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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 꽃 향기 Nov 24. 2024

항암과 입덧, 무슨 상관이 있을까?


맛집으로 소문나 대기 줄이 길다는 곳, 기다려야 한다는 말에 가 볼 생각조차 못해본 구파발역 부근 <탕면> 집에 갔다. 먹을 곳을 찾다 찾다 혹시나 하고 전화했더니 오늘은 웬일인지 대기가 없다는 말에 서둘러 간 것이다. 일단 그 유명하다는 짬뽕과 후기 중에서 칭찬이 가장 많았던 가지튀김을 시켰다.   

   

까만 제복의 청년이 보기만 해도 먹음직스러운 짬뽕을 탁자에 내려놓았다. 인정은 못 받고 있지만 그래도 나는 기미상궁. 남편 얼굴을 슬쩍 보고 짬뽕 국물 맛을 봤다. 혀에 부드럽게 감기는 맛, 뜨겁고 시원 칼칼했다. 우리야 운 좋게 바로 들어갈 수 있었지만 과연 긴 줄 끝에 서서 대기할 만했다. 내 표정에 안심했는지 남편이 국물을 떠먹었다. 잔뜩 기대하고 하는 양을 보고 있는데 그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아니야?”

  “아니...”


우리도 참, 멋대가리라고는 약에 쓰려고 해도 없는 부부다. ‘어때? 맛있지?’ ‘응, 괜찮네.’ 하면 어때서 ‘아니야?’ ‘아니’ 라니. 남편의 ‘아니’는 나쁘지 않다는 표현으로 생각했는데 한 수저 떠먹었을 뿐 짬뽕에 덤벼들기는커녕 아예 본척만척했다. 왜 저러나 싶어 뻘건 국물을 내가 다시 떠서 맛을 봤다. ‘이상하다. 내 입에 딱인데….’ 그 집 시그니처메뉴를 앞에 두고 갸우뚱한 우리 행동을 고스란히 보고 있었다는 듯 아니지 '이분들 참 뭘 모르시구먼 어디 이것도 품평해 보시지요' 하듯 종업원은 보무도 당당하게 가지 튀김을 내려놓았다. 그러곤 건조한 말투로 “속이 많이 뜨겁습니다.” 했다.


뜨겁다는 말을 들었을 텐데도 남편은 가지덩어리를 덥석 집어다 물었다. 좀 식을 때까지 기다리지 왜 저럴까 싶은데도 가지를 집는 동작이 어찌나 결연해 보이던지 무슨 말도 할 수 없었다. 나는 그저 시뻘건 국물 속에 들앉은 짬뽕 면을 건져다가 후룩후룩거렸다. 배가 그리 고프지도 않았는데 정말 맛있었다. 면발이 다른 중국집보다 가늘고 탱탱 쫄깃한 게 맘에 들었다. 소주 한 병 각은 될 듯싶은, 그래서 술친구들 얼굴이 잠깐 떠오르는 짬뽕 맛이었다.       


가지튀김은 남편 입맛에 맞는 모양이었다. 몇 개째 후후거리며 먹더니 짬뽕을 밀어 둔 게 신경 쓰였나 짬뽕국물에서 비릿한 냄새가 나는 것 같다고 작게 말했다. 요즘 음식마다 비린내가 난다고 하는 터수에 가지 튀김만이라도 먹어주는 게 고마웠다. 나 입덧할 때도 음식 비린내 때문에 고역이었다. 항암 중인 남편이 비린내 타령하는 걸 예사로 들을 수 없는 이유다. 항암과 입덧, 무슨 상관이 있는 걸까. 오심과 구토는 다반사이고 오래전에 먹었던 음식을 찾거나 생판 엉뚱한 걸 먹고 싶어 하는 것도 입덧과 유사하지 않은가. 한 생명을 품고 입덧을 하듯 항암이야말로 생명을 다시 얻기 위한 고행인지도 모르겠다.   

   

가지가 그의 입맛에 맞으니 나는 그걸 아껴줘야 했다. 젤 작은 걸 하나 골라서 입에 넣었다. 아, 겉바속촉의 끝판왕! 세상 흔하디 흔한 가지가 이토록 고급스럽게 변신하다니 놀랍기까지 했다.   

   

가지를 먹다 보니 입맛이 좀 돌았을까. 남편은 짬뽕 그릇 속에서 몸피를 불려 가는 면을 건져다 먹기 시작했다. 그럴 줄 알았으면 그놈의 면이라도 좀 남겨둘걸. 그가 쳐다보지 않던 짬뽕이라 더 붇기 전에 먹어야 한다는 일념에 후룩거린 나한테 짜증이 났다. 에구, 그릇에 남은 짬뽕 건더기들을 일일이 건져 그이 앞 접시에 담았다. 나는 그동안 그에게 무슨 잘못을 그리 했을까. 목구멍에 밀어 넣었던 가락면이 도로 기어 나올 것 같아 꿀꺽 소리를 내면서 물을 마셔댔다.      


그가 잘 먹던 가지튀김이 남았다. 덤빌 때는 다 먹을 것 같더니 남편이 접시를 슬며시 내 쪽으로 밀었다. 나는 가지튀김을 먹고 싶지 않았다. 아니 먹어서는 안 될 것 같았다는 말이 맞다. 남은 걸 포장해 달라고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남편은 식곤증이 오나 까막까막 졸았다. 이면도로의 과속방지턱을 넘을 때마다 그가 깰까 봐 조심스레 브레이크 페달을 밟았다. 명치끝이 답답한 게 체기가 느껴졌다. 애써 외면해 오던 우울이 내 앞에 끼어들었다. 나는 옆을 가린 경주마, 오직 앞만 보고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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