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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려되었습니다 Dec 20. 2023

산책 노예의 반성문

내가 더 잘할 테니, 아프지만 말아라

 강아지들과 함께하면서 가장 웃음이 나는 순간이 있다면 이놈들이 각자 성격도 취향도 체질도 모두 다르다는 것을 알아챌 때가 아닐까 싶다. 우리 집처럼 다견 가정일 경우엔 더 여실히 드러난다. 어떤 상황이 주어졌을 때 해결하는 방법이 강아지라고 다 똑같은 게 아니라, 제 나름대로 사고를 하고 각자 다르게 문제를 해결한다는 게 너무나 기특하고 웃기지 않은가.




 지난봄에 일어난 해프닝이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따사로운 날이었고, 산책 노예인 나와 어머니는 그날도 어김없이 산책 시중을 들고 있었다. 4마리를 함께 산책하는 것은 아주 급한 일이 있을 때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야만 치를 수 있는 거사이기 때문에, 평소엔 어머니와 나, 한 마리씩 맡아서 산책을 두 번 하곤 한다. 보통 어머니는 얌전한 ‘바다’ 나 ‘장군이’의 리드 줄을 잡고, 나는 그보다 좀 하드한 레벨의 ‘콩자’ , ‘밍키’의 리드 줄을 잡고 희생하는 편이다.



 예쁜 사진 스팟이 있으면 아이들을 앞에 앉혀놓고 재롱을 떨듯 해서 사진을 꼭 찍고 마는 나는 그날도 예쁘게 핀 벚꽃 앞에 콩자를 앉혀 놓고 연신 “기다려"를 외치며 사진을 찍기 위해 뒤로 천천히 물러나고 있었다. 다른 애들은 얌전히 기다려 주어서 예쁜 사진을 건졌는데, 콩자 놈만 사진을 찍으려고만 하면 옆에 있는 벚꽃을 입에 넣으려고 야단인 것이다. 그 모습이 웃기고 귀여워서 사진 찍으려는 나와 어머니, 그리고 구경하는 사람들까지 웃음이 터져서 깔깔거리던 찰나에 콩자는 갑자기 벚꽃 잎이 목에 걸렸는지 한참을 캘록캘록 거리더니 뱉어낸 벚꽃 잎을 다시 주워 먹었다. 콩자 참 웃기는 애지 않냐며 돌아오는 길에 어머니와 수다를 떨다가 문득 아까 삼킨 벚꽃이 생각났다.


 여기저기 검색해 보니 강아지에게 위험한 꽃들이 있었고, 그중 벚꽃도 포함되어 있는 것을 보고 흠칫했다. 나의 무지함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 아닐 수 없다. 콩자 이 녀석은 아무것도 모른 채 멀쩡했지만, 콩자만 가지고 있는 알레르기도 유독 많아서 걱정했다. 다행히 소량 섭취했기 때문에 문제는 없었는데 콩자가 꽃을 와구와구 먹을 때 사람들과 같이 깔깔대며 웃었던 나 자신이 너무나 창피해서 그 장면이 떠오를 때마다 얼굴이 붉어지는 느낌이다.


 무엇을 먹어야 하는지, 그리고 무엇을 피해야 하는지도 몰랐던 주제에 “다른 애들처럼 얌전했으면 얼마나 좋아!”라고 괜히 분풀이를 하는 못난 집사는, 오늘도 리드 줄과 똥츄를 집어 들고 산책 시중을 들러 문 밖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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