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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 꽃 향기 Dec 01. 2024

암환자의 뇌진탕

24년 9월 27일

24년 9월 27일

      

10차 항암을 끝내고 집에 돌아온 시간은 밤 9시였다. 남편 옷을 갈아입히고 안방에 들어가 짐정리를 할 때였다. 거실 쪽에서 뭔가 짐작도 못할 소리가 크게 들렸다. 급히 뛰쳐나갔다. 남편이 팔다리를 쭉 뻗고 누워있었다.

    

남편은 상황을 인지하지 못하는 듯 멍한 상태였다. 뭐라 말을 시켜도 대답을 못하고 눈만 멀뚱히 뜨고 있었다. 내 안 어디에서 그런 괴상망측한 소리가 터졌을까. 나는, 그에게 말을 시키며 울고, 부러진 곳 없나 움직여 보라며 울었다. 그러니까 조심하랬지 넘어지면 큰일 난다고. 어쩌고 저쩌고.... 이미 물은 엎어졌는데 하나마나한 말을 순서 없이 내뱉으면서 꺽꺽댔다. 꺼억꺼억거리며 119를 눌렀다.    

 

남편이 신음하면서 얼굴을 옆으로 돌리자 코에서 피가 흘렀다. 생경스러울 만큼 새빨간.  휴지 뭉치째 그의 코에 갖다 댔다. 뒤통수에 손가락 두 마디 정도의 찰과상도 눈에 띄었다. 그 부위 두피가 벗겨지고 도독 부어올라 있었다.


남편은 일어나 보려고 애를 쓰고 나는 그 상황에서 그래서는 안 될 것 같아 일어나지 못하게 말렸다. 그가 가만히 있으면 뭔가 불안해져 나는 또 어떻게든 일으켜보려고 기를 썼다. 그렇게 말도 안 되는 행동을 계속하다가 딸에게 전화했다. 목소리만으로도 감지했는지 딸은 전화를 받는 순간 울음을 터트렸다.

     

내 집에서 벌어진 일인데 나의 일이 아니고 어디서 본 듯한, 그러면서도 낯설기만 한 상황. 정지 화면 같기도 하고 느린 화면 같기도 한, 그 시간이 길게 느껴졌다. 그럴 때의 행동요령을 어디서 보기도 듣기도 한 것 같은데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그저 우왕좌왕 한 채 시간이 흘렀다.  

    

어느 날은 어지럼증이 있다고도 했고, 아침에 저혈압 증세가 보여 사탕을 먹은 적도 있지만 어쩌다 넘어진 걸까. 병원에 있다가 퇴원하면 어딘가 좀 흥분되어 있는 걸 느꼈는데 그러다 방심하고 빨리 걷다가 휘청했을까.     

  

급히 달려온 딸, 사위가 남편에게 무슨 말인가를 자꾸 시키면서 119에 현재 상황을 설명하는 사이 구급차가 도착했다. 사위는 나에게 천천히 오라고 신신당부를 하며 구급차에 동승하고 나는 따로 내 차를 끌고 은평성모병원 응급실로 갔다.    

  



처음 들어가 본 응급실. 우리가 갔을 땐 영화나 TV에서처럼 급박한 현장 모습은 아니었지만, 무겁고 서늘한 공기에 몹시 긴장이 됐다.   

   

CT를 찍은 결과 남편 뇌에 금이 갔고 약간의 출혈이 있었다. 피가 멈추고 스며들어가는지 계속 흐르고 있는지는 몇 시간 후 다시 CT를 찍어 봐야 알 수 있다고 했다. 그렇게 염려할 상황은 아닌 것 같다는 의사 말을 들으면서도 염려할 일이 뭔지 몰라서도 못 묻고 두려워서도 묻지 못했다.      


이어진 항암으로 쇠약해진 몸과 마음이 뇌진탕 충격에 얼어버린 남편, 홑겹 면포 한 장으로 몸을 감싸고 나무토막처럼 누운 남편, 그가 생각난 듯 자꾸 자기 신발을 찾았다. 급히 앰뷸런스에 실려 오느라 미처 챙기지 못했다고 하는데도 침대 아래에 있으니 찾아보라는 말을 했다. 남편은 항암 하느라 입원한 병실로 착각하는 듯했다. 아까 집에서 넘어져서 응급실에 실려온 거라고 해도 내가 언제 넘어졌느냐는 말만 되풀이했다. 옹색한 침대에 부려져 현재를 인지하지 못하는 남편의 백지장 같은 얼굴을 보고 있자니 명치끝이 뻐근해왔다.     

 

집 나설 때 정신없이 걸치고 나오느라 입은 옷이 제법 두꺼운데도 어깨가 시리고 다리가 시리고 마음이 시려 자꾸 움츠러들었다. 환자복으로 갈아입히느라 벗겨둔 남편 셔츠를 목에 칭칭 감은 채 뭉쳐놓은 빨랫감처럼 앉아 있었다.      


어디 불편한덴 없냐 아픈 곳은 없냐 물어도 남편은 묵묵부답. 간호사가 수시로 와서 눈 떠 보세요, 다리 들어 보세요, 손에 힘 한번 줘 보세요 등등 몸 상태를 확인하고 갔다. 그런 일련의 조치에서 이상이 발견되지 않는 것만 다행이고 감사해 그의 창백한 얼굴 가까이 내 얼굴을 대며 그가 안심하기를 바랐다. 혼이 나간 듯한 그의 표정이 제자리로 돌아오길 바라며 그의 손과 발을 주무르고 그의 뺨을 어루만졌다. 다시 CT를 찍어볼 때까지는 어떻게든 응급실을 사수해야 하니 내가 할 일은 그의 동태를 놓치지 않고 살피는 일뿐이었다.  

   

몸도 마음도 춥기만 한 응급실 시계는 어찌 그리 느린지. 그가 팔다리를 못 쓰고 말을 못 하는 변고가 아니라는 것에 마음이 놓였을까. 고도의 긴장에서 놓여난 때문일까. 피곤이 한꺼번에 몰려와 내 감각들을 마비시켰다. 응급실 찬 바닥 어디라도 등을 대면 살 것 같았다.     


어찌어찌 시간은 흘러 다시 찍은 CT에서 염려한 징후는 보이지 않는다며 퇴원해도 된다는 말을 들었다. 그 정도 타격이면 일반인도 회복하는 시간이 걸리는데 항암 중이고 체력이 극도로 약한 사람이라 걱정이라고 했다. 시간이 지나면 처음과 다른 증세가 발현할 수 있으니 잘 지켜봐야 한다는 말이 집으로 향하는 마음을 짓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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