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응급실을 벗어나 집에 돌아와서도 안정이 안 되는 모양이었다. 뭔가 초조한지 안절부절못했다. 내가 하는 말을 얼른 알아듣지 못하고 마주 보며 큰소리로 말을 해야 겨우 알아들었다. 귀가 웅웅거린다고 켜놓지도 않은 TV를 끄라고도 했다.
그가 양송이 수프에 빵조각을 적시다 말고 자기 손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나를 부르더니 자신의 떠는 손을 보라며 턱짓을 했다. 뇌진탕 후 그의 변화를 유심히 살피던 중이었으니 나도 이미 감지하고 있던 터였다. 내가 뇌진탕 후유증이라기보다 항암 부작용일 수 있으니 신경 안 쓰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남편은 그래도 미심쩍은 듯 빵을 든 채 자기 손만 내려다보았다. 악력을 확인해 보자며 내가 손을 내밀었다. 남편의 악력에 이상이 없었다. 거보라고, 자기 손힘이 예전보다 세진 것 같다고 허풍을 좀 섞었더니 피식 웃으며 내 손을 놔주었다.
남편이 정색을 하고 말했다. 이상하게 머리가 무겁고 아프다고. 어디에 부딪힌 기억도 없는데 그렇다고. 넘어져서 병원에 갔었다는 말을 또 해야 했다. 하루 사이에 벌어진 일의 정황을 몇 번 말했건만 뇌에 입력이 안 되는 걸까. 들을 때마다 처음 듣는 표정을 지었다.
안방에서 빨래를 개는데 전화가 왔다. 남편이었다. 날더러 대뜸 어디 갔느냐고 물었다. 안방에 있다고 하니 자기가 격리된 거 아니냐고 했다. 방문을 활짝 열어둔 방에 누워서 격리라니. 그러면서 자기 방에 웬 마네킹을 세워두었냐고 물었다. 구석 옷걸이가 마네킹으로 보이는 모양이었다.
남편이 넘어진 후 다용도실 쪽에 길게 붙여놓았던 찻장을 거실에서 화장실로 이어지는 통로에 배치했다. 그가 찻장을 짚으며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그가 주로 다니는 바닥에는 두꺼운 탄력 매트와 카펫을 깔았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지만 또 다치는 건 막아야 했다. 그런 조치까지 낯이 설어 격리라는 말을 사용했을까. 옷걸이마저 마네킹으로 보였을까.
낮에 조짐을 눈치챘어야 했나. 이상을 감지했다고 해도 미리 내가 뭘 할 수 있었을까.
그날 밤 그는 밤새 잠꼬대? 했다. 잠을 자면서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리는 헛소리를 잠꼬대라고 정의한다면 남편이 잠을 잔 것 같진 않으니 그렇게 규정해서는 안 될 것 같기도 하고. 그땐 남편의 헛소리나 잠꼬대가 섬망이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는데 지나고 보니 밤샘 잠꼬대도 섬망이었다고 여겨진다.
말수 적은 남편이 일 년에 걸쳐서 할 말을 미리 다 하는 것 같았다. 그동안 어쩌다 있었던 잠꼬대하고는 양상이 달랐다. 우습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고 한편 무섭기도 한 잠꼬대가 과격해지거나 다르게 변할까 그의 옆을 떠날 수 없었다. 문장으로 이어지지 않고 그저 단발성 어절만 나열하기 때문에 그가 하는 말의 맥락을 짚긴 어려웠지만 그는 대단히 진중했다. 그의 목소리는 평소 때보다 굵고 밝았는데 누구와 대화를 하는 듯한 말투도 흥미로웠다. 듣다 듣다 내가 말참견을 하면 난색을 하고 나를 쳐다봤다가 금세 아랑곳하지 않고 헛소리를 이어갔다.
특이한 것은 잠꼬대를 하면서 끊임없이 손발을 움직인다는 것이다. 자못 규칙적이라고도 할 수 있게 움직이는 팔다리. 망상 속을 헤매다가 이상한 병으로 흘러가는 건 아닌가 걱정이 되어 손을 가만히 붙들고 있기도 했다.
암환자가 뇌진탕을 당한 후에 벌어지는 증상에 관해 검색을 해봐도 우리 경우와 맞아떨어지는 건 없었다. 그런 행동과 연관 지어 생각할 수 있는 병명이 두려운 나머지 검색을 포기했다. 그의 알 수 없는 잠꼬대를 자장가 삼을 수 없었던 나 역시 뜬눈으로 꼬박 밤을 새웠다. 응급실에서 퇴원한 28일에 남편이 잘 잤으면 다음 날 신경외과 진료를 급하게 잡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음 날은 다음에 올 새로운 꿈을 꾸고 싶다. 이상하기만 한 잠꼬대 이야기는 그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