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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 꽃 향기 Dec 22. 2024

고장 난 눈물 꼭지

샌드위치를 먹으며 흘리는 눈물


11차 항암 예약 날. 종양내과 의사를 만나기 위해  외래 진료를 신청했다. 다른 병원은 어떤지 모르지만 우리가 속한 병원은 혈액검사 후 검사 결과 괜찮으면 항암 전 의사 진료 없이 2박 3일 항암이 진행된다. 담당의사의 지시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겠지만 남편의 항암 절차가 그렇다는 얘기다. 여하튼 이번에는 남편의 현재 상태가 염려되어 의사 선생님을 먼저 만나야 했다.  

    

저번 신경외과 진료 자료와 뇌진탕의 전말을 전해 들은 담당의는 지금 몸 상태로는 항암이 어렵다고 했다. 하지만 따로 예약하려면 날짜 잡기가 어려우니 일단 입원하고 CT를 찍어서 몇 번 진행해 왔던 항암결과를 보자고 했다. 오후 2시가 지나야 병실에 들어갈 수 있는 우리의 사정을 생각해서인지 환자 몰골이 형편없어 보여서인지 담당의는 영양제를 처방했다. 주사실 쪽 간호사가 남편을 불렀다. 그곳은 항암 주사나 일반 링거를 맞는 장소인 듯했다.   

   

남편에게 간이침대가 배정되었다.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사람이 많은데 우리가 먼저 들어가는 것 같아 뻘쭘했으니 간이침대일지라도 황송했다. 자리를 잡고 보니 그곳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통로였다. 보호자까지 의자를 차지하고 앉아 있기 불편한 장소였다. 따로 가 있을 곳을 못 찾은 나는 체면 불고하고 영양제 맞는 남편 옆에 그냥 앉아 있었다. 남편 몸에 수액이 들어가는 걸 보자 긴장이 풀렸을까. 나야말로 스르르 무너져 내릴 것 같았다. 그럴 만도 했다. 뭘 해도 느린 남편을 추슬러 이른 시간에 집을 나서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그 시간까지 나는 완전 빈속이었다. 안절부절못하는 걸 눈치챈 남편이 말했다. 나가서 뭐든 좀 먹고 주사 끝날 때 맞춰 오라고.

     

어디로 갈까 정하지는 않았지만 일단 암병동을 벗어나 병원 외부로 나갔다. 무심코 고갤 들었다. 병원을 벗어나 신호 하나 건넜을 뿐인데 이토록 넓은 하늘이 내 눈에 잡힌다는 게 신기했다. 하늘을 처음 본 사람처럼 고개 꺾은 채 한참을 올려다보고 서 있었다. 병원 아닌 다른 곳, 하늘과 맞닿아 시야가 확 트인 곳으로 가고 싶단 생각이 치받쳐 왔다. 하지만 마음이 통제 못한 내 발은 대형 약국이 있고 환자식을 파는 상점이 즐비한 빌딩에 들어섰다.   


의식적으로 슬렁슬렁 걸으며 들어갈 집을 찾았다. 당기는 건 없었다. 무얼 먹지 않아도 좋으니 내 몸을 받아주는 푹신한 의자가 있는 곳이면 좋을 것 같았다. 뜨거운 커피와 조용한 음악이 흐르는 장소면 더 바랄 게 없었다. 잔잔한 피아노곡에 연속 재생 버튼을 누르고 까막 30분 만이라도 졸수만 있다면... 아무리 둘러봐도 그런 공간은 없을 듯하고 샐러드집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얼른 봐도 한산해 보였다. 푹신한 의자는 아니어도 초록색과 노란색 실내 장식에 이끌렸다. 벽에 붙은 샌드위치 사진만 봐도 없던 식욕이 생겼다. 신선한 야채가 듬뿍 들어간 샌드위치를 맛나게 먹고 나면 없던 힘도 생길 것 같았다.   

   

샌드위치라는 것이 얌전 떨며 먹을 건 못된다. 빵 아가리를 잘 여미고 입을 최대한 벌리지 않고는 먹을 수 없다. 그렇게 먹지 않으면 샌드위치를 먹는 맛도 나지 않고 그럴 바엔 차라리 포케를 시켰어야 했다. 체면 차릴 일은 없지만, 입 쫙 벌리고 무얼 먹을 기분은 아닌데 싶어 반으로 잘린 샌드위치를 내려다보고만 앉아 있었다.


남편 영양제 투여가 끝나기 전에 돌아가야 할 나는 언제까지나 샌드위치 감상만 하고 있을 순 없었다. 대각선 쪽에 앉은 여자처럼 양손으로 야무지게 잡고 한입 베어 물었다.


아아, 오랜만에 맛보는 신선함. 무엇을 먹어도 맛을 모른다는 남편 앞에서 그렇게 먹지 못한 한을 풀 듯 아구아구 몰아넣었다.


입을 최대로 벌리고 샌드위치 면적을 줄여나가는 행위를 계속하다 보니 얹힌 것도 아닌데 명치께가 찌르르했다. 치받쳐 오름을 다스리려 뜨거운 커피를 꿀떡꿀떡 마셨다. 커피로 다스려질 것이던가.


한번 흐르기 시작한 눈물은 고장 난 수도꼭지에서 물이 새듯 그렇게 하염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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