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결혼을 왜 당신이?
집 사줄 거면 말씀하시고...
2년가량 한 사람을 만나고 있다. 보통의 연애를 하며 무던하지만, 우리만의 뜨거움으로 만남을 이어가고 있다.
내가 만나는 사람은 우리 사회에서 엘리트 집단에 속하는 사람이다. 외고를 나와 미래가 보장된 경찰대를 졸업했다.
그를 만난 건 경찰 출입 기자 시절이었다. 경찰서에서 유일하게 세상 순박한 미소로 날 맞이해주던 사람. 총총총 걸음으로 여기저기 뛰어다니던 그가 참 좋았다.
그 순박한 미소에 마음이 스며들었던 것이지 그가 직급이 높은 사람이라 혹은 엘리트라 함께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아니다.
그 역시 내가 기자라서 만났던 것도 아니고 외모가 빼어나서 만났던 것도 아니고 그저 나와 말이 통했고, 웃음 포인트가 통했고, 닮지 않은 부분을 이해하고 싶은 사람이었다 말했다.
우린 그렇게 흔한 연애를, 어디에나 있을 법한 갑돌이와 갑순이의 연애를 시작했을 뿐이다.
그렇게 우리의 연애가 무르익고 내가 기자를 그만둔 다음, 지금의 회사로 자리를 옮겼을 때 그를 사회가 어떻게 규정하는지, 또 나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알게 됐다.
흔히 시작되는 신상 캐기. 쏟아지는 개인적인 질문에 하나하나 답을 해나갔다. 당연히 남자 친구의 유무, 직업 등을 물었을 때 ‘이 또한 사회생활이겠지...’라며 성실히 답변했다.
내 답변에 돌아온 그들의 말은 충격을 넘어 경악을 선사했다.
“임신부터 해서 붙잡아야겠네,”
“네??”
“아니 그 정도면 남자 집에서 반대하겠다.”
“네?”
“그 남자가 결혼 한대?”
왜 나의 결혼이 온전히 남자로 인해 정해지고, 왜 남자 집안에서 나를 반대하는 것이며, 임신이 축복이 아닌 마치 그를 옭아매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해야 한단 말인가.
무서웠다. 이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은 이들이. 심지어 그들도 여자였다. 같은 여성성을 갖고 살아가는 이들 입에서 나온 말에 순간 머리가 멈추는 기이한 경험을 했다.
정말 나에 대한 호기심에 물어오는 “어디가 좋아?”라는 질문과는 온도차가 심했던 그들의 말에, 그와 만남을 이어오는 지난 시간 동안 단 한 번도 듣지 못했던 말에 나는 면역이 없었다.
직장 동료들은 아직도 내게 물어온다.
“남자가 결혼하재?”
“결혼은 언제해?”
... 이제는 당당히 답한다.
“오빠가 하자고 하면 하나요? 제 의사는요? 이런 못난이 취급 여기서 처음이네요.”
우리의 결혼이, 우리의 연애가 그 존재 자체로 귀하게 여겨져 축복받는 게 아니라, 여전히 남자의 능력에 여자는 빌붙어 간다는 그 생각이 나를 병들게 했던 그 날을 난 잊을 수 없다.
이 나라에서 그가 인재임을, 엘리트 집단임을 부정하진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오늘을 내일을 함께 손잡고 걷는 이유는 그냥 ‘당신이라서’인데...
이제는 그들의 어쭙잖은 고나리질에 혹은 적폐에 가까운 도태된 사상에 흔들리지 않기로 했다.
내 사랑은, 내 결혼은 알아서 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