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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에서 서울까지, 왕복 6시간을 달려 널 만났지.

2화 - 그때의 기억이 널 아프게 했을까?

by 데이지

가정분양을 원했던 나는 애견분양카페에 글을 올렸어. 2달이 지나 입양이 가능한 토이푸들을 찾는다고. 글 올린지 1시간도 되지 않아 연락이 닿았고 서울 끝자락 까치산 역까지 데리러 와야 한다고 약속을 잡았지. 그때까지만 해도 일반 가정집인 줄 알았어. 용품도 다 있다길래 더더 그런줄 알았지. 동생과 함께 편도 3시간을 전철타고 달려간 그 곳은 내가 그렇게 피하고 싶었던 애견분양샵이더라...




한 낮에 동생과 함께 춘천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2번을 갈아타 까치산역에 도착하니 해가 져 깜깜한 저녁이었다. 가정분양이라고 주소를 찍어줬던 곳으로 가보니 차에서 내리던 그 분은 나를 데리고 집이 아닌 왠 애견샵으로 들어갔다.


"사실, 내가 여기서 분양을 받았는데 아들이 너무 강아지를 괴롭혀서 어쩔수 없이 파양하게 됬어요. 근데 분양권이 환불은 안되고, 양도는 가능하다고 하잖아. 사실 가정분양도 사기치는 분들 많아요. 여기가 그래도 꽤 관리 잘 된 곳이니까 걱정말고 데려가요. 용품은 내가 다 준비해줄게요."


처음부터 분양샵 입양을 원하지 않았던 이유는, 아이들을 작은 칸칸이 가둬두고 외모순으로 가격을 매기고 덩치가 크지 않게 최소한의 식사를 하게 해준다는 이야기들이 종종 뉴스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또, 그 아이들을 데려오기위해 불법 번식장을 운영하고 태어난지 2개월도 안된 아이들을 어미 곁에서 떼어내 그 작은 칸칸이에 넣어두는 사람들도 있다고 했으니 나는 더더욱 그런 분양샵이 없어지길 바랬다. 그런 내가 그때, 그 투명 칸칸이 앞에 멍하니 서있게 되었다. 나의 표정에 분양샵 직원도, 나에게 전화를 걸었던 그 분도 계속 좋은 곳이다, 가정분양 대리로 해주는 전문적인 곳이다 떠들었지만 사실 와닿지 않았다. 처음부터 그렇게 이야길 했으면 '나는 이 곳까지 왔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다 눈 앞에 유일하게 2마리가 들어가 있는 칸에 눈길이 갔다. 유독 다른 아이들보다 작았고,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것 같은 움직임에 둘이 꼭 붙어 있는 모습이 너무 안쓰러우면서도 자꾸 시선이 갔다.


시선을 빼앗긴 나를 보고는 본격적으로 여기가 얼마나 좋은 곳인지, 아이들이 얼마나 건강한지, 내가 보고 있는 이 아이는 어떤 품종인지를 이야기했지만 사실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그저 작은 이 칸에서 모두를 꺼내주지 못하는 스스로가 참 한심하게 느껴졌고, 속아서 3시간을 달려 온 나와 동생이 너무 바보같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그 순간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에 매장을 나왔다. 동생과 함께 생각했던 가정분양이 아니었기에 더더욱 이러면 안될 것 같은 느낌이었지만, 시선을 빼앗겼던 그 아이가 벌써 자꾸 눈에 밟혔다. 결국 1시간이 넘는 고민 끝에 동생과 나는 자꾸 눈이 갔던 아이를 입양해오기로 결정했다. 입양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하니, 이 아이는 품종이 좋아 다른 아이들보다 더 높은 분양가라며 더 내야한다고, 이제와 돌아보면 참 전형적인 사기(?) 수법이었지만 그땐 나도, 동생도 어렸다면 어렸고 또 얼른 데려가야 한다는 생각에 그냥 알았다고 하고 입양 절차를 진행했다. 아이를 데려 갈 작은 가방을 사고, 용품들을 두 손 가득 챙겨 지하철을 탔다.




짧은 과정이었지만 고단했는지, 지하철을 타니 가방에서 곤히 자던 아이였다. 동생과 나는 조금 찜찜한 마음이었지만 그래도 이 작은 아이를 보며 다시 설레이는 마음으로 어떤 이름이 좋을까 토론하기 시작했다.


"별이, 꿈이, 초코?"

"그런건 너무 유치하잖아"


동생의 유치하다는 말에 이것저것 머릿 속에 있는 모든 이름을 다 꺼내보았다.


"뭉치, 토토, 마음이, 마루 ...?"

"오! 마루 좋은데?"



그때는 마루라는 강아지 이름이 흔치 않았을 때라 더 특별하다 느껴졌다. 왠지 그 이름이 이 작은 아이에게 찰떡으로 어울리는 기분이라 더 자꾸 부르게 되었다. "마루야~", "마루야~" 동생과 나는 번갈아가며 이름을 불렀다. 곤히 자던 마루가 낑낑대기 시작했다. 어두워서 무서워서 그런가, 함께 있던 언니가 없어 허전해서 그런가, 태어나 처음 지하철을 타서 그런가... 살짝 가방의 문을 열어주고 작은 빛이 들어가니 조금은 안정을 찾은 듯 했다.


마루는 여전히, 작은 공간에 들어가지 못한다. 한 번은 중성화수술을 하고 하루 입원해있어야 하는데 다음날 가보니 마루 혼자 병원 입원실 밖에 나와있었다. 이유를 물어보니 수술 후 안정을 취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밤새 발톱이 빠져 피가 나도록 입원실 문을 긁어 꺼내놨다고 했었다. 마치 폐쇄공포증처럼 마루는 어디 갇히는 걸 너무너무 무서워한다. 그게 꼭 처음 데려올 때 너무 작은 가방이어서 그런 것 같아서, 내가 너무 고민하느라 그 작은 칸에 오래 있게 되어서, 그때 함께 있던 아이를 데려오지 못해서... 그런건 아닌지 지금도 참 마음이 아프다. 그때의 작은 칸 속에서의 기억이, 어두운 가방 속에서의 기억이 널 힘들게 한 건 아니었을까?


낑낑대는 마루를 어루고 달래 집으로 데려와선 넓고 아늑하게 마루의 공간을 꾸며줬다. 강아지도 자기만의 공간에서 안정을 느낀다기에, 쓰던 담요도 깔아주고 가지고 있던 강아지 필통에 솜을 넣어 인형으로 만들어줬다. 아장아장 혼자서 이곳저곳 돌아다니는 너를 그냥 지켜봤다. 이제는 여기가, 그리고 우리가 너의 평생을 함께 할거라고, 위험하지 않게 더 건강하게 내가 널 지켜줄거라고 다짐했다.


하지만 마루를 분양해줬던 그들의 만행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이 아이, 아직 2개월도 안된거 알고 계시죠? 그리고 크기도 엄청 클거에요. 또 토이푸들도 아니에요."



입양하고 다음날 마루의 예방접종을 위해 근처 동물병원을 찾았을 때, 수의사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었다. 2개월임에도 작은 토이푸들이라고, 고급품종이라 더 비싼 아이라며 이야기 했던 그들의 이야긴 하나도 들어 맞는게 없었다. 당황하는 내 표정을 보고는 선생님도 고개를 저으며 이야기 해주셨다.


"에효, 요즘 토이푸들이 tv에도 많이 나오니까 많이들 찾는데, 큰 아이들은 잘 입양 안하려고 하니까 이렇게 속이는 분들이 많아요. 원래 2개월이 지났으면 이빨이 났어야 하는데, 마루는 지금 이가 하나도 없잖아요. 태어난지 이제 한달? 한달도 안됬을 수도 있어요. 또 여기 털보시면 색이 다르잖아요. 이건 토이푸들이랑 다른 견이랑 섞였다는 거에요. 한 4-5kg까지 클건데 괜찮으시겠어요?"


이런 분양사기가 많아서 데려왔다가 너무 큰 크기에 놀라 파양하는 경우가 종종있다고 하며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이 아이도 어쩌면 버림받지 않을까 하는 선생님의 우려가 담긴 눈빛이었다. 속았다는게 분했던 건 사실이다. 처음부터 이상했고, 속았었기에 더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마루에겐 아니었다. 이렇게 작은 아이가 얼마나 고생했을지, 태어나자마자 어미와 떨어져 얼마나 무서웠을지 더 안쓰러웠기에 난 더 생각했다.


'나만큼은 널 끝까지 책임져줄게'

'나만큼은 널 끝까지 사랑해줄게'


그러니 우리 함께 행복해지자고 그럴 수 있을거라고, 나는 속으로 다짐했다. 그땐 내가 마루를 책임지고 지킬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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