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5년. 만이 아닌 년 수로 우린 5년을 만났다. 4번의 크리스마스를 보냈고, 4번의 새해를 함께 맞았다.
우리가 함께한 시간들이 길어져서 였을까. 내가 느끼는 우리의 관계는 느슨했다. 튼튼하지만, 느슨했다. 당연한 존재, 소중한 존재인 걸 알면서도 우린 서로에게 그냥 일상이 되어 버렸다.
그런 시간들에 상처를 받지 않았다 이야기하는 건 거짓일 것이다. 그런 내게 친구들 톡방에 한 사람이 다른 친구에게 소개팅을 주선하는 내용의 톡이 올라왔다.
나이 찬 이들의 모든 소개팅이 그렇듯 해당 남성의 직업이 올라왔다.
전문직. 이에 내가 손을 들었다. 제가 하겠습니다. 제가 할 게요, 저 되게 물질적인 사람입니다. 라고 보내자마자 내 연인을 아는 이들은 연신 ‘ㅋ’을 보내며 밍구님의 허가를 득해 오라는 말로 끝을 맺었다.
나 역시 진짜로 할 생각은 없었지만, 재미삼아 밍구에게 재잘거렸다. 역시나 세상 쿨한 이 남자는 내게 ‘다녀와. 그렇게 노래 부르던 구찌 실비백 받으면 인정.’이란 말로 일축했다.
약간의 섭섭함과 역시 이래야 우리지.라는 생각으로 그날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우리의 데이트 날.
그는 갑작스레 자신의 직장 앞으로 오라고 했다. 오늘 밥을 먹으러 지하철을 타고 좀 가야한다는 말을 마치고 그는 지하철을 타고 꽤나 먼 곳으로 날 인도했다. 그날 외근으로 이미 만 보를 걸은 나는 피곤함과 귀찮음에 뭘 먹으러 가는데 이러는 거냐고 물었다. 더구나 코로나로 우린 지금껏 집콕만 해왔던 터인데.
끝까지 비밀이라는 그는 유독 목돌이와 귀돌이를 가방에 넣으라고 말했다.
한파에 무장한 건데 왜?라고 물어봤자 그냥이란 답만 건넸다.
그런 그는 압구정에 있는 백화점으로 날 인도했다. 그리고 그가 먹자고 한 건 그 푸드코트에 있는 쌀국수. 고작 쌀국수였지만 그 동네 물가는 살인적이었다. 쌀국수 2개에 3만 원.
역시 밍구지. 라는 생각과 추운 날 어울리는 쌀국수를 호로록 호로록 먹으며 몸을 녹였다. 밥을 다 먹고 집으로 가려는 길. 그는 온 김에 구경하자며 날 백화점 안으로 이끌었다. 웅장함, 깔끔함 백화점 특유의 냄새는 날 주눅 들게 만들었다. 그날 외근으로 내 차림은 눈밭에 굴러도 상관없을 모양새였다.
함께 외근 나간 동료들이 “쌤은 안 얼어죽겠네요.”라고 할만큼.
그렇지만, 애써 당당한 척 그와 함께 거니는데 그가 구찌 매장 앞에 서더니 “오늘이야. 노래 부르던 실비백을 사는 날.” 이래서 귀돌이와 목돌이에 집착했구나...
“아니, 아니, 아니. 드립이었어. 가자. 제발 아니야. 가자.”
“아니, 들어가자. 그리고 실비백 사줄테니 전문직 오빠랑 소개팅 하지마.”
그 말에 동공지진과 더불어 머릿속은 하얗게 변했다.
감동? 감동? 간질거림? 이 남자가 왜 이러지?
매장으로 들어갔고 밍구는 당당하게 실비 백을 보여 달라고 했다. 다행히 색상은 하얀색 뿐 이었고, 밍구는 계속 검정색이 낫지? 라는 말과 인터넷에서 사야하나? 라는 말만 반복했다.
어서 이 남자를 말려야 겠다는 생각에 아니. 진짜 싫어. 이런 우리의 실랑이를 눈치 챈 걸까. 매장 직원은 다른 거 보여 드릴까요?라는 말로 우리의 시선을 끌었다.
이에 한 번 둘러볼게요. 라는 말과 그를 잡아 끌고 등짝을 때리며 끌고 나왔다.
그리고 사과했다. 미안하다고, 너 같이 분에 넘치는 사람한테 내가 그런 말을 해서. 그리고 저 가방을 산다한들 내가 무슨 수로 들고 다니겠냐고. 버스타고 지하철 타면서 누가 가방 긁기라도 하면 그 자리에서 싸움이 나거나 엉엉 주저앉아 울텐데. 혹시 뉴스에서 날 보고 싶은 거냐고.
이내 키득 거리던 그는 진짜 마지막 기회라며 다시 생각하라고 말했다.
다시 생각해도 그저 드립에 불과했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우린 두 손을 꼭 잡고 다시 그의 회사 앞으로 돌아왔다. 그리곤 그의 차를 타고 안산으로 향했다.
간질거리지 않아 더는 사랑이 아닐까 의심한 적도 있었다. 내가 간질거리지 않는 만큼 그 역시 더는 내게 간질거리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우린 더는 소중한 존재가 아니라 당연한 존재일 거라 생각했다.
착각이었다. 간질거리진 않지만, 단단한 사이였다. 그 무심한 사람이 본인 건 10만 원만 넘어도 사지 않을 거라 말하는 사람이 명품백을 사주겠다 말하는 그 모습을 보며 우린 여전히 사랑을 이어가는 구나.를 느꼈다.
단순히 비싼 걸 사주겠다는 말이 아니었다. 그러니 나와 함께 하자라는 그 말이, 내 마음을 콕콕 찔렀다. 내가 아직도 이렇게 부족하고 못난 사람이라서 그가 아팠구나. 쿨한 척 했지만, 쿨하지 않았구나. 그냥 삼킨 거구나.
2017년부터 이어 온 우리의 연애는, 우리의 사랑은 나도 모르게 무르익고 있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