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감으면 보이는 얼굴 (2화:첫눈,그리고 희미한빛)

사랑으로 기억될 시간들에 대하여

by 마음의여백

늘 그랬듯 9401번 광역버스를 타고 서울로 향하던 수요일.

하지만 오늘 저는 다른 곳으로 갑니다.


형을 만나 사진을 배우고, 함께 출사를 떠나던 그 길이 아닙니다.

어깨에 메던 카메라도 없이, 작은 가방 하나만 들고 형이 누워있는 병원으로 갑니다.


"동생, 렌즈를 당겨봐. 이런 구도로 찍어봐."

다정한 목소리로 사진을 가르쳐주던 형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돕니다.


버스 창밖으로 첫눈이 내립니다.

형에게 설경 찍는 법을 배워야 하는데, 그럴 수 없습니다.

형에게 보여 주려고 눈 내리는 풍경을 휴대폰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자꾸만 눈물이 흘러 눈앞이 흐릿해집니다.

[2024.11.27. 117년 만에 가장 많이 내린 첫눈]


중환자실 입구에 앉아 하염없이 형을 기다립니다.

하루 단 15분, 가족 한 명에게만 허락되는 면회 시간. 형과 조금이라도 가까운 곳에 있고 싶어, 형이 힘을 내길 바라며 차가운 복도를 지킵니다.


며칠 뒤, 주치의 교수님을 처음 만났습니다. CT 촬영 결과 다행히 출혈은 멈췄다고 합니다.

3일간의 저체온 치료를 끝내고, 수술 전 5단계 중 4단계까지 치솟았던 위험 수치도 2단계로 떨어졌다는 말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힘겹게 의식을 붙잡고 있는 형이 고마웠고, 의료진에게 깊은 감사를 전했습니다.


달이 바뀌어 12월이 되었습니다. 날짜가 가는 줄도 모르고 지냈습니다. 형이 쓰러진 지 일주일. 오늘도 저는 중환자실 입구에 홀로 앉아 있습니다.


흐르던 눈물도 이제는 마르고, 깊은 한숨만 새어 나옵니다. 하지만 나약한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기에,

희망의 마음으로 오늘도 형을 만나러 갑니다. 힘든 시간이 지나고, 온 가족이 함께 웃을 수 있는 그날이 오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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