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내는 남자 속 끓이는 여자
부대찌개를 먹으러 간 날
남편은 요즘 들어 음식 만드는 냄새까지 거슬려한다. 궁여지책으로 하루 한 끼는 밖에서 해결하고 있다. 나가면 맛있게 먹는 분위기에 젖어드나 원래 그랬던 사람처럼 잘 먹는다. 나는 그게 고마워 어떻게든 맛집 찾아 나갈 궁리를 한다. 칼국숫집을 선두로 최근엔 해장국집을 찾아다녔다. 매번 해장국만 먹긴 그래서 오늘은 뭘 먹을까 아무리 물어도 남편 입은 굳게 닫힌 한 일자다.
암환자에게 좋다는 음식은 많고 많다. 이로운 것만 먹이려고 무던히도 애를 써봤다. 하지만 남편이 먹고 싶어 하고 또 잘 먹는 음식이 그의 영육을 살린다고 믿고 싶다. 어느 땐 스스로 검색해서 여기 어떠냐고 묻기도 하던데 좀 전에 화장실에서 기력을 빼고 오더니 만사 귀찮은가 보다. 뒤지고 뒤지다가 얼마 전 의외로 잘 먹었던 찌개 생각이 났다. 부대찌개가 어떠냐고 물었더니 그제야 눈을 뜬다. 오래 앉아 있기 힘든 그를 태우고 먼 곳까지 가는 건 무리라 그나마 가까운 송추 작은 식당으로 정하고 집을 나선다.
자기가 원하는 곳으로 가는 중인데 남편은 왜 짜증을 낼까. 그가 한 말 잘 못 알아듣는다고 짜증, 자기 맘에 안 들게 운전한다고 짜증이다, 내가 미워서 화를 내는 게 아니라고, 아프다 보니 자기 자신에게 나는 짜증을 가장 가깝고 만만한 나에게 내는 거라고 푸르르하던 마음을 접고 참다가도 문득문득 울컥한다.
예전의 남편은 아무리 장거리 운전을 해도 내게 핸들을 넘기지 않았다. 항암을 시작하면서 당연한 듯 내가 운전석에 앉았다. 남편은 느긋하게 앞 차 꽁무니만 따라가는 내 운전 스타일을 맘에 안 들어한다. 말을 해야만 간섭이 아니다. 그렇게나 기운이 없다면서 하는 대로 내버려 두면 좀 안 되나. 감시하듯 허리 꼿꼿이 세우고 앉아 날 주눅 들게 한다. 팽, 운전대를 팽개쳐버리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온순한 사람이 운전대만 잡으면 거칠어진다는 말이 있던데 남편이 꼭 그랬다. 우리 부부싸움의 8할은 같이 차를 타고 이동할 때였다. 남편 운전 습관을 못마땅해 한 보복을 지금 받는지도 모르겠다.
남편은 운전만 빼고 순하고 편한 사람이었다. 내가 하는 행동이나 말에 ‘왜’라는 부사를 써본 적이 없다. 평생 못 낸 화를 복리로 계산해서 갚는 것일까. 암세포 안에 화를 유발하는 물질도 들어있는 건 아닌지 의심해 볼 일이다. 그런 일에 익숙하지 않은 나는 이래저래 서럽다고 혼자 속을 끓이다가 방향 없는 분노를 고작 자기 아내한테만 쏟아내는 그가 안쓰러워 목이 멘다. 암이라는 놈은 이리도 많은 울화통을 빼가서 어디에 쓰렸는지...
징그럽던 올 더위도 물러갈 때가 지났건만 태양은 또 어디에 화를 내는지 이글거리는 한낮. 남편의 화를 가슴에 눌러 담다 보니 화닥증이 올라와 에어컨을 냉기 쪽으로 확 돌려놓고 달린다. 흘끗 본 남편의 구겨진 얼굴. 찬바람 탓인가 싶어 다시 눌러 끈다. 허구한 날 공사 중이라 더듬이가 될 수밖에 없는 송추 가는 길, 어찌어찌 달리다 보니 우리가 찾는 식당 앞이다.
그곳은 부대찌개로 소문이 나서 부대찌개 리뷰가 수두룩했을 뿐, 각종 메뉴가 줄줄이 붙은 그냥 밥집이다. 탁자마다 찌개가 끓고 있어 식당 안은 코를 자극하는 햄 열기로 가득하다. 에어컨이 벽에 붙어 돌고 있고만 뭔지 모를 후끈함이 바깥 열기와 다를 바 없다. 우리야 부대찌개를 맛있게 먹으면 되는 거니까 식당 분위기가 아무렴 어떠랴 싶어 자리 하나 차지하고 앉는다.
하긴 리뷰 믿을 건 아니지. 기대가 너무 컸나 보다. 앞에서 께적거리면 그의 입맛까지 달아날까 봐 푹푹 퍼서 입술 벌겋게 물들여가며 일단 먹고 본다. 남편은 덜어준 찌개에 밥 한 수저 말아놓고 바라만 보고 있다. 좋을 거 하나 없을 햄을 건져 그의 수저에 올려준다. 그는 마지못해서 햄쪼가리를 입으로 가져간다. 본인이 원해서 찾은 부대찌개를 앞에 놓고 왜 저러는지. 남편인들 일부러 그러겠냐만 마음이 불편해 좀이 쑤신다. 남편의 입맛을 마중하려고 과장하던 수저질을 멈춘 나는 그가 제발 맛있게 먹어주기를 기다리느라 내 마음 벌써 학 모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