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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그땐 준비가 된 줄 알았어.

by 데이지

2014년 2월. 취업하고 2년차가 된 나는 어느정도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있었고, 경력도 있어서 일도 익숙해진 탓이라 왠지 여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고작 사회초년생 월급이었지만 그정도면 작은 생명 하나 정도는 책임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반려견. 우리집은 어려서부터 끊임없이 강아지를 키웠다. 아빠는 길가에 돌아다니는 아픈 유기견들을 그냥 지나치지 못했고, 나와 동생은 아빠가 데려온 유기견을 너무나 좋아했기에 엄마는 애써 반대하지 않았다. 아픈 곳도 치료해주고 나와 동생이 산책도 시키고 했지만 보통의 유기견들은 길게 정을 붙이지 못했고, 틈이 나면 현관문 밖으로 뛰쳐나가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길게 키워본 적이 없었다. 내가 고등학생 때 이번엔 동생이 떠돌이 유기견이 아닌 유기견 분양을 해주는 병원에 가서 아빠와 함께 요크셔테리어 한마리를 데려왔다.


아주 작고 겁이 많던 그 아이는 몇개월이 지나도 우리에게 마음을 열어주지 않았다. 2014년 그땐 유기견을 데려다 키우는 사람이 많지 않았기에 우리는 아직 친해지지 않은 그 아이와 지역방송에도 출현했었다. 동생과 내가 강아지와 함께 산책하는 모습, 집에서 놀아주는 모습 등을 찍었는데 처음 방송국 카메라에 선 나와 동생이었기에 너무 어색했다. 마지막은 부모님과 모두 함께 강아지 이름을 외치며 클로징 멘트 같은 걸 했었는데 이제와 생각해보면 그때가 가장 어색하고 민망했던 것 같다. 그렇게 가족이 된 그 아이, '똘이'와 그 후로 무려 7년간이나 함께 자랐다. 우린 꽤 많이 친해졌고, 진짜 가족이 되었는데 잠깐의 틈에 결국 똘이마저 현관문을 뛰쳐나가 잃어버렸다. 며칠을 아니, 몇 달을 우린 전단지를 붙였고, 동네를 수소문했다. 부모님은 똘이 제보전화가 오면 하던 일도 멈추고 가서 확인해보곤 했지만 결국 찾지 못했다. 나는 그 뒤로 똘이를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 때문에 더이상 준비되지 않으면 강아지를 키우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잃어버리기 전, 나는 대학교 1학년이었고 기숙사에서 생활을 했기에 똘이를 자주보지 못했다. 처음으로 오랜시간 키웠던 강아지 였지만 모르는게 참 많았다. 한달에 한 번 사상충 약을 먹이는 것도, 발톱을 깎아줘야 하는 것도, 간식도 가려먹어야 하는 것도 모르고 그저 예뻐만 했다는 생각이 나를 오래도록 괴롭혔다. 그렇게 강아지는 잠깐 잊고 대학을 졸업하고 바쁜 사회초년생 2년이 흐르고 나니 돈도, 마음도 여유가 생겼다. 이젠 더 건강하고 안전하게 누군가를 책임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수소문 끝에 가정분양 견을 알아보았고 운 좋게 인연이 닿아 지금의 '마루'를 만날 수 있었다.


데려오기 전엔 자신 있었다. 강아지에 대해 더 많이 공부했고, 이젠 내가 더 많이 컸으니까, 어른이니까 널 더 행복하게 키워줄 수 있을 거라고, 마치 예전에 키우던 '똘이'에게 못다한 책임감을 '마루'에게 쏟겠다고 결심했던 것 같다. 이제와 돌아보면 참 아는 것도 없고 아주 조금 돈을 번다고 용감무식했던 거였는데. 어른은 무슨, 고작 20대 중반의 내가, 스스로 어른이라고 생각했것도 용감무식했던거다. 작은 한 생명을 키운다는 것, 책임진다는 것, 그리고 그 작은 생명의 평생을 함께 한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다. 나 자신 하나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깊게 들여다본 적 없으면서 무턱대고 데려 온 갈색푸들 '마루' 덕분에 나도 함께 자랐다. 수많은 관계에 치여 혼자가 좋으면서도 외로웠던 나에게, 나 스스로를 지우고 한 없이 타인에게 맞추는 삶을 살던 나에게, 그저 있는 그대로도 충분하다고 가르쳐 준 '마루'와의 시간을 기록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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