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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 꽃 향기 Nov 06. 2024

남편이 끝내 먹겠다고 고른 것은

암이 가장 좋아하는 ....

남편은 물음표처럼 아니 구겨진 상자처럼 모로 누워있다. 살이 있는 사람이 옹송그리고 옆으로 누우면 물음표가 되지만 살이 없는 사람, 뼈만 남은 사람은 물음표를 만들 수 없다.  

    

때가 되었으니 어떻게든 먹게는 해야 하는데 저렇게 정색하고 있는 사람 쏘삭거리기 쉽진 않다. 그 무엇도 먹고 싶지 않다고 하니 밥때가 무섭다. 벽을 보고 구겨 있는 남편 옆을 비집고 들어가 그의 몸을 쓸며 말한다.


“감자수제비, 김치말이국수, 콩나물국밥, 물냉면.... 뭐가 맘에 들어?”

  

당장 대령할 수 있는 점심 메뉴 몇 가지를 제안해 보지만 그는 꿈적도 안 한다. 미역국이나 쇠고기뭇국 북엇국이나 갈비탕 같은 그나마 환자한테 이로울 것 같은 음식 앞에서는 헛구역질부터 하니 물을 수도 없다.  

    

요 며칠 밥 알맹이 자체를 거부해서 밥을 해본 지 언제인지 모르겠다. 하루 한 번은 나가서 먹든가 나 혼자 나가서 사 와서 국물이나 면 위주로 끼니를 해결한다. 재차 뭘 해줄까 물어도 남편은 내 말을 듣는지 마는지 미동도 없다. 자기가 저번에 말했던 양평해장국 먹으러 갈까? 아니면 은희네 해장국? 아님 예전에 갔던 장작불곰탕은 어때? 착한낙지나 한소쿠리주꾸미 같이 매콤한 걸 먹으면 입맛 돌아오려나? 그래도 말이 없다. 더 참신한 메뉴가 없을까 생각하며 아니면, 아니면 하고 있는데 남편이 감고 있던 눈을 뜨면서 말한다.

 

“은희네 해장국은 국물이 많이 있나?”

  

반가운 마음에 내가 화들짝 한다.

 

“그거야 건더기를 걷어내고 국물만 먹으면 되지.”

  

“그럼 거기로 가자!”     


사위랑 손자가 오늘 야구장에 간다는 말을 들은 것 같아 딸한테 같이 가자고 할까 싶어 전화 버튼을 누른다. 헐, 우리 차를 끌고 나가서 지금 밖이라고 한다. (아파트 옆 동에 딸이 사는데 어쩌다 우리 차를 이용할 때가 있다) 기껏 먹을 걸 정했는데..... 어쩐담.   

   

다시 원점. 남편한테 해장국집에는 이따 저녁에 가자고 하고 다시 메뉴를 주워댄다. 국물 있게 후루룩 먹을 걸 생각하다 멸치국수? 물냉면? 아니면 라면? 했더니 남편 눈이 동그래진다. 세상에, 제일 먹이고 싶지 않은 라면을 먹고 싶다네. 그 많은 음식 중 암이 가장 좋아하는 게 라면인가. 그래도 어쩌겠는가. 울며 겨자 먹기라는 말이 그래서 있나 보다. 까부라지는 건 막아야 한다.   

   

집에 라면이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며 물을 올린다. 계란도 파도 넣지 않는다. 요즘 남편은 군더더기가 있는 음식은 질색이다. 그가 하는 방식대로 면을 들었다 놨다 하며 눈물의 라면을 끓인다.   

   

나는 뭘 먹지. 냉장고 속 언제 넣어둔 것인지 기억에 없는 청국장찌개를 꺼내 데운다. 찌개에 찬밥 두 숟갈을 넣어 남편 앞에 앉는다. 남편은 라면 냄비를 힘없이 바라보고만 있다. 젓가락을 남편 손에 쥐여 주고 행여 청국장 냄새 때문에 구역질이라도 할까 봐 내 쪽으로 당겨놓고 목구멍에 떠 넣는다. 평소 좋아하던 청국장인데 무슨 맛인지 모르겠다. 자꾸 목이 멘다.    

  

국물을 먹고 싶어서 그런 줄 알고 라면 물을 나우 붓고 끓였는데 남편은 면발만 건져 올리고 있다. 예전 같으면 후루룩 후루룩 세 저분이면 냄비 바닥을 긁었을 텐데, 한없이 느린 동작으로 가닥을 세듯 천천히 들어 올린다. 남편은 꼬들면을 좋아하는데 면은 이미 풀어져 팅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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