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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 꽃 향기 Dec 11. 2024

아는 만큼 무섭다

어찌어찌 그의 발치 끝 매트에서 잠이 들었다. 그런데 나는 뭘 감지하고 일어난 걸까. 남편이 침대 위에서 몸을 일으킨 순간과 내가 바닥에서 몸을 일으킨 시각이 동시였다면 누가 믿을까. 수 없이 연습해도 될까 말까 한 잠결 고난도 기술을 우리가 아니 내가 해내다니. 평소 잠이 들면 떼어가도 모르던 사람이 자동 버튼에 눌린 듯 그런다는 게 신기하다.


솟구쳐 일어난 나는 남편의 팔을 잡으며 화장실에 갈거냐고 묻는다. 나를 쏘아보는 그의 눈빛. 얼결에 그를 잡았지만 나는 반수면 상태였을 테고 실내가 환하지 않아서 그의 눈을 보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다정함과는 거리가 먼, 낯선 그의 눈빛을 보았다고 생각한다. 무척 당황스럽지만 남편을 내버려 둘 수는 없는 터, 그의 팔을 부여잡고 걸어가서 화장실 문을 열어 준다. 변기 물 내리는 소리가 들리고, 문을 나서는 그를 부축해 돌아와 침대에 눕힌다. 무엇을 달리 할 수 없는 나는 그의 침대 아래에 몸을 다시 눕힌다.  

     

그의 냉냉함에 긴장해서인가 머리가 띵하다. 살갗은 햇빛에 바짝 마른 수건처럼 뻐시다. 이대로 잠이 들 수 있을까. 예민해진 신경 줄을 달래며 심호흡하는데 뒤척이는 소리와 함께 남편이 내뱉는 신음이 들린다.      

     

“아이고, 아~ 아!”    

 

잔뜩 졸아든 나의 간을 저격하는 소리다. 나는 한쪽 손을 이마에 올린 자세 그대로 꼼짝할 수 없다. 그가 보이는 침대 쪽으로도 그가 안 보이는 벽 쪽으로도 돌아눕지 못한다. 완전한 스톱모션. 심장은 내리쳐질 칼날을 기다리는 순간처럼 오그라들어 간다.   



   

저러다 훌떡 일어나 바쁜 일이 있는 사람처럼 부산스레 뭔가를 찾고, 덮던 이불을 들추고 들추고 끝없이 들추다 드디어 잡았다는 듯 씩 웃으며 엄지와 검지를 구부려서 내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을 집어다 버리고, 침대 위에 올라서서 이불자락을 펄럭이며 갰다 펼쳤다를 연속 재생하고, 옷걸이에 걸린 점퍼를 내려서 입으며 계단에서 누가 기다리니 나가 봐야 한다나, 이제 집에 가야 할 시간이라며 핸드폰을 파자마 주머니에 넣으며 내 가방 어디 있지 둘레둘레, 침대 아래 고양이가 숨었다며 침대를 밀고 당기고 밀고 당기고, 말리는 나를 밀치고 거실로 나가 이 동네는 불 다 끄고 자나 보네 구시렁구시렁. 




새벽 두 시가 좀 넘었으니 날이 환해질 때까지 대여섯 시간만 잘 참으면 돼, 하고 나 자신에게 최면을 걸어보지만, 그래도 무섭다. 그 고통이 얼마나 큰가를 이미 알기에 닥칠 고통을 더 아프게 예상한다. 머리는 양쪽에서 무거운 쇳덩이가 조이고 있는 듯 무겁고, 가슴은 터질 듯 쿵쾅댄다. 신음 소리가 터지기 직전. 내 입에서 소리가 새지 않게 이빨을 꽉 다문 채 숨을 참는다.      


무조건 이 방을 탈출해야 한다. 나는 출발선에 선 단거리 선수. 마음의 신호음 동시에 몸을 날려 단숨에 일어나 방을 빠져나온다. 어쩌면 좋은가. 남편을 지키겠다고 그의 침대 아래 매트를 깔았는데 남편이 내가 알던 남편이 아닌 게 무서워 자리를 박차고 만 지지리도 못난 아내다.     


그의 방 입구가 바로 보이는 식탁에 앉아 노트북을 연다. 간간이 남편의 신음을 듣는다. 그가 진짜 아파서 소리를 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강력한 마약 진통제를 꺼내놓고도 그의 옆에 가지 못한다. 약을 먹이려고 그를 일으킴으로써 섬망을 부추기는 결과를 초래할까 봐 나는 꼼짝하지 못하고 앉아만 있다.  

    

새벽 4시. 그는 신음소리를 낼뿐 조용하다. 한기가 든다. 오리털 점퍼를 둘러 쓰고 있어도 와드드 떨린다. 이제 새삼 잠이 올 것 같지는 않다. 뜨거운 물을 마셔보려고 끓였으나 목구멍으로 넘길 수가 없다. 어지럽다. 자꾸 목이 멘다. 남편에게 주려고 준비한 진통제를 밀어 두고 내가 삼킬 약을 찾아야겠다. 남편이 잠든 방 입구에 서서 그를 바라본다. 그는 숨도 고르게 잠들어 있다.  


아, 나는 서술하고 싶지 않은 그가 아닌 그의 이야기를 이렇게 쓰게 되어 가슴이 아프다. 그의 초점 없는 눈과 끊임없이 손가락을 움직이며 이불자락을 만져대던 생각만 해도 명치끝이 묵지근하다. 그리고 무섭다.   

  

결국 그날 남편은 섬망을 겪지 않았다. 잘 자는데 나 혼자 겁을 먹고 쑈를 한 셈이다. 나는 목울대를 치받는 묵직함을 애써 누르고 염치없고 부끄럽지만 참 오랜만에 성호를 긋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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