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날 만나 너도 좋았을까?
매일 오전 10시에 나가 수업준비를 하고 밤 12시 넘어 퇴근을 했던 나의 일과는 너로 인해 조금 달라지기 시작했어. 어쩜 그때는 학원강사로 일한지 2년차였기에 좀 여유가 생겼을테지. 딱 출퇴근시간만 일하려고 노력했고, 퇴근 후엔 너와 함께 집에만 있으려고 했지. 수많은 사람들에게 이리저리 치여 고된 나를 언제나 뒤뚱뛰둥 반갑게 맞이 해줬던 너 덕분에 집이 참 포근하고 따뜻하게 느껴졌던 것 같아. 내가 널 지켜주겠다고, 내가 널 사랑해주겠다고 다짐했던 마음이 무색하게 사실은 말야, 너가 날 지켜주고, 너가 날 사랑해줬지.
그땐 자동급식기도 없었기에, 아침, 점심을 주고 일하던 학원으로 출근했고, 중간에 배가 고플까 본격 오후 수업이 시작하기 전 4-5시쯤 자취방으로 돌아와 마루의 밥을 챙겨준 뒤 또 학원으로 향했다. 밥그릇만한 녀석이 너무 배고프진 않을지, 혼자 외롭진 않을지 걱정도 됬지만 다행히 이따금씩 들려주는 동생과 친구가 있어 안심이되었다.
여전히 학원에선 12시간 가까이 일을 해야했고, 아이들 학교 시험기간이 겹치면 주 7일을 쉬지 않고 일해야했다. 사실 학원강사 2년차인 나는 건강도, 체력도, 마음도 모두 지쳐가고 있었을 때 마루를 만나 참 다행이었다. 아마, 내가 그 학원을 떠나야겠다고, 이젠 나를 챙기고 시간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을 한것도 어쩌면 너 때문이었을거다. 예전에 '똘이장군'을 잃어버리고 했던 후회를 하고 싶지 않아서, 너와의 시간 만큼은 내가 아쉬워하고 싶지 않아서 나는 애를 쓰기 시작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마루와의 시간을 위해 일의 효율성을 찾게 되었고, 퇴근 후 시간까지 관여했던 직장 상사와 멀어지기 시작했다. 분명 나는 너와의 시간을 위해 노력한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결국 나를 지키는 노력들이 되었다. 왜 나는 혼자였을 때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하고 싶은 것도, 할 수 있는 것도 많은 20대 사회초년생이었다. 만나고 싶은 사람도, 연애도 해보고 싶었던 20대 초중반의 소녀였다. 하지만 매일 퇴근 후에도 더 많은 문제를 풀어 실력을 쌓아야 했고, 잠들기 직전까지 일주일, 아니 한달가까이 되는 수업준비를 미리 해뒀던 나는 한번도 나의 시간을 갖기를 생각해보지 못했었다.
마루가 오고 나서야 알았다. 마음의 여유가 전혀 없었던 나를 말이다. 언제나 스스로가 부족하기에 잠자는 시간을 줄여서라도 발전해야했고, 스스로 인정할 수 없었기에 더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나는 더 속깊은 어른이 되어야했다. 휴대폰 사진첩 가득 내 사진보다, 유명한 명언들이 더 많았다. 지금보다 더 나아지길, 더 정신차리고 독해지길, 결국은 성공해 인정받길 바랬던 나였다.
어쩌면 그래서 더 아둥바둥 나 자신을 돌보지 못하고, 노력했던 것 같다. 수많은 성공가들의 자기계발서에선 지금의 어려움과 고됨은 그저 추억이 될 거라 말했기 때문이다. 수많은 자기계발 책을 읽으며 사실 가장 중요한 것을 알지 못했던 어리석은 나였다. 그들은 그 노력안에 자기자신이 있었다. 그들은 자신을 위해 노력했고, 자신을 위해 스스로를 믿어주고 존중했다. 나는 아니었다. 나는 타인의 시선을 위해 노력했고, 타인의 평가를 믿고 존중했다. 마루가 오고나서 알았다. 내가 아무노력하지 않아도 그저 나를 바라보고 꼬리를 흔들어주는 너를 보고, 깨달았다.
나도, 있는 그대로 사랑받고 싶었음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