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테일 변태
별 거 아닌 그것에 마음이 움직인다.
나라는 사람은 참 별 거 아닌 남들은 ‘읭?’ 할 만한 것에 감동을 받는 편이다. 그 작은 것에 마음을 활짝 여는 편이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 이런 나에게 내 짝꿍은 ‘디테일 변태’라는 요상스러운 별명을 붙여줬다.
내 짝꿍과 결혼을 준비하면서 과감히 생략한 게 있다. 예물, 예단. 돈도 없거니와 굳이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부분이었다. 그렇지만 마음의 짐 같이 어딘가 찜찜함은 남아있었다. 신혼여행을 떠나오는 길에 어머니 가방이라도 하나 사 와야지 마음먹고 있었다. 그런데, 환율은 정말 무섭도록 미친 듯이 오르고, 무엇보다 우리의 신혼여행지는 유럽이 아닌 미국. 그 어떤 메리트도 없었다.
주말 친구 결혼식 겸 나간 김에 백화점에 들렀다. 어머님들의 패이보릿 루이비통으로 향했다. 우리를 뜨내기라 생각한 점원은 상당히 건들거리는 말투에 뭐가 있냐 물으면 ‘보실 거예요?’라며 일일이 반문을 했다. 가격을 듣고 다른 브랜드를 둘러보고 올 테니 명함 좀 달라고 요청했다. 굉장히 떨떠름한 표정, 구겨진 명함을 우리에게 건넸다.
그녀의 태도와 별개로 항암을 거뜬히 이겨낸 어머님께 축하 선물 겸, 예단 겸 그냥 사기로 결정했다. 2차 방문, 그녀의 명함을 들고 그녀를 찾았다. 그리고 말했다. 아까 본 그 모델 사겠다고. 이 말이 끝나자 그녀는 말투가 변했고 내 눈길이 닿는 가방마다 메보겠냐며 먼저 물었다. 끝까지 건들거리며 불친절했다면 우린 이해했을 거다. 본인의 특성으로.
그런 그녀에게 난 끝까지 같은 태도로 일관했다. 짝꿍은 내게 물었다. 굳이 왜 저 셀러에게 결제를 진행했느냐고, 보란 듯이 다른 셀러에게 샀으면 되지 않았냐고. 그의 물음에 나는 답했다. 굳이 세상을 살며 저런 부분에 상처받고 상처를 돌려줄 필요가 뭐가 있겠냐고. 우리가 일관되게 행동하는 게 스스로를 부끄럽게 만들 수 있을 거라고. 무엇보다 겨우 저런 것에 상처받기엔 오늘의 우리가 너무 행복하다고. 그런 내게 짝꿍은 박수를 치며, 본인 엄마의 선물을 먼저 챙기는 내게 고맙다며 내 가방도 하나 골라보라고 말했다.
신나는 마음으로 바로 옆 구찌 매장에 들어갔다. 그곳에서는 아까 와는 정반대의 대우를 받았다. 사근사근한 말투, 적극적인 추천과 설명. 명함을 달라는 요청에 구찌 영수증 홀더에 끼워 우리가 둘러본 모델까지 적어주는 세심함. 더불어 우리의 사근사근함을 먼저 칭찬해주는 그 싹싹함. 그녀는 내게 세일을 해준 것도, 덤을 준 것도 없다. 그저 디테일, 그 세심함으로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마음에 드는 모델이 없어 구매는 하지 않았지만, 정말 벨트라도 하나 사고 싶게 만드는 그 친절함에 반해 다음에 가방을 산다면 무조건 이곳으로 오겠다고 다짐했다. 짝꿍도 내게 디테일 변태라 하면서도 본인 역시 내가 말한 그 디테일이 뭔지 알겠다며 끄덕였다. 선물을 들고 어머니 댁에 방문했다. 어머니는 다행히 너무나 좋아해 주셨다. 그리고 본인도 아무것도 안 하긴 뭐해서 자그마한 것을 준비했다며 반지를 꺼내놓으셨다. 반지보다 먼저 눈에 들어온 건 핑크색 파우치였다.
예쁘게 포장해주고 싶어 파우치와 핑크색종이봉투를 구매하셨다며 멋쩍게 말하는 그 모습이 순간 너무나 찡했다.
핑크색 파우치를 고르시는 동안 얼마나 고민을 하셨을지, 평생 아들 둘만 키워 오신 분이 며느리 될 사람 선물 포장하겠다고 이걸 사러 가게 들어가서 한참을 서성였을 모습이 눈앞에 선해 코끝이 찡해졌다.
이런 작은 세심함에 정말 큰 감동을 받는다. 반지 값에 비하면 이 파우치 가격이 얼마나 될까. 그런데 반지보다 이 파우치에 담긴 마음이 몇 십만 배는 클 걸 알기에 더욱더 큰 울림이 마음에 남는다.
친구의 선물도 그랬다. 오랜만에 날 만난다며 집에 있는 과일 한 알 한 알 챙겨, 본인이 쓰고 좋았던 색조 화장품 하나하나 챙겨 종이 가방 한가득 싸온 친구의 선물을 보며 코끝이 찡했었다. 선물에 값어치보다 그 하나하나 챙기며 얼마나 내 생각을 했을까 싶은 그 마음에.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작은 곳에서 감동을 주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홍보 담당자로서도, 짝꿍의 아내로서도, 친구로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