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듯한 직장을 가져야지.’, ‘어떤 회사 갈 거야?’, ‘회사는 함부로 그만두는 거 아니야. ’
살아오는 동안 우리는 끝없이 세뇌당했다. 대자본인 회사의 참 착한 노예로, 직장인으로 살아갈 것을 말이다.
지난날을 돌아보면 난 세뇌가 잘된 참 괜찮은 노예였다. 철저히 회사에 귀속돼 야근은 물론 주말 출근도 불사했다. 그렇게 회사는 내 세상의 전부가 되었고 나는 철저히 회사의 노예로 길들어져 가고 있었다.
기자 출신이니까 취재부터 편집, 발행까지 내게 떠넘기며 일말의 죄책감도 없이 ‘왜? 못해? 기자 출신이라며’로 일갈하던 그들. 군대에서 중대장이 산이 시야를 가린다는 한 마디에 삽으로 산을 옮기던 육군 장병들이 이런 기분이었을까.
군대에서 느끼는 허망함과 어이없음은 이런 것일까를 삼키며 아무 말 없이 생전 처음 8면 지면을 혼자 채우고, 난생처음 인디자인이라는 프로그램 지식을 동냥해가며 신문을 만들었던 나였으니까.
강아지풀 같이 살랑이는 봄바람이 부는 어느 날 다민이를 만났다. 그녀와 나는 20살, 꿈을 함께 그리던 친구였다. 나는 힘이 없는 자들의 아픔을 알리는 확성기 같은 기자가 되겠노라 재잘거렸고, 그녀는 세상을 원 없이 사랑하는 인생을 살아보겠다며 보육원을 운영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녀와 만나 2시간쯤 떠들었을까? 갑자기 내게 툭툭거리는 말투로 “일어나. 서점가자.”라며 다 마시지도 못한 내 1시간 노동력에 맞먹는 아이스 바닐라라떼를 남겨두고 일어날 것을 요구했다.
그렇게 도착한 교보문고. 그녀는 잠깐 기다리라며 나를 계산대 앞에 내버려둔 채 사라졌다. 그리곤 10분쯤 흘렀을까? 알 수 없는 미소와 가벼운 발걸음으로 두껍고 재미없어 보이는 책 한 권을 품에 안고 내게 다가왔다. 그러고는 내게 “야, 나 아직 경제활동을 못해서 돈 없는 거 알지?” 안다. 그녀는 보육원을 운영할 자금을 모으기 위해 아직 공부하고 있다. 갑작스레 비루한 자신의 지갑 사정을 털어놓는 그녀가 당황스러웠다. “그니까 부채의식을 갖고 이 책 다 읽어.”라며 건네준 책은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라는 책이었다.
무슨 의미로 이걸 건넨 걸까를 생각하며, 다음날 출근길 지하철에서 그 책을 펼쳐 들었다. 20쪽쯤 읽었을까? 마음이 불편해 견딜 수가 없었다.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그 책은 철저히 노예로, 직장인으로만 살아가는 내 모습을 가난한 아빠를 통해 그려나가고 있었다. 회사가 세상의 전부인냥, 회사에 철저히 귀속돼 살아가는 참다운 노예.
내가 생각하는 방향, 대화의 주제 모두 가난한 아빠와 비슷했다. 그렇게 그 책은 나를 부정했다. 책 읽는 낙으로 살아가는 나였지만, 나를 부정하는 그 책을 읽는 건 곤욕이었다. 포기할까? 라는 생각이 들 때면 “야, 나 돈 없는 거 알지?”라는 그녀의 말이 떠올라 쉽사리 포기하지도 못했다.
그렇게 일주일간 꾸역꾸역 억울하게 매 맞는 심정으로 책을 읽어 나갔다. 그 책을 덮고 한 일주일을 고민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 고민 끝에 한마디가 머릿속에 번뜩였다. ‘아! 우리 아빠는 내가 노동자로만 살라고 나를 낳아 주신 게 아닌데.’ 내 마음에 느낌표가 떴다. 그 이후 나는 ‘나로 살기 위해선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고민했다.
고민 끝에 나는 직장이 아닌 직업을 가진 나, 노동은 내 삶을 그려나가는데 필요한 생계 수단에 불과하다는 것을 끝없이 되뇌었다. 그렇게 나는 야근수당 없는 야근은 절대 불가하다 보이콧했고, 회사가 당연하게 야근을 강요하는 건 착취임을 밝혔다. 주말 출근은 정말 특수한 경우가 아니면 절대 응할 수 없다고도 말했다.
당당히 노예 탈출을 선언하는 날 보는 그의 시선에는 ‘애가 미쳤나?’가 담겨있었다.
그 눈빛에 나 역시 눈빛으로 답했다. ‘그래. 미쳤다.’ 그날을 기점으로 나는 직장을 내 삶의 일부로 분리하는 데 성공했다.
회사가 내 삶의 일부임을 인정하고 나니, 약간의 불안감은 느껴지지만 배우고 싶은 게 많아졌고, 글쓰기라는 큰 주제로 3개의 직업을 가졌다.
노예의 삶에서 허우적거리던 내가, 나만의 삶을 그릴 수 있게 해준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 꿈과 오롯한 나의 삶을 이야기하던 20살의 나를 기억하고 책으로 때려준 그녀에게 감사하며 이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