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항암부터는 폴피리와 폴폭스 병용제로 바꿨다. 2주일 간격으로 4번 실행한 후에 실시한 검사에서 암이 조금 줄었다는 소견이었다. 뿌옇고 어른어른해서 쉽게 분간이 안 되는데도 짚으며 설명하는 대로라면 영상 속 그림이 많이 다르게 보였다.
“이렇게 줄어들면 수술도 가능한 거죠?”
눈을 반짝이며 묻는 내 말에 담당의가 고개를 저었다.
“간에 암세포만 보이지 않으면 수술할 수 있다더니 왜요?”
교수님이 뭐라고 덧붙였던 것 같은데 ‘수술할 수 있다더니...’라는 내 생각에만 꽂혀 그분의 뒷말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암에 걸리는 사람이 따로 있나요?”
하나 마나 한 질문인 줄 알면서 면담을 마치고 문을 나서려다 내가 한 말이었다. 교수님은 웃으면서 말했다.
“암 발병에 관한 추측은 다양하죠. 유전이나 환경, 생활 습관 또는 스트레스. 하지만 제 생각은 좀 달라요. 길을 가다가도 운이 나쁘면 어디선가 날아온 돌에 맞을 수가 있듯 재수 없어서 우연히 암에 걸릴 수 있다고 봐요.”
그렇다면 내 남편이야말로 운이 없는 걸까? 딸아이 초등학교 2학년 때 위암에 걸려 삼십 중반 펄펄하던 기를 꺾어놓더니 초등 2학년인 손자랑 자전거나 타고 축구도 하면서 느긋하게 노년을 즐겨도 되는 때 암 중에서 가장 독하다는 놈의 공격을 받았으니 말이다. 생각해 보면 꼭 그렇다고 할 수만은 없다. 암을 이겨낸 그 힘으로 33년 가까운 세월 동안 잘 살아 냈으니.
워낙 체중이 나가지 않는 사람이라 항암을 잘 이겨 낼 수 있을까 걱정은 됐다. 위암 3기를 꺾어버린 전력을 믿어서인지 그는 잘 먹고 운동하면 되지 뭘 미리 걱정하느냐고 했다. 암에 걸리면 죽는다던 그때도 살았는데 요즘 세상에 마음먹기에 달린 거 아니냐고 큰소리쳤다.
남편은 누구보다 잘 걷고 잘 뛰던 사람이었다. 날렵한 몸이 걷고 뛰는 데 최적화인 듯 장거리 산행에도 지치지 않았고,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하고도 집까지 걸어오고 싶다던 사람이었다. 위암 완치 후 그 흔한 감기조차도 그에게는 얼씬 못했다. 담배는 위암이라는 걸 안 순간 끊었고 술이라면 맥주 두어 모금만으로도 세상 술 다 마신 듯 얼큰해져서 뒤로 물러나 앉곤 했다.
암 환자였던 사실이 까무룩 해질 만큼 세월이 흘렀다. 한데 마누라 음식에 길이 들어서인가 남편은 외식했다 하면 그대로 화장실로 직행하는 집밥러다. 난 여행을 떠나면서도 도시락을 준비해 놓아야 안심이 되었다. 아이한테서 겨우 벗어났는데 남편 도시락에 붙들려 산다고 친구들 핀잔을 들을 때도 있지만 영양가 따져가며 음식 색깔의 조화까지 맞춰 점심 도시락을 꾸리다 보면 내 기분이 먼저 좋아졌다. 도시락 먹는 재미도 살찌지 않는 체질도 위암이 준 선물이라고 하는 남편. 얼굴에 ‘나 좋은 사람’이라고 쓰여 있기라도 하나 오래 우리 부부를 알아 온 친구들한테는 남편 흉도 못 본다. 흉 좀 봤다 하면 백번 내 욕심 탓이라고 몰아붙이니.
나는 남편이 이번에도 암이라는 걸 안 순간부터 공붓벌레가 됐다. 그의 보호자이자 간병인으로서 또 영양사로서 알아두어야 할 게 무궁무진했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무엇을 믿고 따라야 하는지 혼란스러웠지만, 기본과 상식을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참고할 것을 메모하고 암기했다.
예전 위암에서 벗어났을 때 주변에서 그랬다. 나의 지극정성이 남편을 살렸다고. 지극하다는 게 뭘까. 간절한 마음으로 정성을 다한다는 말일까. 나는 이제부터 또 지극정성을 다 해서 내 사람을 살려내야 한다. 관해니 완치니 하는 사람들의 묘수 수백 가지를 다 따라 하고 싶은 마음, 그게 간절해지니 암 통보 앞에서 감상에 빠질 여유가 없었다.
암과의 싸움, 알아갈수록 혼돈의 연속이었다. 생 녹즙이 암 환자에게는 안 좋다고도 하고 누군 생채 식을 해야 한다고 하고 무조건 키토 식단을 따르라는 사람도 있고... 항체를 생성하고 면역에 좋은 단백질을 어떻게 공급해야 할지 채점자 맘대로 정해놓은 답을 말하는 것 같아 마음이 복잡했다. 이런저런 정보를 접하다 보니 암이 온 당뇨인에게 안전한 식품이란 세상에 없어 보였다. 한편, 그동안 우리가 찾아 믿고 먹은 것을 능가할 건강한 식단은 따로 있어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그런 학습이 말짱 도루묵이 될 줄이야. 이론은 이론일 뿐, 암 환자의 현주소는 다르다. 그 무엇도 실천할 수 없는 지경이라는 게 있다. 암에 좋은 것으로 골라 먹고 암을 이겨내기 위해서 운동하고.... 그 많은 교과서의 내용이 개인 현재 상태와 들어맞기란 쉽지 않다. 그저 환자가 원하는 환경을 만들어 주고, 먹고 싶어 하는 걸 줄 수밖에 없다. 하루아침에 중환자가 되어 버린 그는 그동안 몸에 좋다고 끊임없이 만들어 주던 음식은 쳐다보지도 않는다. 불현듯 생각났다고 찾는 그 음식이 암 환자에게 괜찮을까 조심스러웠지만 나중에는 그렇게나마 먹고 싶은 걸 말해 줄 때가 좋았다 싶게 모든 먹을 것을 거부한다. 항암을 앞두고 남편이 장담했던 잘 먹고 많이 걷고는 한낱 바람에 불과한 걸까. 어느 시기가 지나면 궤도를 찾아 본인의 의지대로 할 수 있게 되는 것일까.
항암 하면서 걸으러 나간 게 몇 번인가. 내가 듣기 싫은 말 하면 겨우겨우 한 번 나갔다가 제풀에 지쳐 다시는 나갈 생각을 못 하고 한 사이클을 끝낸다. 살려면 먹어야 하고 운동해야 한다는 말도, 같이 나가자고 조르는 것도 어느 정도 가능해 보일 때 말이다. 마음마저 약해진 남편과 조급해진 내가 부딪쳐 본들 얻을 게 없다. 오죽하면 저럴까 싶어 더는 말을 못 한 채 항암을 이어갈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면서 지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