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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갑순이 Nov 17. 2022

첫사랑이 꿈에 나왔다.

너의 안녕을 바라.

누구에게나 가슴 절절한, 그때 기억만으로도 아련한 사랑이 있다. 나 역시 있었다. 얼마나 지난 기억일까. 10여 년. 이렇게 글로 쓰고 보니 뭔가 오싹한 느낌이 든다. 이렇게 시간이 지났음에도 그때 그 기억이 또렷하다는 사실이.


사실 그 아이가 내게 첫사랑으로 남은 이유를 이제는 안다. 숨 쉴 곳이 없던 그 상황에서 유일하게 숨 쉴 곳이 돼 줬다. 집에서도 신경 써주지 않던 모의고사를 신경 써주던 그 아이. 엄마 때문에 죽고 싶었던 날, 이게 진짜 마지막 오늘인가 싶은 날 길에 핀 개나리를 보며 “어? 내가 왜 여깄지?” 으스대던 아이.


추억이 많았다. 친구 커플과 넷이 서울랜드에 갔던 날. 갑작스레 쏟아지던 소나기에 친구네는 우산을 택했고 우린 우비를 택했었다. 거세지는 빗줄기에 우비는 버티지 못했다. 이미 물에 젖은 생쥐 꼴이 된 우린 작당모의를 해 친구 커플의 우산을 뺏기로 했다.


우비 하나를 둘러 써 영화 클래식의 한 장면 아니냐며, 너무나 로맨틱하지 않냐는 헛소리를 해댔다. 그게, 그 평범함이 너무 행복했다.


타고난 음치, 박치인 날 데리고 노래방을 다니며 그렇게 노래 연습을 시키고, 할리갈리를 할 때면 밑장 빼는 게 무엇인지 알려주던 그 아이. 그런 행복함을 선물해주는 그 아이가 정말 좋았다.


사랑을 제대로 받아보지 못한 나는 사랑받는 법을 몰랐었다. 관심을 받기 위해 종종 거짓말을 했고, 그 아인 거짓말을 진절머리 나게 싫어했다. 그리고 우리의 마침표는 사랑받기 위해 했던 거짓말이 폭탄이 돼 돌아온 날, 찍혔다.


교내 매점이 있었고 일상처럼 점심 후 친구들과 매점에 갔었다. 매점은 언제나 혼잡했고 지금 생각하면 지옥철이지 않았을까. 그런데 누군가 뒤에서 내 엉덩일 만지는 게 아닌가. 그날 돌이 돼 굳었었다. 정말 어찌 대응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 채 그저 그 불쾌함을 고 교실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 불편함을 토로했다. 그는 굉장히 분노했고, 다음 날 친구가 사다 준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던 날 발견하곤 그 역시 거짓이었다 믿어버렸다.


우린 그렇게 끝이 났다. 물론, 이제는 안다. 그만큼 사랑하지 않았기에 헤어짐을 맞았다는 걸.


그 힘든 시기 유일하게 사랑을 주던 아이, 웃음을 주던 아이, 그 아이를 잊지 못했고 너무나 그리워했었다. 여전히 첫 사랑하면 그 아이가 제일 먼저 떠오른다. 고맙다는 말 한 번 제대로 해주지 못한 거 같아서. 그 끝이 내가 예상치도 못한 채 찾아와 버려서.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다른 사람과 연애를 하며 그 기억은 희미해졌다. 이제 어떤 감정으로 남았다기 보단, 기억의 한 조각쯤으로 남아있다.

그런데 요 며칠 내내 꿈에 그 아이가 나왔다. 묘한 불안감, 불편함도 몰려왔다. 그저 불안 장애가 도졌구나 생각하면서도 그 찝찝함에 남편에게 털어왔다.


심장이 계속 두근거리는데 맥박수는 정상이고, 불안 장애 왔을 때 나타났던 증상이 계속 나타난다. 그리고 계속 꿈에 그 사람이 나오는데 잘못된 건 아닐까 싶다. 내 짝꿍은 가만히 손을 심장 위에 올려 둔 채 무엇이 걱정이냐며, 아무 일도 없을 거라 말해줬다.


그의 다독임에 감사함을 느꼈다. 어쩜 이리 흔들림 없이 다독일 수 있을까. 조금의 짜증이나 의심도 없이 나를 다독일 수 있을까.


결혼을 하고 모든 게 안정 궤도에 올라 스스로 불안거리를 찾는 걸까. 이 불편함이 더는 나와 남편을 괴롭히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이제는 그 기억의 한 조각마저 떠나보내려 한다.


어쩌면 나는 그 아이가 아닌, 미치도록 아팠던, 18살의 나 자신을 못 놓고 있는 건 아닐까. 너무 아파 살고 싶지만,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랐던, 사랑받고 싶지만 어떻게 사랑받아야 할지 몰랐던 그때 그 아이. 아픈데 아프다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던 그 아이. 스스로도 제대로 보듬지 못해 어딘가 계속 매달려야 했던 그 아이.


결국, 나는 나를 잊지 못하고 첫사랑이란 추억 속에 묻혀있던 건 아닐까.


내 안식처였던 그 아이, 그 시절 어떻게든 견뎌내 오늘을 맞이한 그 아이의 안녕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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