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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솔길 Jun 02. 2023

15.  잃어버린 집에게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를 읽고

 어디쯤이었을까. 길 위에서 길을 잃은 사람처럼 서성거렸다. 그때 살던 집이며 밤꽃 피던 야산이  근처로 보이는데 분간을 못하겠다. 온 마을은 흔적조차 없어졌고 그 자리에 거대한 아파트숲이 생겼으니 당연한 걸까. 전혀 다른 곳에 서있는 것 같아도 분명 여기 어딘가에서 큰아이를 낳고 2년 동안이나 살았다.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마을 길을 나서면 어른들이 애기 얼굴 한 번 보겠다고 다들 몰려왔다. 큰길을 따라 양쪽으로 집들이 있고 마을 입구 쪽에는 사료공장이 있었다. 작은 마을이라 오며 가며 인사만 해도 반가워하셨고, 여름철 모기떼가 극성이면 애기 있는 집이라고 일부러 소독을 해주셨다. 낯선 곳인 그곳에 이사 간 날, 시루떡 한 덩이씩을 집집마다 돌렸다. 반갑게 맞아주신 그분들은 지금쯤 어디에지낼까. 살아는 계실까.


 시골 마을과 전혀 어울릴  같지 않은, 그때만 해도 생소했던 조립식 건물이었다. 제법 큰 2층 다세대 건물로 각 층에 네 가구씩 총 여덟 가구로 지어진 작지 않은 규모였다. 우리 가족이 그곳에 가장 먼저 들어갔다. 연립주택도 아파트도 아닌 조립식 건물에 전세로 들어온 걸 보면 다들 비슷한 사정들이 있었으리라. 시내에서 멀지 않은 곳이고 비싸지 않은 전세가격에 입주민은 금세 채워졌다.


 친한 이웃집이 생기고 다 같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마당이면서 주차장 겸 아이들이 노는 장소도 있었다. 넓지는 않아도 살기에는 적당했다. 층간소음이나 주차문제가 심각한 요즘을 생각하면 그때 우리들은 이런 문제로 얼굴 한 번 붉혀본 적 없는 괜찮은 이웃들이었다. 그렇게 좋았던 2층집에 생각지 못한 참담한 사건이 발생하였다.


 갑자기 건물주가 도망을 갔고, 하루아침에 그 건물이 은행으로 넘어간다고 . 여덟 가구는 모두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건물주만 믿었던 우리들은 이제 거리로 내쫓길 신세였다. 전세금이 거의 전재산일 정도로 가난한 이들의 억울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도망간 건물주를 아무리 원망하고 욕을 해도 법적으로 소용이 없었다. 확정일자가 은행보다 먼저였던 우리 집은 전세금을 돌려받는다고 했. 억울한 이웃을 생각하니 대놓고 다행이라고 좋아하지도 못했다.


 대책회의로 모였고 건물을 공동명의로 구입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당장 쫓겨나지 않아도 되며 도시외곽인 그곳의 개발 조건이 이득이   있다는 전망을 내놓았. 우리 집도 찬성하였다. 당장 다른 곳으로 이사 갈  있는 상황이었지만 뭐라도 붙들고 싶은 이웃들을 뒤로할 수는 없었다. 또 개발이익에 대한 희망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것만 같았.

 하지만 회의로 모이는 날이면  말다툼을 다. 급기야 서로를 헐뜯고 쌍욕까지 들어야 했다. 좋았던 인심은 물거품 같았고 이기심 앞에선 논리적인 절차도 무시되었다. 이익은 당연하고 손해는 보지 않겠다는 모순 속에 빠졌다.


 급기야 포기하겠다이웃이 생겼다. 우리는 그들을 보내기가 아쉬웠다. 그나마 대화가 통하는 분들이었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얼른 떠나세요. 이건 쉽지 않을 거예요.'라는 말과 함께 그들은 미안하다며 떠났다. 같이  살자는 부푼 꿈은 사라졌고 다시는 못 볼 것만 같았다. 


  이웃 예상은 맞았. 우린 갈기갈기 찢어졌고 상처 난 채로 그곳을 떠났다. 그 근처는 일부러라도 가지 않았고 잊고 싶었다. 좋은 마음으로 시작한 일이 절로 지쳐 나가떨어질 정도로 아픈 경험이었다.

  

by 오솔길

 한동안, 큰 아이가 자란 그 마을과 그 집은 아픈 손가락처럼 건드릴수록 쓰렸다. 그래도 묘한 게 시간이라는 약이다.

 즐거웠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백일과 돌을 그곳에서 보낸 아이는 꽤나 이웃들의 귀여움을 받았다. 업고 나섰던 초보 엄마는 어느새 자란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저녁이면 동네 구경을 했다. 그러다가 걸음마를 시작한 아 손을 잡고 걸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신발에서 나던 삑삑 소리가 지금도 귓가에 울리는 것 같. 부모가 된 기쁨과 어설픔이 공존했고 이웃이 무엇인지 톡톡히 배운 곳이다.


 기억을 더듬어 찾을 생각을 하다니 괜한 짓을 했나? 지금은 그곳이 어딘지도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변했는데 다. 어쩌면 그보다 먼저 아픈 흔적이라고 기억 속에서 지워버린 . 그럴수록 잃어버린 마을이 떠오르고 그 집이 생각난다.



 소소한 책그림 후기 ;  이 책을 읽고 그동안 살았던 집을 떠올렸다. 태어난 시골집부터 첫 자취방, 신혼시절의 단칸방 그리고 지금 사는 아파트까지 세어보니 꽤나 많이 옮겼다. 사연은 많아도 정착이 하고 싶어 지금 아파트는 20년 넘게 살고 있다. 집이란 내 기억이 숨 쉬는 곳이었다.

오늘의 책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 하재영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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