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는 삶에 대한 성찰과 자아에 대한 탐구 대신 그저 ‘직장’에 목을 매고 우리 또한 직장에 목매길 강요한다.
마치 직장이 자신의 모든 것을 대변하는 것마냥 직장에 대한 엄청난 자신감을 뽐내고 명함으로 사람을 판단하곤 한다.
내 경험 또한 극히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이야기겠지만, 친구들과 경험을 나누면서 그런 이들에 대한 접점을 발견하곤 한다.
최근 만난 지인은 회사에 신입이 입사했다고 한다. 친구는 일찍 취업해 그 회사에서 4년 차 대리인데, 새로 들어온 신입은 그보다 4살 많은 신입이라고 한다.
내 지인은 일할 때는 일에만 몰두하고 일이 끝나면 취미생활을 즐기고 사람을 만난다. 직장과 삶을 분명하게 분리한 것이다. 그런 그에게 최근 복병이 나타났다. 바로 나이 많은 신입사원. 그는 오후 7시 건 8시 건 내 지인에게 전활 걸어 집에 있다가도 궁금한 게 생기면 전화 걸어 질문하고 왜 당신은 칼퇴를 하느냐 타박한다고 한다.
처음에는 신입의 열정이려니 받아주던 내 지인도 점점 개인 시간을 침범당하는 느낌이 들자, 업무시간 외 전화는 하지 말아 달라 부탁했다고 한다.
그런 그에게 돌아온 대답은 가관이었다. 그렇게 열정 없이 일하니까 아직도 여기 있는 거 아니냐고.
그 말을 전하는 내 지인의 눈에서 순간 불꽃이 보였다. 당장 그 사람을 아작 낼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사실 그 말을 듣고 난 한참을 웃었다. 내 지인은 내가 본 인간 중 손에 꼽히게 뜨겁게 사는 사람이다. 매주 3회 운동을 나가고 연애를 하며 주말에 하루는 독서 모임에 나가고 그 외 시간에는 프리랜서로 일하며 종잣돈을 모아 차를 샀다. 매해 2번 여행을 통해 추억과 사람을 늘려나간다. 그런 그에게 열정이 없다는 말을 내뱉은 신입...
한편으로는 참 안타까웠다. 그 신입은 잘 길들여진, 정말 이 사회가 만든 노예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일‘만’ 열심히 하면 열정이 넘치는 사람이라 착각하는 그가 나는 너무나 안타까웠다. 그렇게 일하다 병들거나, 나이 들면 버리는 게 회사고, 자본 시장인데 아직은 그 사실을 모른 체 자신을 갈아 넣어 회사의 이윤을 만드는 일개미 1.
본인만 불구덩이로 들어가면 안타까운 일개미겠지만, 남에게 더구나 선배지만, 어리다는 이유로 만만하다는 듯 불구덩이로 왜 들어가지 않겠느냐 타박하는 순간, 젊꼰이라는 타이틀을 획득한다는 것이다.
무엇도 강요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취존’이란 단어를 참 좋아한다. 회사에서 매일 같이 야근을 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누가 감히 열정 없는 이라 단정 지을 수 있을까?
생각보다 요즘 사장들보다 애매하게 나이 차이 나는 사람들이 야근을 강요한다. “내가 신입 때는 말이야~”, “요즘 워라밸이다 뭐다 참 좋아~”, “요즘엔 왜 이렇게 회사에 애사심이 없어?”
직장 갑질이다 뭐다, 시끄러우니 사장들이 입을 닫자 그 밑에 애매한 사람들이 입을 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