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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 꽃 향기 Nov 17. 2024

수프를 허겁지겁 먹을 수밖에 없는 이유

상쾌한 아침이라고 저 혼자 북 치는 알람을 밀어 끈다. 조금 잔 것도 아니건만 한잠 못 잔 듯 눈이 뻑뻑하다. 오늘은 별일 없으려나. 아침으로 무얼 준비하지. 이리저리 생각만 뒤채다 벌떡 일어난다. 밤사이 그이가 많이 아팠을 수도 있는데 싶어서다. 잠에 떨어지면 옆방에서 부르는 소리를 들을 수나 있겠는가.

    

남편은 아직 잠들어 있다. 반듯하게 누워 얼굴엔 미소까지 번져있다. 무슨 좋은 꿈이라도 꾸는 걸까. 차마 깨우지 못하고 방을 나온다. 미온수를 만들어 마시며 그의 침대 탁자에도 물 한 잔 가져다 놓는다.    

  

아침은 감자브로콜리 수프다. 수프를 거의 매일 만들다 보니 손에 익어 시간 얼마 걸리지 않아 부드럽고 구수한 수프가 완성된다. 두유제조기를 이용해서 만들어 본 적도 있는데 내가 직접 끓이고 갈아서 만든 수프가 맛있다는 걸 알고부터는 만드는 일도 번거롭게 여겨지지 않는다. 남편은 완전히 갈아버리는 것보다 몽글몽글 식감이 살아 있는 걸 좋아해서 힘을 주다 풀다 신경 써서 갈아줘야 한다. 오늘 수프는 농도도 식감도 적당하다. 그것만으로도 상 차리는 맘이 가볍다. 부드럽고 구수한 수프와 샤인머스캣 몇 알, 빵 세 조각이 우리 부부의 아침이다. 이것저것 차려봤자 남편은 손도 안 대니 간소하게 차리려고 애쓰는 중이다. 하긴 아침으로 그것만 다 먹어 줘도 황송하다.     

 

몇 차례 남편을 불러보지만 나올 기미가 없다. 그의 방으로 들어간다. 침대 끝에 걸터앉아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 어깨를 싸안으며 최대한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한다.


“왜, 복통이 와?”


그는 말없이 명치께만 누르고 있다.


“약 줄까?”


그래도 말이 없다. 표정도 아까 잠잘 때와 너무 다르다. 통증이 있을 땐 참지 말고 약을 먹으라고 하던데 내성을 두려워하는 남편은 통증이 꽉 찰 때까지 참는 편이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옆구리에 손을 짚은 채 그가 나온다. 자동 버튼에 눌린 것처럼 일어나 부축해 보지만 부축하는 자세가 맘에 안 차는지 몸으로 짜증이다. 진통제와 물을 그 앞에 가져다 놓아도 그는 고개를 꺾은 채 앉아 있다. 그러다 배를 주무르는 동작을 반복할 뿐 수저 들 염을 안 낸다. 식은 수프를 다시 데워 가져다 놓으면서도 어서 먹으라는 말을 할 수가 없다. 오죽하면 저럴까.    

  

수프는 식어도, 남편이 통증과 싸우는데 나 혼자 먹을 수 없고, 먹은들 목구멍으로 넘어갈 리 없다. 어서 먹으라 보채듯 앞에 앉아 있는 것마저 거슬릴까 베란다로 나간다. 귀는 식탁에 걸어 놓고 시든 화초 잎을 떼고 있다. 건너오는 구역질 소리가 장난 아니다. 창자까지 토해놓을 듯 큰 소리로 웩웩거린다. 저 정도면 수프 아닌 별 것도 먹을 수 없지 싶어 거실로 들어온다. 남편은 온몸으로 헛구역질하다가도 홀린 듯 수프를 떠먹고 있다. 내가 보고 있다는 걸 알면 수저를 놓아버릴 것 같아 방으로 들어간다. 떠먹는다기보다 허겁지겁 쓸어 넣는다고 해야 맞는 행위. 언젠가 왜 그리 급하게 먹느냐고 했더니 그는 말했다.      


 구토증이 잠시라도 가라앉았을 때 먹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살기 위해서 먹는다’는 우스갯소리 함부로 해서는 안 될 것 같다.


먹는 소리가 한참 나더니 조용하다. 방을 나와 보니 그는 식탁에 없다. 수프 그릇만 비워졌을 뿐 다른 건 손도 안 댔다.   

   

기어이 수프를 목구멍으로 밀어 넣느라 지친 그는 침대에 까부라져 있다. 항암을 건너는 게 저리 힘드는데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없다. 곁에서 그냥 바라봐 주는 것, 같이 견뎌 주는 것, 그가 내는 화를 아뭇소리 말고 받아 주는 것, 맛을 전혀 모르면서 겨우 넘기기 바쁜 음식일지언정 정성을 다해 만드는 것뿐이다. 그처럼 아파보지 않고는 그가 얼마나 아픈지 알지 못한다. 그가 아플 때 만 분의 일이라도 대신 아파줄 방법이 없을까. 두 종류의 패치를 붙이고 마약성 진통제를 먹어도 통증이 잡히지 않을 때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  단 한 가지 없다는 게 이토록....

   

나는 미어지는 감정을 추스르면서 그릇들을 닦아 헹구고 또 헹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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