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검진을 받아보라고 채근해 놓고도 겁이 났다. 내 기우가 현실이 되면 어쩌나 순간순간 가슴이 뛰었다.
남편은 언제부터인가 약으로 다스리던 혈당이 안 잡혀 인슐린의 보조를 받았다. 맥없이 등짝이 아프다고 하고 명치끝이 답답하다고도 했다. 등이 아파 한의원에 가서 침을 맞아도 효과가 없다는 말과 그의 책상 위에 놓인 소화제 뭉치는 묘한 기시감으로 불안을 대동했다. 친한 선배 남편이 갑자기 당뇨가 심해지고 등과 명치끝이 아팠다는 말이 떠오를 때마다 애써 도리질했다.
어느 날 남편이 말했다. 의료보험 정기 건강 검진에서 간수치가 높게 나와 재검을 받아야 한다고. 피곤이 누적되었나... 말은 흐렸지만 근래 식사량이 줄고 등이 아프고 명치끝이 답답한 이유와 상관있는 건 아닌가 싶어 마음이 무거웠다. 그렇다고 미룰 수만 없는 일, 검진을 제대로 받아보자고 채근했다.
검진을 다시 했지만 특별한 이상 소견은 없다고 했다. 복부초음파나 복부 CT촬영을 해보라고 그리 당부했건만 당뇨약과 같이 먹고 있던 고지혈증 약 때문에 간수치가 올랐을 수도 있다며 그 약을 끊고 지켜보기로 했다는 것이다. 고지혈증 약을 안 먹었더니 수치가 잡혔다며 한 달 후에 다시 검사할 거니까 걱정은 붙들어 매라며 남편은 웃었다. 걱정을 사서 한다더니 내가 그런가 싶었다. 한 달 후 다시 한 검사에서 간수치가 또 높게 나왔다. 그때서야 복부 CT와 복부 초음파를 찍었다.
췌장두부 4.7cm 암.
제대로 검진해 보자 서둘렀지만 어떤 마음의 준비를 한 건 아니었다. 훅 들어온 암 폭탄, 이런 경우 남들은 충격을 받아 망연자실했다거나 슬펐다는 표현을 쓰던데 나는 화부터 났다. 일찌감치 위암으로 그 고생을 시키더니 다 늙어 누구 말마따나 이제 편히 살아도 될 나이에 너무 잔인하지 않은가. 이미 큰 병을 앓아 봤기에 먹거리 챙기는 데는 누구보다 자신 있었는데 이 무슨 날벼락인가. 이 방향 없는 분노가 그에 대한 연민인가 삶의 허망함인가. 화를 드러내지 않으려니 말이 없어졌다.
남편은 당장 수술해야 한다는 말이 무색하게 퇴직 날짜를 되도록 미뤄서 퇴직금을 더 많이 받을 수 있는 달까지 출근하고 싶어 했다. 징그럽게 성실하고 가족밖에 모르던 사람. 이 나이까지 일할 수 있었던 것도 감사한 일이니 어서 정리하라고 해도 묵묵부답이었다. 예전 위암 수술을 집도했던, 지금은 췌장암의 권위자로 이름이 나 있는 교수가 머무는 병원에만 가면 모든 게 해결될 것처럼 퇴직을 미루고 휴가를 내볼까도 생각하는 눈치였다.
남편이 자기 몸을 다시 원상태로 만들어 줄 거라고 믿는 의사를 찾아 옮긴 병원의 간담췌외과 외래(3월 1일)와 복부 CT와 MRI 검사, PET CT를 끝낸 2주 후 소화기내과 의사를 만났다. 막히기 직전 담도 관을 뚫는 게 급선무라고 했다. 그리고 췌장암 의심, 아니 암일 확률 99.%라고 했다. 그것도 간에 전이가 된 상태로. 하지만 조직검사에서 암세포가 나와야 확진이라는 말이 성립된다고 했다.
입원하기 전날까지 출근한 남편은 며칠 가볍게 쉬었다 갈 사람처럼 병실에 들어갔다. 하지만 담도관 시술부터 난관이었다. 오래전 위암 때 개복 수술하고 또 담석을 빼내느라 배를 가른 몸이니 누구보다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했다. 어렵게 뚫은 담즙배액관을 통해 췌장 조직검사를 했다.
결과는 병원 측의 확신을 비웃듯 암이 나타나지 않았다. 2차 3차로 이어지는 악랄한(너무 무자비하게 조직을 떼어내는 통에 남편이 붙인 말) 조직검사에서도 암이 발견되지 않았다.
조직검사 할 때마다 금식하고 관 삽입으로 인한 이물감과 갇힌 생활에서 오는 무기력감으로 남편은 완전 그로기 상태가 됐다. 하지만 우리에겐 3번의 조직검사, 그것도 할 때마다 10군데 가까이 조직을 떼어냈는데도 암세포가 안 걸린다는 건 암이 아닐 거라는 희망이 생겼다. 이게 무슨 헛고생인가 싶다가도 암이 아니라는 것에 백번 자위하며 퇴원을 서둘렀다.
퇴원을 하려면 담도 관 스탠드 시술을 해야 했다. 소화기내과 담당의는 그냥 막아버리기엔 아무래도 꺼림칙하다며 마지막으로 조직을 한 번 더 떼어보자고 사정했다. 예민한 췌장을 당신들의 섣부른 단정으로 헤집어만 놓고 여태 뭐 했느냐고 따질 수도 없었다. 뭐가 뭔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의사한테 요목조목 따질 줄 아는 환자가 몇이나 될까. 우리는 마치 선심이라도 쓰듯 스탠드 시술을 하기 전 더도 말고 딱 3군데만 떼라고 양보? 했다.
퇴원하고 2주일이 지나 외래에서 소화기내과 담당의를 만났다. 들어서는 순간 마주친 의사 표정은 그야말로 득의만만했다. 퇴군하는 병사들 속에서 적장을 잡아내기라도 한 듯 거보라고 했다. 스탠드 시술 전 마지막 검사에서 암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췌장암, 아니 췌장선암과는 다른 ‘신경내분비암’이라는 생전 듣도 보도 못한 희귀 암 깃발을 펼쳐 들었다. 간전이가 있으니 ‘췌장신경내분비암 4기’. 그 고생을 다 한 끝에 얻은 게 희귀 암이라니…. 20일 입원으로 남편의 근육은 다 빠져나가 과연 걸을 수 있을까 싶은 몰골을 만들어 놓고 암세포가 잡혔다니. 간에 전이된 상태라 당장 수술도 못하고 선 항암을 세 번쯤 해보고 수술하게 될 것이라고 선언하듯 말했다.
암이 아닐 수도 있다는 쪽에 희망을 걸었는데, 온갖 키워드를 발동해서 단순 양성 종양에 대해 물혹에 대해서만 검색했는데, 날벼락도 유분수지 세상이 한순간에 정지되고 나의 시계도 멈추었다. 췌장신경내분비암 4기를 아무리 뒤져도 희망을 가질 만한 이야기가 없었다.
5월 1일 항암 첫날, 3월 첫 CT 검사 때 간에서 보이는 게 염증인지 암인지 분간이 안 갈 정도로 미세하다고 하더니 항암 시작 전 검사에서는 처음 찍은 CT보다 암 덩어리가 커지고 번져 보였다. 조직검사 하느라 한 달이라는 시간이 흐르긴 했지만, 그렇게 빨리 진행이 되는지 아찔했다. 췌장은 몸 깊이 숨어 있는 장기라 우리처럼 몇 번에 걸쳐 조직검사를 하는 경우가 흔하다는 말을 듣긴 했지만 ‘암세포 하나 집어내겠다고 그렇게나 많이 쑤셔댔으니 암이 성내지 않고 배기겠는가’에 생각이 미치면 암이 커진 게 과도한 조직검사 때문이라고, 억지라도 쓰고 싶었다.
3주 간격으로 신경내분비암에 기본으로 쓰이는 항암제(시스플라틴과 에토포시드)를 두 번 투여한 후 CT를 찍었다. 가장 효과가 좋은 약이라고 알고 있기에 기대했는데 영상 속 암은 줄어들기는커녕 더 커지고 번져 있었다. 수술하기 위한 선항암이라고 했는데 암이 더 번져 있다면 우리가 고대하던 수술은 어찌 되는 건가. 나는 잠깐잠깐 우두커니가 되는 일이 잦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