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색 신발은 때 타" 어머니는 신발을 사러 갈 때면 늘 말씀하곤 하셨다. 그래서 늘 검은색, 무채색 운동화를 신고는 했다. 흰색 신발이 때가 타는 것이 뭐가 그리도 두려웠을까? 오늘은 그 편견을 깨준 화이트 스니커즈, 그중에서도 으뜸이라 알려진 신발 중 하나인 커먼 프로젝트 아킬레스 로우에 대해 말해보겠다.
스니커즈의 간단한 역사 및 배경
찰스 굿이어와 있어보이는 가황고무 화학식 구조
스니커즈의 역사는 1839년, 미국의 과학자 찰스 굿이어(Charles Goodyear)가 가황 공법을 통해 가황 고무를 만들며 시작된다. 그로부터 몇십 년 후, 이 기술은 신발 밑창에도 적용된다. 주로 플림솔 신발에 19세기 초부터 적용되었으며, 그렇게 스니커즈의 조상 격 신발이 탄생한다.
플림솔 신발이란?
사무엘 플림솔, 플림솔 마크, 플림솔 신발
플림솔 신발이란 밑창은 고무, 윗부분은 커버스 재질로 된 끈으로 묶는 신발을 뜻한다. 기원은 영국이고, 신발의 고무선이 마치 선박의 만재흘수선(플림솔 마크)과 유사하다는 점에서 이름이 생겼다. 여담이지만 플림솔은 화물 과적으로 항해 중 침몰하여 사망하는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만재흘수선 도입에 힘쓴 사무엘 플림솔(Samuel Plimsoll)의 이름에서 따왔다고 한다
스니커즈의 대량생산
케즈, 컨버스의 빈티지 광고, 아돌프 다슬러, 1920
20세기 초부터 고무창(러버솔) 신발들의 대량 생산 시대가 시작되며, "스니커즈(Sneakers)"란 단어도 이때 처음 탄생한다. 1917년 미국의 광고업체 직원인 헨리 넬슨 멕키니(Henry Nelson McKinney)가 고무창 덕에 살금살금 몰래 다닐 수 있다(sneak)고 하여 소년들이 고무창 테니스화를 "스니커즈"라고 부른다고 하며 이름을 알렸다.
이 시기 설립된 스니커즈 회사들 대부분은 오늘날에도 친숙한 이름들인데, 1916년 US Rubber Company에서 설립한 Keds, 1917년 설립된 Converse, 1924년 독일의 루돌프, 아돌프 "아디" 다슬러의 회사(Adidas와 Puma가 분리되기 전 모태 회사)가 대표적이다.
케즈는 1987년 작 영화 <Dirty Dancing>의 제니퍼 그레이(Jennifer Grey)가 신기도 했으며 가수 테일러 스위프트(Taylor Swift)가 애용하기도 하는 등 요즘에도 널리 신어지는 신발이다. 컨버스의 경우, 1920년대 초 유망한 농구선수이자 코치인 Chuck Taylor의 지지하에 큰 인기를 누렸고, 그 덕분에 오늘날에도 컨버스의 척 테일러 라인이 가장 유명하다.
1965년 비틀즈 팬들, 1960년대의 청소년들, 마를린 먼로와 키스 안데스
스니커즈는 주로 운동용으로 만들어지고 광고되었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4개나 탄 미국의 Jesse Owen 달리기 선수가 아디 다슬러의 신발을 착용하기도 하며 스니커즈는 스포츠에는 물론 대중들에게도 많이 착용되게 된다. 1950년대에는 청소년들 사이에서 마를린 먼로(Marilyn Monroe), 말론 브란도(Marlon Brando)의 청바지와 스니커즈를 착용한 스타일이 유행했다.
그러나 스니커즈가 진정한 평범한 일상화로 정착하기까지는 또 다른 20년의 세월이 걸렸다. 1966년 반스, 70년대에는 나이키가 등장한다. 나이키는 원래 일본의 asics를 수입해 판매하는 "Blue Ribbon Sports"라는 업체였으나, asics와의 계약 중단 후 직접 운동화를 제작하며 Nike라는 새로운 이름을 가지게 된다. 1970년대에는 반스의 스니커즈는 스케이터들에게 애용되기 시작했고, 나이키의 빌 바워만(Bill Bowerman)은 와플 모양의 밑창을 가진 와플 트레이너를 탄생시켰다.
Nike Air Jordan 1, Adidas Superstar을 착용중인 Run DMC
1980년대에는 필자가 이전 글에서도 다룬 조던 시리즈가 탄생해 인기를 누렸으며, RUN DMC가 아디다스의 슈퍼스타를 착용하며 큰 인기를 얻기도 했다. 이후에도 수많은 스타들이 다양한 브랜드들의 각종 스니커즈 모델을 탄생 및 유행시키며 오늘날까지도 우리의 일상에 젖어 들어 있다.
발렌시아가 스피드러너, 메종 마르지엘라 페인트 독일군, 구찌 스니커즈
2010년부터는 스니커즈 리셀 마켓이 활성화되는 동시에 명품과 고급 스니커즈 문화가 유행했다. 발렌시아가의 스피드 러너, 마르지엘라 독일군, 구찌 스니커즈 등의 명품 브랜드의 외에도 나이키, 컨버스 등의 회사와 타 회사나 유명 아트 디렉터들이 콜라보한 제품들이 한정적인 수량으로 출시되어 현재까지도 어마 무시한 가격으로 거래되고 있다.
커먼 프로젝트 아킬레스 로우 특징 및 장단점
Flavio Girolami와 Prathan Poopat, 커먼프로젝트 아킬레스 로우
커먼 프로젝트는 미국의 아트 디렉터 Prathan Poopat과 이탈리아 크리에이티브 컨설턴트 Flavio Girolami가 2004년에 뉴욕에서 함께 설립한 브랜드로, 주 목표는 나이키와 구찌 사이를 메울 스니커즈를 탄생시키는 것이었다. 캐주얼하면서도 고급진 이미지의 이탈리아 드레스 슈즈를 만들고자 했고, 그 결과 아킬레스 로우가 탄생했다.
미니멀하고 날렵한 모양과 발꿈치 쪽의 금색의 10자리 숫자는 이 신발의 정체성이다. 앞 4자리는 모델 번호, 중앙 2자리는 사이즈, 마지막 4자리는 색상 코드라고 한다. 타 브랜드와 모든 것이 똑같아 보이기 쉬운 화이트 스니커즈에서 형태와 소재, 정체성은 더욱 큰 중요성을 가진다.
커먼 프로젝트는 이러한 면에서 타 브랜드의 우위에 있다고 해도 좋을 만큼 스스로를 잘 포지셔닝했다고 생각한다.미국 브랜드지만 신발과 부자재를 모두 이탈리아에서 만드는 점, 별다른 광고 없이 꾸준히 고급 소재를 사용한 점 등 브랜드 정체성을 확고히 하여 고급진 이미지를 구축했기에 발꿈치의 금색 글자 또한 촌스럽지 않은 디테일로 느껴진다.
물론 좋은 소재의 소가죽이나 이탈리아에서의 제작된 것은 사실이지만 단지 그것만으로 이 신발의 값비싼 가격을 채우기엔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패션이란 합리성과 가성비와 정비례하지 않는다. 흔히들 "브랜드 값"이라 내려 깎지만 필자는 설립자들이 구축한 브랜드와 그 정체성을 공유하기 위한 나름 정당한 값이라고 생각한다. 그 가격에 그들의 정체성을 공유하고 싶지 않다면 구매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신발의 장점은 당연히 미니멀한 동시에 넓은 범용성, 커먼 프로젝트의 브랜드 아이덴티티다. 반면 주로 손꼽아지는 단점은 서양인의 칼발에 맞춰진 디자인이기 때문에 발볼이 넓은 필자를 비롯한 국내 사람들은 사이즈를 크게 신어야 한다는 점이다. 또 사실 단화인만큼 장시간 착용에 적합한 착화감은 아니다.
개인적 의미 및 구매 이유
1년간 착용한 아킬레스 로우
어린 시절 흰 신발을 멀리하던 시절을 지나, 자유로운 선택을 할 수 있는 어른이 되었다. 늘 구매이유를 쓰다보면 항상 같은 이유로 귀결되는것 같아 민망하다. 깔끔하고 이쁜 신발이 신고 싶었고, 늘 그 정점에 있는 것으로 느껴졌던 커먼프로젝트 아킬레스 로우를 구매하게 되었다. 슬랙스나 통이 좁은 바지를 신을때 주로 손이 가는 신발이다. 늘 그렇듯, 필자의 착샷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