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 대생들은 참을성이 없고 피곤하다?
순응이 미덕이면 왜 촛불 혁명에 동참했나.
‘요즘 것들’, ‘잰 좀 이상해, 매사에 불만이야.’
내가, 아니 우리가 회사에서 듣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 나는 여전히 막내다.
연차로? 아니, 나이로. 참 나이로 줄 세우기 좋아하는 한국에서 막내라니. 야자 타임을 1년씩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 피곤한 우리가 살아가는 오늘을 읊조려 본다.
우리는 사법 농단, 촛불 혁명, 미투 운동을 경험하고 그 일에 함께했다. 심지어 우리는 연대의 힘으로 국정농단 주역들을 처단하고 대통령을 하야시킨 역사적 순간에 광화문에 있지 않았나.
그런 우리는 부당함에 입 닫기보다는 문제 제기를 통한 공론화, 공론화를 통한 구성원들과의 소통, 끝내 문제를 해결해내는 데 익숙한 사람들이다.
참을성이 미덕이라는 건 옛날 옛적 곰이 쑥과 마늘을 먹던 시절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 부당함에 참아내는 것, 그 또한 방관이고 동조임을 우리는 안다.
이런 우리의 시대정신은 회사에서도 이어지기 마련이다. 현재 나는 비영리 단체에서 일을 하고 있다. 으레 비영리 단체들의 기본 목표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있다.
기자는 세상의 썩은 부분을 조명해 도려내는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실상은 영업의 또 다른 이름에 지나지 않았음을 깨닫고(물론 이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이다.) 더 나은 세상에 일조하고 싶어 2번째 직장으로 비영리 단체를 선택했다.
기자 일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고,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나는 여전히 시끄럽고 피곤한 존재다.
입사한 지 1달쯤? 시용 기간. 즉 해고가 언제든 자유로운 그 시기. 나는 처음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우리가 받는 월급 뻔하다. 기본급+각종 수당+모든 시간 외를 퉁치려는 시간외 수당. 그런데 작년만 해도 기본급이 최저를 넘지 않으면 근기법 위반 사항이었다.
그런데 2번째 직장의 기본급은 최저에 미달했다. 그냥 월급이 최저를 넘기니, 최저가 아니라 생각했던 모양이다.
실망스러웠다. 세상의 빛이 되겠다 만든 곳에서 최저조차 지키지 않는다니... 이에 즉각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처음엔 노조에 사실을 알렸다. 그러나, 노조는 가만히 있으라 말했다.
가만히 있으라... 우린 안다. 가만히 있으면 그 어떤 것도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에 사용자에게 사실을 알렸다. 아이러니하게도 사용자는 즉각 잘못을 시인하고 해당 사안에 대한 변경을 지시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함께할 줄 알았던 직장 사람들은, 같은 노동자인 그들은 ‘어린 게...’라는 시선으로 일갈했다.
왜? 왜 안돼? 뭐가 문제지. 회사가 법을 어겨 문제를 제기한 내가 왜 문제아가 된 거지?
이면은 이랬다. 내 기본급이 최저로 오름으로 인해 나보다 나이도 직급도 높은 자신들과 월급이 얼마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우리의 상식이라면 본인들의 월급 인상을 주장하는 것이 순서다. 그러나 그들은 위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나를 피곤한 아이로 몰았다.
문득 떠올랐다. 혐오는 약자를 향한다. 분노는 절대 위로 가지 않는다.
본인보다 어리고, 직급이 낮다는 이유로 정당한 문제 제기에 분노를 표한 그들에게 우리는 오늘도, 내일도 맞설 것이다.
우리는, 참는 것이 미덕이 아님을 알고 있다.
오늘도 치열한 현장에서 아등바등할 우리 90년생들에게 응원을 전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