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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 꽃 향기 Dec 15. 2024

잠에 빠진 남자


남편이 잠에 빠져있다. 3일 밤낮을 내리 섬망에 잡혀 있었으니 당연하리라. 침대 끝에 앉아 그를 바라본다. 핏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얼굴, 가슴에 두 손 마주 올리고 잠든 모습이 애잔하기 그지없다.

    

체력이 바닥을 쳐도 손톱은 자라는지 그의 손톱이 기름하다. 깎아줄 때가 지났다. 아무리 잘난 사람도 오른손이 오른 손톱을, 왼손이 왼 손톱을 깎을 수 없다고 한 누군가의 시가 생각난다. 왼손과 오른손은 사이좋게 서로 깎아주고 다듬어 줘야 한다는데 남편의 두 손은 서로 모르쇠다. 이제 자기 손톱을 스스로 깎지 않는다는 얘기다. 손톱이 자라든 말든 그는 관심 밖이다. 어쩌다 보면 쭉 자라 있어 내가 잘라준다. 남이 나의 손톱을 잘라주는 시기가 온다는 것까진 생각하지 못했는데 참 쓸쓸한 일이다. 손톱 깎아 준 대신 내 어깨 좀 주물러 달라고 하면 남편은 어떤 표정을 지을까. 표정을 잃어버린 그를 웃게 하려고 별 생각 다 해본다.    

 

잠든 남편을 보니 33년 전 위 항암 할 때가 생각난다. 사십도 안 된 나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만큼 초췌하게 변해버린 남편 옆에서 눈물바람깨나 했던 기간이었다. 그가 잠든 머리맡을 지키며 빠져있는 머리카락 한 올 한 올 집어낼 때마다 바쳤던 화살기도. 초등학교 2학년인 딸아이가 대학 갈 때까지 만이라도 살아 있게 해달라고, 밥을 좀 먹고 표정이 괜찮다 싶으면 우리가 할머니 할아버지 노릇을 할 수 있을 때까지로 욕심을 부렸지. 그러다 체력이 곤두박질쳐서 낮밤 가리지 못하고 잠만 잘 땐 제발 딸아이가 고등학생이 되는 것만 보게 해 달라고 했던가. 어설픈 가톨릭 신자의 기도는 오직 남편의 생명줄을 잡고 늘어졌다. 이런 과정도 나쁜 경험만은 아니었다고 웃으면서 말할 수 있을 거란 확신이 있었다. 그 염원으로 하루하루 버티다 보니 우리에게 기적이 왔다.      


그는 암을 떨쳐냈고 병원 한번 드나드는 일 없이 33년을 거뜬히 넘었다. 산이란 산은 다 누비고, 마라톤 풀코스 완주 메달이 서랍에 가득할 정도로 자신의 건강을 챙기며 산 남편, 그런 사람이 가상치도 않나 염치도 뭣도 없는 암은 또 그를 넘어뜨렸다. 우린 암 괴물과의 전쟁 한복판에 서 있다. 단단하던 근육은 항암 차수가 늘어난 몇 개월 사이에 다 빠지고 저리 무너져 맥은 없어도 많은 분이 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계신다. 열나던 아이가 한숨 푹 자고 나서 기운 펄펄해지듯 그도 어느 날 좋아질 것이라 믿고 싶다.  

    

상념의 골이 너무 깊은가. 자리에 누웠지만 잠이 오지 않는다. 시간이 지날수록 명료해지는 의식. 거실로 나와 TV를 켠다. 뭘 봐도 집중할 수 없다. 몸은 무너져 내릴 것 같은데 뾰족한 신경 하나가 놔주지 않는다. TV를 끄고 거실을 서성이다 누워있기라도 하자 싶어 매트에 몸을 부린다.  

    

어느 순간 잠에 떨어졌는지 깜짝 놀라며 돌아온 의식을 알아차린다. 잠은 깼지만 얼른 일어나지 못하고 남편 쪽으로 귀를 연다. 조용하다. 숨소리 차분한 게 아직 잠결인 게 느껴진다. 가슴을 쓸어내린다. 내 감각이 멀뚱해지고 어슴푸레 실내 윤곽이 그려진다. 그때서야 핸드폰을 열어 시간을 본다. 3시 어름. 족히 3시간 가까이 곯아떨어졌던 거다. 


그가 종일 먹은 것이라고는 늦은 오후의 멸치국수뿐. 저렇게 자다가는 완전히 까라져서 못 일어날 텐데. 걱정이 되지만 무엇을 먹이겠다고 이 시간에 깨우는 건 아닌 것 같다. 이 생각 저 생각에 골똘하다 또 잠이 들었던가. 모카(우리 집 강아지)가 밥 달라고 낑낑거리는 소리에 가슴 벌렁거리며 일어났을 때는 아침 7시가 막 지난 시각.      


요즘 집 분위기에 저도 스트레스인지 모카가 카펫 위에 변을 봐 놓았다. 내 구시렁거리는 소리에 깼는지 남편이 침대에 걸터앉아 있다. 미온수를 만들어다 주고 그의 안색을 살핀다. 잘 잤느냐는 내 물음에 끄덕끄덕한다. 아, 잘 잤다는 고갯짓뿐인데 나는 왜 울컥할까.    

 

누룽지를 끓여 식히며 그를 부축해서 식탁에 데려온다. 팔에서 느껴지는 무게감이 하나도 없다. 허깨비다. 넘어지기 전과 또 다르게 휘청하다. 그나마 회복하려면 잘 먹어야 하는데 무엇으로 그의 입맛을 되돌리나. 체력이 어서 좋아져서 전처럼 맛 집 순례를 할 수만 있어도 좋겠다. 예전이 좋았다는 말은 흔히들 하고 산다. 먹고 싶어 하는 음식을 검색하고 그곳을 찾아 남편 핀잔을 들어가며 차를 몰고 다닐 때가 좋았다는 말을 이렇게 빨리 하게 될 줄이야.  


누룽지 먹은 지 30분도 안 되어 설사를 해버린다. 화장실에 앉았다 온 것만으로 진이 다 빠진 듯 운신을 못하고 퍼져버리는 남편. 부피라고는 한 줌도 느껴지지 않는 몸이라 이불이 숨을 쉬는 것 같다. 며칠 밤의 섬망으로 얼마나 지쳤으면 그리 자고도 또 잠을 잘까. 잘수록 까라질 텐데 깨어 있으라고도 못하겠다.    

 

설사를 하더라도 또 뭔가는 먹게 해야 할 것 같아 기력회복에 좋다는 전복죽을 끓인다. 실패다. 두 수저 입에 들였을까. 도저히 못 먹겠다고 물리고 만다. 한 시간쯤 지나서 다시 그가 순하게 잘 먹어 주던 새우 완탕을 끓인다. 식탁 앞에 앉아 보지도 않고 침대에서 거절한다. 지금 도저히 먹을 수 없단다. 남편 식욕을 살 수만 있다면 내 머리카락을 뽑아야 하나...... 심파조 탄식을 중얼거리며 식기를 정리한다.      


어느새 내 기운도 바닥이다. 나마저 무너지면 안 된다는 생각에 과용량의 비타민을 삼킨다. 이럴 때일수록 더 몸을 써야 한다. 입다 말다 눕혀놓은 옷들 다 쓸어다 세탁기에 밀어 넣고 청소기를 돌린다. 청소기 돌아가는 소리 아랑곳하지 않고 잠에 떨어진 남편을 바라보고 서 있자니 또 차오르는 그 무엇. 애써 표정을 추스르고 나와 봉지커피 두 개를 한꺼번에 털어 뜨거운 물을 붓는다. 쌉쌀하고 달달한 믹스커피가 나의 에너지를 빵빵하게 채워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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