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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너만큼 사고도 치고, 어리광도 부려 볼 걸.

4화-하나씩 배워가는거지 뭐.

by 데이지 Mar 31. 2025

훌쩍 훌쩍 크는 너를 보며, 뿌듯하기도 대견하기도 하더라. 간질간질 이갈이를 하면서 너는 물 수 있는 모든 것을 갉아먹었지. 심지어 자다 일어나보면 휴대폰 귀퉁이도 잘근잘근 씹어놨던 너였으니까. 그런데 그런 모습들이 왜 그렇게 참 귀여웠는지, 문득 그런 너를 보는데 나도 이렇게 어리광도 피우고, 사고도 쳤으면 지금보다는 더 단단한 어른이지 않을까 싶더라.


마루가 들어오고 3개월에서 2년까지는 참 사고를 많이쳤다. 이갈이를 할 때는 입에 닿는건 뭐든 씹어놓고야 말았고, 아주 살짝 열려있던 문틈으로 다니며 쓰레기통은 기가막히게 뒤집어놓고 온 집에 널부려뜨려놓았다. 분명 출근할 땐 깨끗했던 집이 퇴근하고 돌아오면 항상 엉망이었다. 이상하게도 그런 마루에게 화보단 항상 미안함만 느껴졌다. 내가 널 너무 오랜시간 둬서 심심해서 그런가보다고, 내가 '아차'하고 문에 틈을 살짝 남겨놨다고. 마루를 혼내기보단 내가 더 잘해야지 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브런치 글 이미지 1

가만히 있을 때도 꼭 무릎에 앉아 뭐든 물어 잘근잘근 씹고 있었다. 하루 종이 혼자 있던 마루는 항상 내가 오면 내 옆에서 떨어지려고 하지 않았다.


'혼자 외롭진 않았을까.'

'내가 더 많이 놀아줘야겠다'


생각하며 조금씩 마루와의 진짜 함께하는 시간을 만들어가려고 노력했다.


아직 접종이 덜 끝났기에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최선을 다해 집에서 놀아주는 것 밖에 없었다. 물어도 되는 끈이나 장난감은 꺼내놓았고, 충전기나 전기선은 마루눈에 보이지 않게 서랍에 넣어두고 필요할 때만 꺼내썼다. 휴대폰도 자기전에 책상에 올려놓고 더이상 마루가 씹지 못하게 거리두기를 했다. 그렇게 마루와 나 사이에 규칙을 하나씩 만들어가고 있었다.


브런치 글 이미지 2

마루 첫 목욕을 하던 날. 아주 조심조심 씻기려고 노렸지만 영 서툴렀는지, 날카로운 아기 마루 발톱에 다리고 팔이고 다 할퀴었다. 때로는 너무 깊어 피가 나기도 하고, 흉터가 남아 오래 갈색으로 남아있기도 했다. '왜 그럴까...?' 마루는 얼굴에 물도, 드라이기 바람도 맞는걸 너무 싫어했다. 그걸 억지로 잡고 하려니, 어쩔 수 없이 나의 팔과 다리를 부여 잡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마루는 자신이 싫어하는 것, 좋아하는 것들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렇게 하나 둘 우리가 만들어 간 규칙은 조금씩 자리를 잡았고, 나는 더 이상 마루가 싫어하는 것들을, 마루는 내가 싫어하는 것들을 하지 않기 시작했다. 점차 더 서로가 서로를 알아가게 되었고, 점점 더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딸만 둘이었던 우리집에서 나는 맏이, 장녀였다. 어려서부터 맏이로 온갖 기대를 받으며 자라나서였는지, 점점 자라면서도 더 빨리 철들어야 했고, 더 의젓해야했다. 그래서 그 무섭다는 사춘기조차 큰 사고 없이 조용히 히 지나갔다. 지금도 어른들은 참 조용한 사춘기를 보냈다며 그때의 나를 칭찬하고는 했다. 그때 그냥 속시끄러웠단 나를 표현하며 살았다면, 그때 혼란스러웠던 사춘기를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살았다면 어쩌면, 나도 세상과 나만의 규칙을 만들었다면 지금보다 더 단단한 어른이 되어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저 칭찬받고 인정받는 것에만 익숙했던 나는 제대로 나를 표현해보지 못하고 인정받기 위해, 칭찬받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참 이상하게 점점 기준은 높아졌고, 스스로 거는 기대도 한없이 커져 결국 뭘해도 나조차도 만족할 수가 없었다. 학원강사라는 직업은 그런 나에겐 독약과도 같았다. 매번 평가를 받아야했고, 매번 학부모, 학생, 동료강사들의 눈치를 봐야했다. 해야 할 노력들은 너무 많고, 나를 돌아볼 시간은 없었다.


브런치 글 이미지 3


이제와 생각해보면, 마루와의 시간들이, 마루를 돌봤던 시간들이 나에겐 나를 돌보던 시간과 같았다. 차가운 바깥 인간관계와는 달리 내가 뭘해도, 어떤 상태여도 그저 나를 좋아해주는 마루 덕에 나는 살아냈다. 더이상 외롭지 않았고, 더 이상 쉽게 휘둘리지 않을 수 있었다.


괜히 인사치레로 회식에 참여하지 않아도 되었고, 괜히 소외될까 주말마저 직장동료를 만나지 않아도 되었다. 혼자선 하지 못했던 나를 위한 선긋기는 마루를 핑계로 자연스럽게 진행되었다. 그렇게 다시 함께 꿈도 꾸게 되었다. 지금보다 더 좋은 환경에서 마루와 함께 하고 싶었고, 그러려면 더 크고 넓은 곳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서울행을 꿈꾸던 그 날, 난 금방이라도 떠날 수 있을거라 생각했었지만 착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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