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Zeroing 15화

6. 최종장 - 해석자적 삶의 제안

최종 결론

by 허지현

최종 정리의 장에서는 지금까지 얘기한 바를 통합해 하나의 주체적 개인으로써 살아가는 방식을 제안해 보겠습니다.


우리는 하나의 생명체로써 존재하고, 각자 고유한 특성을 가진 요소와 성질을 가져 이루어진 하나의 시스템입니다. 고유한 여러 특성이 모여 각 개체는 각기 다른 욕구를 가지고 살아가며, 서로 같은 유형의 욕구를 가졌다 하여도 그 강도나 우선순위는 개체별로 분명 존재합니다. 이러한 차이는 우리가 의식하고 있는 것들도 있지만, 무의식 속에서 작동하는 것들도 많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세상을 경험하는 동시에 자신을 탐색해 가며, 자기 안의 우선순위를 분별해 나가야 합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의문을 갖는 것도 인간이 가진 자연스러운 탐구 욕구의 일부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인간과 자연 그 자체에 어떤 절대적 의미도 부여할 수 없다는 점을 받아들였습니다. 이 무의미함 앞에서 좌절하기도 하지만 삶을 지속하려는 욕구가 강한 사람들은 스스로 삶의 의미를 구성해야 합니다. 객관적으로 무의미한 우주 속에서 우리는 하나의 주관적인 개인으로 존재하며, 그 주관성 속에서 각자 의미를 부여하고 선택할 수 있습니다.


설령 이 세계가 철저한 결정 구조로 짜여 있고, 인간이 단지 반응하는 시스템에 불과하다 하더라도—우리는 여전히 그 조건 속에서 살아가는 개체입니다. 자유의지가 허상이라 하더라도, 인간은 자신이 가진 정보의 한계 안에서 세상을 경험하고 해석하며 반응합니다. 그렇다면 문제는 명확해집니다.


설령 결정론적이고 구조적인 우주와 단순 반응 시스템인 신체 속에서 자유의지가 한낯 허상이라 볼 수 있더라도 인간은 자신이 가진 정보의 한계 안에서 세상을 경험하고 해석하며 반응합니다. 그렇다면 문제는 명확해집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 저는 ‘통제’가 아닌 ‘관찰과 해석’을 제안합니다. 아무 생각 없이 바라만 보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오히려 더욱 정밀하게 자신과 세계를 감지하고, 가능한 덜 왜곡된 방식으로 해석하며, 덜 고통스럽게 반응하자는 뜻입니다. 판단은 하되, 섣부른 확정은 피해야 하며 해석은 하되, 언제든 수정 가능하다는 열린 태도로 세계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이것이 결정론적 세계 안에서 허용되는 최소한의 자유이자 유일한 주체성입니다.


실패해도 괜찮고 틀려도 됩니다. 어차피 세상에 절대적인 정답이나 완성은 존재하지 않으며, 이 사실이 오히려 우리의 해석의 든든한 근거가 됩니다. 자신이 해석해 낸 답변이 무너진다 하여도 다시 시지프처럼 새로운 해석을 쌓아 올라가면 됩니다. 완성할 수도, 완성할 필요도 없으며, 그저 존재하고자 하는 욕망과 조건이 뒷받침 되어 삶이 존속되는 동안 이 해석 놀이를 즐기면 됩니다


이러한 태도는 내면의 문제를 넘어, 실생활과 사회 안에서도 그대로 이어져야 합니다. 우리는 타인을 통해 비치는 자신을 바라보고, 다가섰다가 멀어지기를 반복하며, 어우러져 살아갑니다. 너무 뜨거운 사람은 거리를 두어 따뜻함을 느낄 수 있을 만큼, 너무 차가운 사람은 시원하게 느껴질 정도의 간격을 유지하며 조율하면 됩니다.


감정을 느끼되 붙들지 않고, 타인을 받아들이되 동일시하지 않으며, 판단 대신 구조를 인식하십시오. 당신의 중심을 잡아줄 주체적인 기준— 당신만의 세계 해석본—이 있다면, 세상에 휩쓸리거나 자신의 정서적 폭풍 속에서 길을 잃는 일도 줄어들 것입니다.


삶의 의미는 외부에도, 내부에도 고정된 형태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자기 안에서 주체적으로 정의하고 선택할 수 있다면, 최소한 외부의 기준에 끌려다니며 흔들리는 삶은 피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살고자 하여 이 글을 찾은 분들께 말씀드립니다. 부디 당신의 방식대로 살아주십시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