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내 욕심이었나?
너와 더 좋은 곳에, 더 넓은 곳에 가고 싶어서 장황하게 편지를 써서 퇴사 의지를 밝혔지, 그것도 내가 퇴사하고 싶었던 날짜보다 6개월 정도 앞서서 말이야. 충분한 배려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내 생각이었을 뿐이었나봐. 내 욕심이었는지, 사람들 욕심이었는지, 나는 그냥 너와 행복하고 싶었을 뿐인데 말야.
적어도 3개월전엔 퇴사 통보를 해달라고 했었다. 대학교 선배가 하던 학원은 나와 친구가 들어가고 더 잘되서 2호점까지 낸 상태였다. 부원장님이었던 선배가 2호점의 새로운 원장님이 되었고, 학생수가 꽤 많았던 나와 친구는 2호점으로 가서 함께 자리를 잡기 시작한지 그래도 1년쯤 되었을 때였다. 마루와 함께 한지 1년이 다되어가는 그 시점, 나는 더 좋은 곳 내가 가고 싶었던 '서울'에 가서 여유있게 일하고 싶었다.
여전히 학원은 힘들었고, 마루와 함께 하는 시간은 많지 않았다. 혼자 8시간 이상 있어야 하는 마루에게 미안하기도 했지만 사실, 그때 난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여러번 겪었던 시험기간은 아무래도 익숙해지지 않았고, 아이들은 더 늘어났고, 참 다양한 아이들, 학부모들을 만나게 되었다. 2호점 원장님은 학원이 더 커지길 바랬고 맘처럼 되지 않자 있는 학생들이 그만둘 때마다 끝없는 상담을 했다. 처음엔 혼자서 했던 상담을 점점 버거웠는지 담당 선생님들에게까지 무리하게 상담전화를 시키곤 했다.
그만두는 아이들은 저마다의 사연이있다. 가정형편이 어려워서이기도 했고, 옆에 종합학원이 우리 단과학원보다 저렴한 가격에 더 많은 과목을 봐준다고 옮기는 학생도 있었다. 또는 성적이 생각보다 오르지 않아 더 좋다는 단과학원이나 과외를 시켜야겠다는 학부모님들도 있었다. 이미 떠난 학생의 마음을 붙잡는 건 참 많은 마음전력이 쓰이는 일이었다. 4시부터 12시까지 8시간에 가까운 수업을 해야했고, 상담전화를 돌리기 위해 더 일찍 출근을 해야했다. 나는 지쳤고, 그만두겠다는 아이를, 학부모를 다시 불러올 힘이 없었다.
"선생님은 아깝지도 않아요? 우리가 조금만 더 설득하면 더 잘해줄 수 있잖아요. 근데 그걸 놓치면 난 잠도 안올 것 같은데 말이죠. 선생님은 아닌가봐요?"
처음엔 그냥 몇번의 상담전화만 부탁했던 2호점 원장님은 날이갈수록 점점 원생에 집착했고,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고, 그만두겠다는 의사를 표했던 학부모님들은 여러번의 상담전화를 거는 나를 불편해하기 시작했다. 강사는 열심히 아이들을 위해 수업을 준비하고, 발전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영업사원처럼 원생 한명한명에게 목메는 강사는 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퇴사를 결심했고 어렵게 퇴사의사를 밝혔다.
"선생님, 지금 학원 어려운거 뻔히 알면서 너무 책임감 없는거 아니에요? 요즘 선생님도 잘 안구해지는데 지금 당장 그만두겠다고 하면 어떡해요."
분명 6개월 전이었다. 구해보지도 않고 대뜸 안된다고, 5년이상 가르쳐 온 학생을 두고 책임감 없이 그만두면 되냐고, 그 아이 대학가는건 봐야하지 않겠냐고, 열심히 5년을 일한 나는 책임감 없고, 아이들은 안중에도 없는 강사가 되버렸다. 5년을 넘게 일했다. 더 큰 곳으로 가고 싶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돈도 더 많이 벌고 싶다고 말했다. 첫 직장이었고, 강사도 원장도 모두 과 선배였기에, 가깝다면 가까웠고 어렵다면 어려웠지만 5년을 함께 고군분투하며 일했고 성장했던 나에게 너무 상처가 되는 말이었다. 책임감이 없다니.....
첫 몇 달은 수업이 없다고 월 30만원을 받았다. 그러다 첫 수업을 맡아 월급 70만원을 받았다. 1년이 다 되어서야 100만원 조금 넘는 월급을 받았고, 5년차 8시간씩 수업하던 때에도 200만원정도였다. 방학특강 보너스는 없었고, 교재도 직접 만들어서 쓰는 학원이었다. 그런데도 결국 난 책임감 없는 강사가 된 것이다. 1년을 울었다. 맥주 500도 먹지 못했던 내가, 매일 맥주 500을 한 캔씩 먹어야 잠을 잘 수 있었다. 그곳에서의 시간은 나에게 멈춘 시간이었다. 미래를 꿈꿀수도, 뭘 더 해야할지도 몰랐다. 그저 하루하루 버티고만 있었다. 우리마루가 없었으면 난 그 시간들을 견뎠을까, 매일 밤 우는 내 옆에 살포시 앉아주는 마루와 우리 덕분에 견뎠다.
6개월이 지나도 매월, 강사를 구하지 못했으니 한달만 더해달라고 했다. 그렇게 1년을 끌었다. 마지막을 책임감 없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끝까지 우리 아이들을 포기하는 강사가 되고 싶지 않았다. 아쉽지만 더 큰 곳에서 보자고 마지막 인사를 하고 싶었다. 그래서 1년을 참았다.
"근데 퇴직금을 줘야해? 아니, 생각해보면 2호점 와서 3년을 다 채운게 아니잖아. 좀 아까운데, 전에 말했던 거 굳이 안 지켜도 법적으로 문제 없겠지?"
우연히 2호점 원장과 선배 강사가 하는 이야길 들었다. 그 좁고 조용한 학원에서 굳이굳이 내가 수업하는 교실 옆 교무실에서 나눈 대화는 잠깐 학습자료를 복사하러 나온 나에게까지 들렸다. 결국 그 다음날, 난 출근하지 않았다. 약속 받았던 퇴직금따위 받고 싶지 않았다. 5년을 아니, 대학시절부터 더 오래 봐왔던 사람들과의 관계가 참 얄팍하다고, 부질없다고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더이상 울지 않고 나를 위해, 책임감 없는 사람이 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