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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2년차, 외롭지 않길 바랬다.

6화 - 더 나은 우리가 되려고 싶었어.

by 데이지

그땐 타이밍이 좋았어. 일한지 5년차정도 되었고, 월급도 제법 많이 올랐지. 그 사이 인간관계로 참 많은 일들을 겪었지만 그래도 난, 너와 함께라 잘 이겨낼 수 있었어. 아마 그때도 내 생각만 했었던 것 같아. 그냥 너가 외로울 것 같았고, 함께 있을 수 있는 동생, 친구를 만들어주고 싶었어. 마침 막내이모네 포메라이언 커플이 강아지 2마리를 낳았다길래, 얼른 데려왔지. 난 그때, 절묘한 타이밍에 어쩌면 이렇게 2마리를 키울 운명이었나 생각했었던 것 같아.


혼자였던 마루가 안쓰럽기도 했고, 그때가 딱 서울로 가려 마음먹고 퇴사를 발표했던 때라 곧 시간적 여유가 될 것 같았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할 수 있었기에 더 행복하고 싶어서 '우리'를 데려왔다.


부산에서 춘천까지 이모가 직접 차를 태워 데려 온 우리는 정말 작았다. 아기땐 1kg 조금 안나갔고, 1년이 지나고도 2키로가 조금 넘는 마루 딱 반만한 아가였다. 사회성이 부족한 마루가 혹시 우리를 싫어하지 않을까 걱정도 했지만, 다행히 우리가 한참 어리단 걸 알아서 였는지 마루는 우리에게 꽤 많이 져주곤 했다. 놀던 장난감도 우리가 관심을 보이면 툭 던져주기도 하고, 밥을 먹다가도 우리가 종종 달려오면 슬쩍 비켜주는 마루를 보고, 괜히 뿌듯한 나였다. 둘이 잘 노는 모습을 보며 잘 데려온 것 같았고, 서로가 서로에게 참 힘이 되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퇴사 선언을 하고 1년 동안 첫 직장에 잡혀있었지만, 견딜만 했던 이유는 아마도 '우리,마루' 덕분이 아니었나 싶다. 퇴근하면 반겨줬고, 주말이나 쉬는 날엔 일 생각하지 않고 우리마루와 산을 타고 다녔다. 꽤 활동량이 많았었던 젊은 시절 우리들은 참 많이 뛰어놀았다. 처음에 계단도 내려가지 못했던 우리는 마루를 따라 한칸 한칸 내려갔고, 거의 푸들만큼 높이 점프하기도 했다. 그렇게 마루는 우리에게 하나하나 나와 나눈 규칙을 알려주고 있었다.


자취하던 곳 근처에 있는 뒷산은 사람이 많지 않아 자유롭게 산책하기 딱 좋았다. 물론 사람을 무서워하던 마루와 우리이기에 아주 잠깐, 정말 아무도 없을 때만 풀어놓고 다시 목줄을 채워주곤 했다.


목줄은 우리와 마루의 안심선이자, 그들과 나를 지켜주는 보호선이었다. 아마 모든 겁많은 강아지들이 그럴 것이다. 놀라면 본인도 모르게 튀어나가게 된다. 길이 아니어도, 그곳이 더 어둡고 위험해도 말이다. 그러지 않기 위해 항상 조심했고, 우리는 더 안전하게 서로와 함께 할 수 있었다. 사실 우리를 데려오고 내가 할 일이 꽤 많이 늘 줄 알았는데, 마루가 제법 선배노릇을 잘해서 내가 가르쳐줄게 없었다. 겁이 많던 우리는 하나씩 하나씩 용기내어 나와 마루에게 다가왔다.





둘과 함께 했던 그 시간은 참 포근했다. 덜 울게 되고, 더 웃게 되었다. 그래서 더 나은 곳으로,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하고 싶다는 욕심이 들었던 것 같다. 처음엔 책임감으로, 그 다음엔 포근함으로, 그 다음엔 완전한 가족이 되어 더 오래오래 함께 행복하고 싶단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나의 많은 것들을 빼앗는 내 첫직장으로 부터 도망칠 용기가 생겼고, 그 덕에 도시에서 살고 싶다던 오래된 내 꿈도 다시 꿔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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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마루와 1년차, 어렵게 첫 직장을 퇴사하고 우선 고향집으로 이사를 갔다. 자취방 보다 더 넓은 집, 동네 뒷산보다 더 큰 산이 있는 고향집에서는 더 마음껏 뛰어오는 것 같아 마음이 편했다. 고향으로 돌아 온 나는 서울로 가고 싶다는 마음이 동생과 맞아 함께 서울 집을 보러다녔고, 우리 수준으로 갈 수 있는 집을 계약했다. 고향으로 온지 1-2달 정도 되었을 때 였는데, 취업보다 월세방을 먼저 구했던 나와 동생이었다. 모아둔 돈으론 딱 첫 월세까지만 해결 할 수 있었고, 사실 둘째달부터 막막했지만 다 함께 독립하겠다는 마음이 참 컸던 것 같다.


서울로 이사가기 하루 전, 고향에서 입시학원을 하고 있던 사촌오빠가 나를 불렀다. 이제와 돌이켜보면 아마 부모님과도 이야기가 되었던 것 같았다. 월급을 첫 직장보다 조금 더 많이 줄테니, 1년만 도와달라는 거였다. 그때 그 입시학원은 수학강사가 너무 자주 바뀌던차에 학부모들 컴플레인이 극에 달하고 있었고, 설상가상으로 일하던 파트타임강사가 당일통보하고 잠적한 때였다고 했다.


고민이되었다. 당장 내일 이사를 들어가는 날이라 이미 계약금 100만원은 이체한 상태였다. 동생도 나도 서울 살이를 한껏 기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제안이 참 솔깃했다. 그저 돈 때문이었겠지... 결국 난 이사를 가지 않고 고향에 1년을 머물기로 했다. 동생과 상의 하나 없이, 그저 내가 돈을 다 낸다는 이유로 그 길을 포기해버렸다. 이때부터였을까, 내가 욕심을 내서 그런걸까. 그때 다 함께 서울로 갔다면 나는 좀 더 우리의 행복을 오래 누릴 수도 있지 않았을까. 늦었지만 이젠 안다. 진짜 우선순위는 '돈'은 아니라는 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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