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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 꽃 향기 Dec 08. 2024

당신은 누구세요?

24. 09.29. 뇌진탕 후 이틀째 섬망

24.09.29.

한숨 못 자도 아침은 온다. 밤새 벌어진 일을 생각하니 응급실 이용했던 병원의 신경외과 진료 날짜까지 기다릴 수 없었다. 항암치료 중인 병원에 급하게 외래를 잡았으니 서둘러야 했다. 창이 환해지길 기다렸다는 듯 제풀에 겉잠이 든 남편을 깨웠다.   

  

응급실에서 찍은 영상은 참조만 할 뿐 CT를 다시 찍었다. 다행히 더 이상 피는 흐르지 않고 넘어질 때 흐른 피도 스며들고 있다고 했다. 신경외과 의사는 뇌진탕으로 인한 섬망은 일반적인 증세라고 말했다. 잘 자고 잘 먹으면 곧 사라진다고. 후렴처럼 기력이 쇠한 상태라 신경 써서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 어차피 집중해서 봐야 할 터, 뇌진탕 환자의 섬망이 ‘일반적인 증세’라는 말에 별★표라도 그려 넣고 싶었다.

     

섬망, 말은 들어봤지만 그것이 어떻게 남편의 멱살을 쥐고 흔들지 짐작이나 했을까. 표준국어대사전을 펴 들었다. '섬망: 외계(外界)에 대한 의식이 흐리고 착각과 망상을 일으키며 헛소리나 잠꼬대, 또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며, 몹시 흥분했다가 불안해하기도 하고 비애(悲哀)나 고민에 빠지기도 하면서 마침내 마비를 일으키는 의식 장애.'라고 나와 있다.    

  

맞다. 남편은 병원진료를 보고 온 날, 저녁먹고 방에 들어간 후부터 다음 날 아침까지 다른 사람이 되어버렸다.    

  

잠시도 자기 본연으로 돌아오지 않은 혼돈의 시간.     

 

침대에 누운 채로 손발을 움직이고 끊임없이 헛소리하던 지난밤과 또 다른 양상의 섬망이었다. 상상해 본 적 없는, 소설이나 영화에서나 봤음직한, 그렇지만 내 남편이기에 특별하고 더 두려운 행동의 연속이었다. 그로기 상태에서 어떻게 밤새 서성일 수 있는지 아이러니였다. 섬망에 대해 알았으니 있는 그대로 받아주려고 해도 낯설고 무서웠다. 자의가 아닌 뇌의 장난일 뿐이라고 머리로 백번 이해해도 가슴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신경외과 의사 선생님이 최대한 다정하고 부드럽게 대하라고, 그래야 안심하고 섬망이 잦아든다고 했는데 나도 모르게 그의 행동을 저지하고 목소리가 커졌다. 그에게 묻고 싶었다.  

 

“당신은 누구세요?”     

 

밤을 꼬박 새우고 난 아침, 제정신은 아니어도 밥은 먹여야 할 것 같았다. 밥 먹자고 하니 의외로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부리나케 쇠고기야채죽을 만들어 물김치와 내놓았다. 야단맞은 착한 아이처럼 앉아서 죽을 떠먹는 남편 얼굴은 밤에 그런 일이 있었던 사람 같지 않게 순해 보였다.   

   

그런데 헉! 죽을 먹고 일어나면서 나를 한 번 흘깃 보는 남편의 눈빛. 섬망증세가 사라진 건 아니었다. 스티로폼만큼이나 무게가 느껴지지 않는 그를 부축해서 침대에 눕혔다. 남편은 그대로 누운 채 또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해댔다. 제발 더는 일어나지 말고 그러다 잠들기를 바랐다.  

    

10시나 됐을까. 사위가 왔다. 왜 출근을 안 했나 했더니 10월 1일 공휴일이란다. 제정신 아닌 장인과 사위의 연극 같은 대화가 이어졌다. 섬망 중에도 대화가 가능하다니... 보면서도 믿기지 않는 현실이었다. 30분쯤 그러더니 눈이 이미 풀려있던 남편은 잠이 들었다.     

 

세상모르고 자는 남편, 누구의 의식으로 깨어 있었을. 내가 그를 위해서 할 수 있는 게 뭘까. 어떻게든 먹여서 기력을 회복시켜야 한다는 것뿐 떠오르는 게 없었다. 끊임없이 들락거리면서도 차마 깨우지 못하다 오후 5시에 그를 일으켰다.       


나는 또 급해졌다. 딸이 만들어 놓고 간 국수 고명을 얹어 멸치국수를 말았다. 딸이 만든 거라고 해서 그런가 적은 양이 아닌데도 다 먹었다. 그러곤 다시 침대로 가서 잠에 곯아떨어졌다. 저러다 오밤중에 일어나 섬망 증세가 다시 나타나는 건 아닌가 걱정이 됐다. 나는 한숨 못 자 몽롱한 상태인데도 그의 침대 밑 매트에 누울 수가 없었다. 남편이 잠만 자도 걱정 안 자도 걱정, 나는 걱정 인형을 끌어안고 깨어 있어야 하는 남편수비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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