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든 남편 모습이 편안해 보여 다행이다. 30분 전만 해도 송곳으로 배를 쑤시는 것 같다고 몸을 꺾고 있던 사람 아닌가. 급하게 삼킨 마약성 진통제 한 알이 통증괴물을 쓸어간 모양이다.
블라인드 틈새로 얼비쳐 들어온 햇빛이 남편 얼굴에 머물러 있다. 빛을 가리려고 블라인드 줄을 만지는데 그가 찡그리며 자세를 바꾼다. 볼 살 다 빠져 윤곽은 무너지고 피부에 윤기라고는 없지만, 욕심 근심 다 내려놓은 듯 말끔하다. 속세 떠나 길 없는 길에 선 노스님 같기도 하고, 어느 깊은 수도회 노수사님 같기도 하다. 저 모습 그대로 사진 한 방 찍어 두고 싶다는 생각을 하다 휴대폰을 연다. 며칠 전 사진관에서 보내온 남편 일흔 번째 생일을 앞두고 찍은 사진을 들여다본다.
남편이 암 진단을 받기 전만 해도 우리는 들떠 있었다. 손자 여름 방학에 맞춰 칠순 기념 가족여행을 가자는 꿈에. 이런 기막힌 일이 있으리란 걸 상상이나 했으랴. 지금 상황에서 여행은 꿈도 못 꿀 일, 그래도 기념이 될 만한 걸 생각하다 가족사진을 찍자고 했다. 항암 여섯 번째 사이클을 막 끝낸 후라 체력이 바닥을 칠 때인데도 남편은 선뜻 그러자고 했다.
우리 부부, 딸 사위와 손자가 흰 셔츠에 청바지 차림으로 모여 섰다.
“자~ 찍습니다요. 웃어요, 웃으세요.”
촬영기사의 웃으라는 말에 입술을 벌리고 서 있으면서도 영 어색했다. 앵글에 잡힌 남편 표정이 더 아니었을까. 유독 남편에게 요구가 많았다. 보기 좋은 표정을 끌어내려 아무리 애를 써도 안 되겠는지 촬영기사가 먼저 제안했다. 짜깁기라도 해서 어떻게든 멋진 사진 만들어드릴 테니 단체 사진은 이쯤에서 마무리하자고.
독사진을 찍기 위해 남편 혼자 의자에 앉았다. 기사가 왜 그 말을 했는지 알 것 같았다. 남편은 마치 MRI를 찍기 위해 통 속에 들어 있기라도 한 듯 어깨를 잔뜩 웅크린 채 질린 표정을 짓고 있었다. 사진 찍는 게 뭐라고 저럴까 싶어 안쓰러운 마음이 들 정도였다.
지금 찍는 사진이 자신의 영정사진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은연중에 했던 것일까. 거동이 그나마 괜찮을 때 사진이라도 찍어두자는 내 생각을 들킨 것만 같았다. 남편의 심리를 가늠하면서 딸아이는 물론 나에게조차 드러내고 싶지 않았던 내 숨은 마음이 무참히 무너져 내렸다.
딸 사위 손자가 앞에 서서 돌배기 어르듯 하니 안 웃을 수가 없었을까, 남편 표정이 조금 부드러워졌다. 재간둥이의 우스꽝스러운 제스처가 웃음 버튼을 터치한 순간 그가 화~알짝 웃음을 터트렸다.
사진관에서 보내온 사진이 기가 막히다. 남편은 죽을 것 같은 암성 통증은 개나 가져가라는 듯 윗니 다 드러내고 웃고 있다. 젊은 시절의 그가 어린 딸을 안고 지어 보이던 행복한 미소, 손자와 뒹굴며 순진무구하게 허허대던 모습이 그대로 담겼다. 나는 수시로 그 사진을 들여다본다. 사진을 볼 뿐인데 내 눈은 왜 웃을까. 눈은 웃으면서 가슴은 또 왜 저릴까.
그와 나는 일본계 회사에서 만난 사내 커플이다. 입사 1년쯤 됐을까. 남자 신입 사원 최종 면접실에 커피를 들고 들어갔다. 면접관으로 그 자리에 있던, 실없는 소리를 꽤나 잘하던 총무과장이 눈을 찡긋하며 말했다.
“미스○, 지금 여기 앉은 사람 중에 신랑감이 있을지도 모르니 잘 봐둬요.”
잔뜩 긴장한 그들을 위해 한 농이었을 텐데 내가 홍당무가 되었다. 쟁반을 갖다 놓으려 탕비실에 갔더니 여직원 몇이 반짝이는 눈빛으로 날 기다리고 있었다. 경리과 미스 김 언니가 정색을 하고 물었다.
“어때? 괜찮은 사람이 있든?”
모르겠다는 뜻인지 아니라는 뜻인지 나는 애매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지만 얼른 떠오른 사람이 있긴 했다.
제대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듯 머리는 짧지만 머리숱이 유난히 많고 눈매가 서글서글하던 남자. 그는 내가 커피 잔을 탁자에 내려놓자 벌떡 일어나 거수경례를 붙였다.
“감사합니다!”
회의실이 쩌렁쩌렁 울릴 만큼 펄떡거리는 목소리였다. 총무과장은 예지능력이 있었을까. 우리는 3년 뒤 결혼했다.
머리숱 유난히 많고 눈매 서글서글하던 그 남자가 마흔도 안 되어 위암에 걸렸다. 잘 이겨내고 살아서 내 곁에 남아 주었지만, 항암 할 때 머리가 빠진 후 숱이 많고 윤기 나던, 내가 첫눈에 반한 머리칼은 돌아오지 않았다. 항암제가 암세포만 저격하지 않고 일단 모든 세포를 죽이고 본다는 걸 그때 이미 알았다. 위암에 머리카락 절반을 반납해 버린 남편. 나이 들어 흰머리가 생기고 숱은 더 엉성해졌는데 췌장신경내분비암이 그나마 남은 카락을 거의 앗아 갔다. 그 머리로는 병자 모습을 지울 수 없을 듯해서 가족사진 찍는 날에 베레모를 쓰게 했다.
베레모를 쓰고 있어서 더 멋져 보이는? 사진을 나는 보고 또 본다. 그러고 보니 베레모가 잘 어울리는 남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