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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도령 Nov 23. 2021

외조부의 얼굴

고찰 여섯, 떠나가신 혈연에 대하여

외조부께서 돌아가셨다.


꽤나 오래전부터 몸이 편치 않으셨던지라 가족 모두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슬프지 않을 수가 있을까. 오랜 시간 동안 서로 보지 않던 외가 친척들이 모여 할아버지를 보내드렸다.


장례식장에서는 할아버지께 작별을 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얼굴을 보여드리는 시간이 있었다. 수의를 입으신 할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은 그 어느 때보다도 수척하셨다. 미동도 하지 않는 할아버지의 얼굴을 보며 정말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건지, 누군가의 나쁜 장난으로 할아버지를 닮은 인형을 관에 넣어두고 밖을 돌아다니시는 게 아닌지 하는 그런 생각마저 들었다.


어딘가가 결여된 배은망덕한 놈으로 보이겠지만 정말 솔직히 말하자면, 처음 외조부의 부고 소식을 들었을 때 그렇게 슬픈 감정이 들지 않았다. 앞서 말했듯, 오랜 기간 병원에서 지내셨기에 충격적이지 않아서인지 혹은 내가 어딘가 사람으로서 모자라기 때문인지는 나도 모르겠다. 그러나, 막상 직접 얼굴을 뵙고 차게 식은 할아버지의 팔을 붙잡고 마지막 인사를 하자니 목 구녕에 응어리가 차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외할머니의 "고마웠어요", 외삼촌들의 "아버지", 엄마의 "아빠"라는 말은 어딘가 새롭고도 무겁게 들렸다.


장례식을 마치고, 회사 주변의 집으로 돌아가는 길, 여동생이 카카오톡으로 우리 가족 단톡방에 사진을 하나 보냈다. 보아하니 외할아버지의 젊을 적 모습이다. 포토샵도 없을 시절, 필름으로 찍어 사진의 모퉁이는 갈라지고 액자 모서리에는 먼지가 끼었다. 그 가운데에 외할아버지가 흑백으로 서서 나를 응시하신다.


할아버지의 얼굴을 천천히 쳐다본다. 곱슬끼가 있는 머리를 깔끔하게 말아 올려 훤히 보이는 이마 아래 굉장히 올곧은 눈, 날 선 콧날을 지나 굳게 닫힌 입술이 있다. 계속 눈을 마주치고 있다니, 할아버지의 얼굴에서 외삼촌들이 보인다. 어머니의 입술, 동생의 눈도 보이고 사촌 형의 귀도 보인다. 그렇게 하나하나 보고 있다 보니 어느새 외할아버지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나의 어딘가에도 외할아버지의 흔적이 남아있진 않을까.


사진을 찍고 난 뒤, 할아버지는 어디로 향하셨을까, 어떤 삶을 사셨을까. 명절 얼마 안 되는 몇 마디만을 주고받은 내가 뭐라 할 수 있을까. 작은 중고 서점에 앉아 책을 챙겨 주시고, 내가 나온 학교의 경비원으로 근무하던 이야기를 해주시던 할아버지께서 편히 쉬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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