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닌 자들을 받아들이는 법
인간은 본질적으로 고립된 개체가 아닙니다. 우리는 언제나 타인과 관계 속에 존재하며, ‘나’ 외부의 존재들을 끊임없이 인식하며 살아갑니다. 나아가 이번 장에서는 '나'라는 개체를 넘어, '타인'이라는 존재를 이해해 보고자 합니다. 타인의 구조, 소통의 필연성, 공감의 오류, 그리고 수용의 철학이 이 글의 중심입니다.
타인의 사전적 정의는 단순히 ‘내가 아닌 사람’을 뜻합니다. 앞서 우리는 '사람'이라는 대상을 유전 정보와 감각 경험이 결합된 생물학적 시스템이라 보았습니다. 이 정의는 ‘나’뿐 아니라 ‘타인’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그렇지만 동시에 '타인'과 '나'는 다른 구성 요소를 가지고 이루어져 있습니다. 유전자, 성장 배경, 사회적 위치, 신체, 재력, 차이, 경험 등 인간을 구성하고 특성을 부여하는 요소들의 차이가 존재하기에 개인마다 개체별 차이가 존재합니다. 이러한 차이가 각 개인에게 개성과 특성을 부여하며 필연적으로 서로 다른 감정 구조와 사고체계를 만들어냅니다. 따라서 똑같은 상황에 놓일지라도 사람마다 다른 반응을 보입니다. 이처럼 타인은 나와 같은 원리로 구성된 존재지만, 엄연히 나와는 다른 조건과 동작방식을 가진 시스템입니다.
타인과의 접촉은 피할 수 없다
이렇게 이질적인 타인과의 타인과의 접촉은 사람에게 있어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필수적인 조건입니다. 앞 장에서도 수차례 얘기했지만 인류 진화의 초석은 타인과의 협업과 분업을 기반을 두었으며 인류에게 있어 생존 조건 중 하나입니다. 이는 과거뿐만이 아니라 수많은 인간과의 관계가 기술로 대체된 현대 사회에서조차 통용되는 개념입니다. 생존 자원 및 정서적 안정감 확보는 결국 어떤 형태로든 타인과 관계로부터 비롯됩니다. 타인과의 접촉은 ‘선택’이 아니라 ‘전제 조건’이며 우리 타인 없이 생존 불가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생존을 위해 타인과 소통해야 합니다. 이는 곧 단순한 말의 교환을 넘어서, 서로의 상태를 인식하고, 자신의 입장을 표명하며, 상대의 처지를 해석해야 한다는 말로 치환됩니다. 그렇지 못한 소통은 결국 제 기능을 하지 못하며 관계된 사람들의 관계 또한 왜곡되거나 파괴됩니다. 설령 한쪽의 사람이 압도적인 지위를 가졌다 하더래도 기본적으로 최소한의 이해와 신뢰가 있어야 의사소통이 가능합니다. 이는 반복적 상호작용에서 협력이 이익이 되는 구조임을 보여주는 게임이론(ex. 반복된 죄수의 딜레마)에서도 확인됩니다.
이렇게 타인을 이해하는 것이 사회에서는 필수적인 활동이기에 우리는 늘 타인을 보고 그들의 입장을 예측합니다. 이렇게 타인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흔히 ‘공감’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공감은 '내'가 '타인'을 이해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기저에는 언제나 '자신'의 개념이 배제될 수 없습니다. 이러한 공감은 뇌의 미러 뉴런 체계에 기반하지만, 이는 정밀한 이해보다 유사 반응을 촉발하는 구조일 뿐이기에 타인을 완벽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실연, 실직, 실패하였을 때 우리는 자동적으로 자기가 처했던 비슷한 상황을 떠올려 그 당시의 감정을 대입해 이해를 시도합니다. 그러나 타인의 실제 심정은 그보다 훨씬 복합적이며 그가 처한 재정 상황, 가정 내 역할, 자기 존중감의 수준 등은 '내'가 관찰 불가능한 무지의 영역에 속해 있습니다. 결국 '나'는 타인의 대한 정보가 부족할 수밖에 없고 정신적으로 타인으로 코스프레해 볼 뿐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타인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해란 자신의 인지 틀 안에서 타인을 ‘가공’하는 불완전한 과정이기 때문에 우리는 종종 갈등과 오해에 빠지며, 심지어 공포를 느끼기도 합니다. 이는 앞서 말했듯이 진화론적으로 우리는 예측 불가능한 존재를 생존 위협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타인이 자신과 '다르다'는 것에 대한 거부감은 자연스러우나, 이를 '틀렸다'로 인식해서는 안됩니다. 의미에 대해 논의한 앞 장에서 말한 바와 같이 이 세상에 절대적으로 '옳은 것'은 없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차이점을 관찰하되, 타인을 고쳐야 한다는 착각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의외로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간단합니다. 그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우리가 각자 자연의 일부인 것처럼, 타인 또한 하나의 자연 현상입니다. 바람이 분다고 화내지 않고, 비가 온다고 분노하지 않듯, 타인의 감정이나 판단 역시 그 사람의 조건에서 나온 필연적 결과입니다. 이해가 안 간다고 해서 그것을 틀렸다고 여기는 것은, 지진이 일어난 것을 비난하는 것만큼 무의미한 반응입니다.
물론 타인의 자율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점이 전적으로 모든 것을 타인에게 맡겨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타인의 작용이나 행동이 '나'의 생존에 직결되는 범위를 침범한다면 당연히 이에 맞서야 합니다. 신체적, 정신적, 범위 및 사회의 구성 방식 등에서 나의 권리나 안전성이 침범받는다면 일정한 거리 두기나 제도적 대응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침범받는 요소들 중 어떤 것이 우선순위에 오는지 정하는 바는 결국 개인의 기준으로 판단해야 하기에 3장에서 얘기한 것처럼 우리는 각자 주체적인 기준을 세워야 합니다.
우리는 타인과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도 나처럼 하나의 생체 시스템이지만 '나'와는 다릅니다. 우리는 타인에 대한 무지로 그들을 완전히 이해하거나 예측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그들을 바꾸거나, 재단하거나, 내 틀에 끼워 맞추는 것은 오만이며 우리는 타인을 '판단'보다 '관찰'의 대상으로 삼아야 합니다. 가능한 만큼의 공감을 시도하되, 그 한계를 인정한 채 차이를 수용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