하는 수고로움이 있더라도, 손님을 초대해 식사를 직접 대접하는 편이 더 만족스러웠다. 그리고 모두 한국 사람들이라 메뉴선정 또한 어렵지 않았다. 한국인이면 누구나 좋아하는 된장찌개, 제육볶음, 해물파전 등 대표 한식들은 고국음식에 대한 그리움을 함께 달래기에 충분했다.


요리에 소질이 없는 나였지만, 몇 번의 손님초대 이후 조금은 자신감이 붙게 되었다. 손님들 모두 맛있게 먹고 칭찬해준 덕이 컸다. 그래서 나는 나의 외국인 친구들도 초대하고 싶어졌다. 같이 밥을 먹으며 더 가까워지고 싶었다. K-Food에 대한 인기가 그 어느 때보다도 높아진 요즘, 한국 음식과 식문화를 함께 소개하는 기회 또한 갖고 싶기도 했다. 초대하고 싶고, 따뜻한 식사를 대접하고 싶은 몇몇 친구들의 얼굴을 떠올려 보았다. 그리고 어떤 메뉴를 하면 좋을지 구상해보았다. 그리고 이내 난관에 봉착하였다. 도무지 어떤 메뉴를 만들어야할지 감이 안잡혔기 때문이다. 종교적인 이유로 돼지고기 혹은 소고기를 안 먹는 친구, 개인의 신념에 따라 고기와 생선을 아예 안 먹는 친구, 원래 매운 것을 못 먹는 친구, 건강을 위해 설탕을 안 먹는 친구...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온 친구들의 문화적 배경이 각기 다양한 만큼, 그들의 식성 또한 정말이지 너무나도 다양했다. 사실 전에 이 친구들과 한식당에 함께 간 적이 있었다. 그들의 각기 다른 식성에 맞춰 메뉴를 하나하나 설명하고, 결정하는데 도움을 주는데만 30분 이상이 소요되어 진땀을 꽤나 흘렸던 기억이 떠올랐다. 모든 이들의 취향을 반영한 손님 초대상을 차리려면, 도대체 몇 개의 메인 요리를 준비해야하는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차라리 채식주의, 그것도 비건(Vegan)* 식단으로 한식 손님상을 차리면 누구나 다 가리는 것 없이 먹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실제로 어학원 친구들과 채식 뷔페를 간 적이 있는데, 개인 선호에 따라, 그 누구도 거부감 없이 잘 먹었던 것이 떠올랐다. 그런데 다들 아실지 모르겠다. 의외로 한식 메뉴는 비건으로 만들기 어렵다는 것을.




십 여년 전, 교환학생 시절 알게 된 미국인 친구인 V가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녀는 비건이었는데, 그 때만 해도 나는 채식이라고 하면 단순히 고기 덩어리만 안 먹는 것인 줄 알았다. 지금도 채식의 여러 종류를 가리키는 용어들이 헷갈리는 마당에, 그 때 나에게 '비건'은 더욱이도 낯선 개념이었고, 한국에 그런 식당도, 메뉴도 거의 없었다. 나는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한참 인기가 좋았던 삼겹살 집을 뒤로 하고, 인사동에 있는 한 사찰음식점을 예약했다. 스님들은 고기를 먹지 않으니깐, 당연히(?) 비건 메뉴일 것이라고 짐작했다. 하지만 그 곳에서도 그녀가 먹을 수 있는 메뉴는 거의 없었다. 두부전골의 육수는 멸치 육수 베이스였고, 각종 먹음직스러운 나물과 김치는 액젓으로 양념한 것이었다. 다른 식당에서는 비빔밥을 시켰는데, 소고기 볶음 고추장이 나와 고추장을 덜어내고 밥을 비벼야 했던 일도 있었다. 직장을 구하기 위해 내한하였던 V는 몇 개월 뒤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직장을 구하지 못해서, 한국 문화에 적응을 못해서가 아니었다. 먹을 수 있는 게 거의 없어서였다.


독일에서 주부가 되어 여러 한식을 직접 요리 하다보니 생각보다 한식을 '순수 비건'으로 만드는 것은 조금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러가지 나물 등 채소를 기반으로 한 반찬들과, 주로 고기로 구성되는 메인 메뉴가 영양학적으로 균형이 잡혀 건강식으로 여겨지기도 하며, 그래서 전세계적인 K-Food 열풍을 이끈다고들 한다. 하지만 결국 한국음식의 깊은 맛을 완성하는 것은 장과 더불어 육수, 액젓이고, 이 것이 바로 감칠맛을 책임지는 핵심요소이다. 하다못해 요리 초보자들의 치트키인 다시다조차도 고기와 멸치 베이스다. 이들 없이 요리를 만들면 비건 음식을 완성할 수 있겠으나, 맛에 있어서 완성도가 있을지는 의문스럽다. 그래서 한식을 비건 요리로 만들려면, 더 숙련된 요리 실력과 더 많은 정성이 들어가야 하는 것은 불가피해보인다. 


그래도 지금 V가 한국에 온다면 다행히 그 때보다는 확실히 먹을 수 있는게 많을 것 같다. 요즘에는 한국에서도 채식을 지향하는 사람들이 꽤나 많아져서, 카페에서는 식물성 우유 변경옵션이 대체로 가능하고, 식당에서도 채식 메뉴 선택지 또한 꽤나 많아졌다. 채식을 하는 유명 연예인을 앞세운 대기업의 채식 식품 광고도 공중파에 나오는 것을 보면, 십 여년 전에 비해서는 확실히 트렌드는 달라졌다. 


그런데 이렇게 개인의 음식 취향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움직임이 확산되는 것과는 별개로, 손님을 초대하는 것은 조금 다른 영역이었다. 호스트로서 여러 친구들의 각기 다른 메뉴 취향을 반영하려고 하니, 머리가 아팠다. 가만 생각해보니, 한국에서는 내가 손님으로 초대 받을 때, 딱히 내 식성을 미리 알려준 적이 없었다. 호스트가 먼저 물어온 적도 드물었던 것 같다. 그냥 초대해주는 호스트의 정성에 감사하며, 차려진 상을 다 맛있게 잘 먹었다. 그런 내가 독일에서 친구들의 모든 취향에 맞춰 초대하려고 머리를 쓰다보니 '그냥 정성껏 차려진 대로 - 주는 대로 감사히 먹어야하는 거 아니야...?' 라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아무리 다양한 식성이 존중받는 시대가 되었다고 해도,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는 '무언가를 가려 먹는 다는 것', '차려진 상에 토를 단다는 것', '다같이 먹는데 나만 안 먹는 것이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어디엔가 불편한 느낌이 들었다.




독일에 오기 몇 년 전, 나는 한동안 밀가루와 액상당류를 먹지 않았던 적이 있었다. 업무스트레스로 인해 먹은 것들을 잘 소화 시킬 수가 없었기 때문에 내린 특단 조치였다. 점심 시간에는 항상 부장님 이하 부서원 다같이 점심을 먹었는데, 아무도 강요하지 않았지만 효율적인 주문을 위해 짜장면을 시키면 다같이 짜장면을 먹는 그런 분위기였다. 식단 제한 이후 나는 당당히 볶음밥을 시키곤 했고, 다행히 부장님도 눈치를 주기 보단, 내 식단관리를 지지해주시는 편이었다. 식당을 고를 때도 부서 동료들 또한 이런 내 식단에 맞춰주곤 했는데, 사실 밀가루 음식을 제외하면 직장인이 시간 내에 빠르게 먹을 수 있는 선택지는 꽤나 줄어들 수 밖에 없었다. 그들의 배려가 고마웠지만, 항상 배려 받는 내 입장이 마냥 편하지만은 않았다. 다같이 먹는데 너무 혼자 유난 떠는 것은 아닐까, 아무도 눈치 주지 않았지만 스스로 눈치가 보여, 하루 이틀 어기는 날이 생기기 시작했다. 


집으로 손님을 초대하는 상황에서도 그렇다. 호스트는 손님에게 보통 '무엇을 먹고 싶은지' 선호사항을 먼저 물어보기도 하지만, 대체로 알아서 맛있는 음식을 정성껏 준비한다. 굳이 못 먹는 음식이나 거부하는 음식이 있는지 물어보는 대화가 오간 적은 내 경험상으론 드물었다. 대체로 가리지 않고 잘 먹을 것이라는 전제를 가지고 있었다. 초대 받은 손님도 호스트가 차려준 음식을 편식하거나 거절하는 일도 흔치 않다. 상대방의 정성을 생각해서라도 잘 먹어야만 했다. 어렸을 때 친구 집에 놀러가면, 친구 부모님이 차려주신 음식을 편식하지 않고 맛있게 잘 먹는 것이 예의 바른 행동이었다. 어쩌면 먹을 것이 귀했던, 배고팠던 시절을 겪었던 조부모님, 부모님 세대의 영향이 젊은이들에게까지도 미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주는 대로 잘 먹는 것이 중요한 시절이 있고, 그래서 한국 사회는 다 잘 먹는게 미덕으로 여겨졌을지도 모른다. 오히려 가리는 음식이나 편식하는 음식이 있다면 부끄러운 일이고, 그래서 먹어보라는 권유 혹은 꾸중을 듣거나, 애기 입맛이라는 핀잔을 듣는 일이 오히려 더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작년에 우연한 기회에 독일 문화센터에서 요리 강좌를 들은 적이 있었다. 본격적인 수업 시작 전 수강생들이 돌아가면서 간단한 자기 소개를 하는데 조금 특이했다. 다들 좋아하는 음식을 말함과 동시에, 알러지 유발 물질, 먹지 않는 음식들을 서슴없이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안 먹는 것이 없는 나는 딱히 할 말이 없어 오히려 민망했다. 그 순간 유당불내증이 떠올랐다. 한국인의 대부분이 유당불내증을 가지고 있지만, 초등학교 내내 의무적으로 (혹은 억지로) 우유를 마셔야했으며, 소잘라떼가 출시되어 배앓이 없이 라떼를 마실 수 있게 된 것이 몇 년이 채 안된 일이었다. 나는 유당불내증이 있어도 딱히 우유를 경계하진 않는 사람이었고, 마신다고 해서 아주 심각한 일이 생기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굳이 '저는 유당불내증이 있다' 고 소개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무런 음식 선호도가 없는 내가 오히려 밋밋한 사람처럼 보여지는 것 같았다. 


해외에 나와보니, 사람들은 자신이 먹지 않는 음식에 대해서 늘 당당함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종교적인 이유로 나라 전체가 특정 음식을 금하는 경우도 흔하다. 종교활동을 열심히 하지 않더라도, 먹는 부분은 웬만해선 지킨다. 히잡을 쓰지 않는 독립적인 무슬림 여성도, 돼지고기는 먹지 않았다. 서구권에서는 손님을 초대할 때 보통 무엇을 못 먹는지를 음식 선호사항을 철저히 조사하는 편이다. 뉴질랜드에서 살고 있는 사촌동생의 결혼식 때, 손님들의 알러지 사항 및 채식 여부를 일일이 구글폼으로 받아 정리하여 개별적인 메뉴들을 준비했던 것이 생각났다. 한국의 결혼식에서 갈비탕이 일품요리로 나오는 곳에 아무도 뭐라하지 않는 것과 비교해보면 달랐다. 서양에선 손님을 초대할 때, 그들의 음식 선호도를 하나하나 잘 아는 것이 중요하다. 호스트의 차린 정성보다, 호스트는 먼저 손님을 위해 최대한 그들의 식성을 맞추고 배려해야할 의무가 있어 보인다. 


독일와서 처음으로 독일식 레스토랑에 간 날, 나는 메뉴판에 아래 아주 깨알 같이 달려있는 각주에 놀랐다. 메뉴 하나하나 마다 각주를 달아 들어가는 재료와 성분, 알러지 유발 물질을 꼼꼼이 표시해놓았는데, 마치 논문의 각주 같아 보일 지경이었다. 손님들의 음식 선호도를 최대한 고려하려는 노력이었다. 반면에 친구들과 함께 간 그 한식당에는 깨알 같은 각주가 전혀 없었고, 그 대신 내가 구두로 직접 설명할 수 밖에 없었다. 나 없이 친구들끼리만 그 곳에 갔었다면, 그들은 그들의 식성대로 주문하는게 과연 가능했을까. 독일 식당 대부분 비건 요리가 한두개는 마련되어 있음은 물론이고, 마트에서 비건 코너에 제품은 다양하다. 한국에서는 보지 못했던 (액젓이 첨가되지 않은) 비건 김치까지도 있는게 놀라웠다. 비건은 물론 다양한 할랄 제품들을 보며 요리 자체가 다양하진 않아도, 많은 이의 식성의 다양성을 반영한 것이 인상 깊었다.





한국만큼 가리는 음식 없이 다 잘 먹는 식성을 가진 나라도 드문 것 같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다양하고 맛있는 요리가 발달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독일음식은 아주 단조롭다.) 해외에 살아보니, 종교적인 이유로 혹은 본인만의 신념으로 혹은 건강 상의 이유로 경계하거나 스스로 거부하는 음식이 있는 나라들이 훨씬 많은다는 것이 느껴진다. 그리고 내가 호스트가 되어 친구들을 초대하고 싶으면, '(내가 알아서) 정성껏 차렸으니, 맛있게 먹어' 가 아니라 '너희의 식성에 맞게, 내가 대접할게'의 마인드가 되어야 했다. 그리고 내 친구의 식성의 다양성까지 고려해서 초대하기엔 아직까진 나의 요리 실력이 너무 미천하다고 느껴진다. 차라리 레스토랑에 가서 각자 취행대로 본인 것을 시키고, 각자 계산하는 방식이 훨씬 더 편리하고 합리적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럼에도 한국 음식을 조금이라도 전파하고 싶고, 좋은 친구들에게 조금이라도 내 정성을 담아 대접하고 싶은 이 마음은 어찌한단 말인가. 이슬람 친구를 위한 소갈비찜, 비건 친구를 위한 고기 없는 잡채, 된장찌개와 쌀밥. 지금까지 메뉴 구상은 이렇다. 연말을 기념하여 친구들을 초대해서 한식을 소개하기에 구색이 잘 맞을까, 오늘도 메뉴고민은 계속 된다. 






*비건(Vegan) : 균류, 해조류, 채소류, 과일만 섭취하는 형태의 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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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독일 브륄 아우구스투스부르크성의 다이닝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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