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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도령 Mar 18. 2022

데님, 그 푸른 역사에 대하여

Levi's Vintage Clothing, LVC 47501 리뷰

150년 동안 거의 바뀌지 않은 옷은 무엇일까요?동시에 전 세계적으로 남녀노소 모두가 일상적으로 입는 옷. 바로 청바지입니다. 영어로는 Denim, Jeans라고도 불리는 이 푸른 바지는 도대체 어떻게 만들어져 어떻게 우리의 옷장 속으로 들어왔는지 그 얘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워낙의 긴 역사를 가졌기에 엄청나게 긴 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소개하고자 하는 청바지가 많기에 역사, 청바지의 구조, 특성 등으로 글을 나누어 여러 차례로 설명해볼까 합니다. 오늘은 청바지의 역사와 Levi's Vintage Clothing, 즉 LVC의 47501 라인에 대해 소개해보겠습니다.


청바지의 간단한 역사 및 배경


데님의 기원


청바지의 역사를 알기 위해선 우선 청바지를 만들 때 쓰이는 원단, 데님의 역사부터 시작해야겠죠. 데님의 시초는 17세기 이탈리아의 북부지방에서 지역 노동자들을 위한 옷을 만들 때 사용되던 푸른 원단이라고 합니다. 이 원단은 주로 이탈리아 북부 항구도시인 Genoa에서 수출되었고, 다양한 원단과 리본으로 유명했던 남부 프랑스 마을 Nîmes에도 도달하게 됩니다. 프랑스에선 이 원단을 "bleu de Gênes", 즉 Genoa의 푸름(blue)라고 불렀는데 이는 이후 Blue jeans(청바지)로 변형되어 불리게 됩니다.

이탈리아의 항구도시 Genoa(좌측)와 프랑스의 Nimes 마을(우측)

Nîmes의 직공들은 이 이탈리아산 원단을 재해석하여 더욱 튼튼하게 변형시킵니다. 이렇게 개선된 원단은 불어로 Nîmes(님)에서 온 원단이란 뜻인 "Serge de Nîmes"라 불립니다. 이는 줄여 de Nîmes으로 불리며 오늘날의 "데님"이란 단어의 시초가 됩니다.

기록상 가장 오래된 데님 소재의 자켓, 1805~1810 추정(좌측), 19세기 후반~20세기 초 네덜란드 농부 자켓(우측)

이렇게 원단 자체가 유럽에서 등장한 만큼, 유럽의 노동자들(농부, 공장 노동자 등)은 최소 몇 백 년 동안 데님 혹은 유사한 거친 푸른 면직물로 짜인 바지와 자켓을 입어왔습니다. 현존 가장 오래된 데님 자켓은 German Historical Commission of the Rhineland에서 보관 중이며, 연식은 1805~1810년도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이후, 유럽 노동자들이 미국으로 이민을 가며 데님 또한 미국 지역에 퍼지게 됩니다. 1848년 ~ 1855년에는 서부 캘리포니아 지역에서 금이 나온다는 소문에 다수의 주민들이 서쪽으로 이동하는  골드 러쉬가 일어나는데, 여기서부터 리바이스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Levi's 청바지의 시작

Jacob Davis(좌측), Levi Strauss(우측)

Levi Strauss는 독일 출신 이민자로, 1853년 24살에 뉴욕을 떠나 샌프란시스코로 향합니다. 후발주자였던 만큼 금을 캐기보단 주변 광부들이나 노동자들에게 Dry goods, 즉 각종 도구나 자재를 판매하는 가게를 열어 운영합니다. 처음에는 다양한 자재들 중 텐트를 판매하고자 했으나, 쉽게 헤지는 바지에 대한 수요가 더 큰 것을 보고 텐트용 천으로 바지를 만들어 판매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푸른색의 천 외에도 갈색 캔버스 소재의 바지도 생산했으나, 노동 시 바지에 묻는 흙이나 오염이 눈에 덜 띄어 푸른색 바지를 집중하게 됩니다.


리바이스 특허(좌), 청바지의 리벳(Rivet, 우측)

1860년대에는 텐트 천 대신 데님 소재를 이용하기 시작해 바지를 판매하기 시작합니다. 바지뿐만이 아니라 원단 자체도 판매했던 리바이스는 손님들 중 Nevada 주에 거주하던 재단사 Jacob Davis로부터 하나의 제안을 받게 됩니다. 제이콥은 네바다 주에서 농부, 카우보이,  광부, 나무꾼들 등의 노동자들을 위해 작업복을 만들었는데, 리바이스로부터 데님 원단을 공급받았습니다. 그는 말용 이불(horse blanket)에 사용되던 Rivet을 바지에 도입해 가장 장력이 많이 가해지고 쉽게 헤지는 부분에 박아 더욱 튼튼하게 만드는 아이디어를 떠올립니다. 그러나 특허를 낼 비용이 없던 그는 리바이스를 찾아가 아이디어와 동업을 제안합니다. 리바이스는 이에 동의하고, 1873년 5월 20일 그들의 특허가 인정받게 됩니다. 그렇게 리바이스는 최초로 리벳이 달린 청바지를 대량 생산하기 시작하며, 당시 원단을 보관하던 박스에 적혀있던 번호에서 착안해 그들의 청바지에 '501'이란 이름을 붙여줍니다. 1890년까지 17년 동안 특허가 만료되기 전까지 그들은 리벳이 달린 청바지를 독점적으로 생산합니다.


SWEET,ORR&CO의 1871 광고(좌), 리바이스의 시그니처 로고(우)

여기서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리바이스가 미국에서 최초로 청바지를 만든 업체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앞에서도 얘기하였듯 최초의 데님 의류는 유럽에서 시작했으며 이민자들과 함께 미국 동부로 건너왔습니다. 그렇기에 미국 동부를 비롯한 여러 곳에 데님 의류를 만드는 업체들이 생겨났고, 이들 중 일부는 리바이스보다 먼저 설립된 곳들도 있었습니다. 물론 당시에는 물류 시스템이 원활하지 않아 지역 근바으로 사업이 제한됐었습니다. 하나의 예시로 뉴욕에서 1871년 설립된 업체, SWEET, ORR&CO가 있는데, 1920년대 당시 뉴욕 노동자들은 대부분 이 브랜드를 착용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들을 비롯한 다양한 청바지 업체들은 마케팅을 위해 청바지를 양쪽으로 당기는 그림을 사용했는데 당기는 대상은 사람(줄다리기), 기차, 불독, 말(리바이스의 경우) 등 다양했습니다. 물론 위의 그림을 보면 리바이스보다 설립년도 이전부터 SWEET.ORR&CO가 사용한 기록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1800년대 후반까지는 리바이스와 경쟁업체들이 비슷한 경쟁력을 보였으나, 1900년대 초에 들어서는 리바이스가 앞서 나가기 시작합니다. 일부 지역을 넘어서 공급망을 확대하는 방법을 터득하며 리바이스는 더욱 퍼져나가게 됩니다. 또한 1890년 특허가 만료되며 Abercombie, American Eagle, Nautica Jeans, Lucky Brand 등의 브랜드에서도 각자의 실루엣과 디자인으로 리벳이 달린 청바지를 생산하기 시작합니다. 비슷한 시기에 리바이스 외에도 미국 3대 청바지로 불리는 Lee, Wrangler도 이쯤 설립되었습니다. LEE는 미국 중서부에서 1910년에, Wrangler은 North Caolina주에서 1904년 Blue Bell이란 이름으로 설립되었습니다.

화이트오크 콘밀 데님 tag와 셀비지에 박힌 시그니처 붉은 실

1915년부터 리바이스는 미국 North Carolina 주의 Cone Mills White Oak®와 계약하여 셀비지 데님을 공급받습니다. 2017년 콘밀이 화이트 오크 공장을 닫기 전까지는 102년 동안 계속 데님을 공급받았다고 합니다. 1927년부터는 셀비지 끝단에 리바이스 셀비지의 시그니쳐로도 알려진 붉은 실을 박아 넣기 시작합니다. 당시의 데님 원단은 방축가공이 되지 않아 물에 닿았을 때 크게 수축했는데, 리바이스를 이러한 특성을 "Shrink to fit"이라고 부르기 시작합니다. 물에 담가 소킹(Soaking)하여 줄인 뒤 사용자가 착용하면서 그들만의 체형에 맞춰지기 때문에 그러한 이름을 붙였다고 합니다.


1930년대, 서부극의 유행과 데님

1930년대 서부극 영화와 복장


1930년대에는 서부의 교외화가 이루어지며 골드 러시 때의 황량하던 서부, 이른바 'Wild West' 문화를 그리워하는 이들이 생겨났습니다. 그러한 정서 속에서 카우보이들이 등장하는 서부극 할리우드 영화가 유행하게 되었고, 이런 영화의 주연 배우들은 청바지를 입고 등장했습니다. 배우들의 영향 하에 데님은 최초로 작업복(워크웨어)의 개념에서 벗어나 패션, 일상복 용으로 착용되기 시작합니다. 1934년부터 최초의 여성 오버롤이 등장하기도 하며 할리우드 스타 Greta Garbo, Katharine Heburn, Marlene Dietrich 등이 Dungarees(데님 멜빵바지)를 착용하고 영화에 등장하기도 합니다.


1930년대 서부극의 유명 배우 중 하나인 John Wayne의 아들이 그에 대한 인터뷰에서 소개한 일화가 하나 있는데 이를 통해 당시의 Shrink to fit 문화를 엿볼 수 있습니다. 존 웨인은 새 서부극 영화에 캐스팅이 되면 가족과 늘 LA 근교의 Catalina 섬으로 여행을 갔다고 합니다. 거기서 그는 새 Shrink to fit 바지를 산 뒤, 섬의 교각에 가서 주머니에 돌을 가득 넣어 물에 담그고 여행을 즐겼습니다. 여행이 끝날 무렵, 물속에서 줄어든 청바지를 다시 찾아 새 영화에서 착용했다고 합니다.


관광목장 일러스트와 관광객들

서부의 교외화로 인해 농부들과 가축 목장주들은 수입을 늘리기 위해 목장 관광업을 시작하곤 했습니다. 동부의 부유층 사이에서 이러한 'Dude Ranch'(관광목장)에 여가를 보내는 것이 유행하게 됩니다. 동부의 관광객들은 목장에서 노동들이 많이 착용하는 청바지를 보고 기념품 등의 이유로 구매하였고, 동부에서도 청바지가 더욱 퍼지게 됩니다. 이러한 이유들로 데님 의류는 1920~30년대 중산층 대중들 사이에서 착용되기 시작합니다.


1940년대, 2차 대전의 영향


1940년쯤에는 청바지에게 작업복이나 패션 외에도 새로운 상징성이 부여되기 시작합니다. 1939년에는 John Steinback의 소설, "The Grapes of Wrath"를 통해 노동자 계급이 낭만화되기 시작했으며, 2차 대전의 프로파간다들을 통해 독립, 형평성, 애국주의의 상징으로 활용됩니다.

Rosie Riveter 프로파간다 포스터(좌측), 1940년대 여성 작업복(중심), 데님 소재의 여성용 피서복(우측)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의 많은 여성들은 데님 의류를 착용하고 전장에 나간 남성들을 대신하여 군수 공장에서 근무하곤 했습니다. 이런 "Rosie Riveter" 현상이라고도 불리는 생활을 통해 여성들도 더욱 자연스럽게 근무 외 일상 속에서도 초어 코트나 청바지, 오버롤 등을 착용하게 됩니다. 1940년대 LIFE 잡지에서는 젊은 여성들이 남자 친구들의 바지를 빌려 입고 다닌다는 글도 기록으로 남아있습니다.


2차대전 시기의 빈티지 리바이스(좌측, 중앙), 일반 모델의 아치형 자수(우측)

2차 대전은 발발하며 청바지 자체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미국도 전쟁에 참전하며 쇠붙이나 기타 원자재를 군용으로 사용해야 했기 때문에 청바지를 포함한 많은 제조업에 다양한 제한이 걸리게 됩니다. 30년대까지 존재하던 허리 뒤쪽의 신치(cinch) 금지, 리벳의 자재, 개수, 장식용 실의 사용이 제한되며 리바스의 시그니처 디테일 중 하나인 엉덩이의 아치 디테일도 자수가 아닌 프린트로 대체되곤 했습니다.


전쟁 이후에는 리벳과 자수 디테일은 돌아왔으나, 신치 디테일은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또한 2차 대전 전에는 미국 서부지역에서만 주로 판매되던 리바이스는 전쟁과 함께 유럽과 태평양 지역까지 퍼져 종전 후에는 더욱 해외의 시장을 키우게 됩니다.


1950년대, 할리우드의 영향

말론 브란도, 제임스 딘, 마를린 먼로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청바지를 일상복으로 입기 시작한 것은 1950년부터 입니다. 가장 크게 작용한 요인은 역시 할리우드 영화로, 가죽자켓 글에서도 다룬 Marlon Brando의 "The Wild One", James Dean의 "Rebel Without a Cause", Elvis Presley의 반항적인 이미지가 크게 작용했습니다. 여성도 Marilyn Monroe가 청바지를 착용하고 섹시함을 어필하며 청바지를 더욱 많이 착용하게 됩니다. 이러한 할리우드 스타들 덕에 50년대 미국의 청소년들은 청바지를 일상복으로 착용하게 됩니다. 이러한 반항적인 이미지를 가진 청바지를 착용하는 것에 반대하는 학부모나 학교들도 있었으나, 원단 및 청바지 회사의 지원 아래 탄생한 마케팅 단체 Denim Council 덕에 그 우려는 잦아듭니다.


청바지가 유행하게 된 또 다른 이유로는 전쟁 이후의 풍족한 경제부흥기입니다. 전쟁 전에는 정확히 '청소년'이라는 개념이 딱히 없었습니다. 2차 대전 전에는 학교를 졸업하면 곧바로 취직을 하여 가족을 부양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나 전쟁 이후 삶이 넉넉해지며 청소년들에게 '여가'라는 개념이 생겨납니다. 관심사에 쓸 수 있는 여윳돈이 생기고, Sock Hop(댄스 행사)등이 유행하며 자동차나 새 옷을 구입하는 일이 늘어났습니다.

1950년대의 데이트


https://www.youtube.com/watch?v=FtgwyzC1ySI&ab_channel=OldTVTime

1950년대 데이트 교육영상

서부극을 보고 자란 50년대의 청소년들은 청바지라는 옷에 더욱 친숙함을 느낀 동시에 자신들이 반항적인 이미지로 착용하는 청바지와 아버지 세대의 작업복과 다른 차별점을 두고 싶었기에 청바지를 "Jeans"라고 부르기 시작합니다. 그 이전까지 "Jeans"라는 단어가 없진 않았지만 주로 청바지를 부를 때는 "Waist Overalls"라고 불렀습니다. 이 단어는 더욱 널리 사용되어 60년대부터는 리바이스도 Jeans를 공식 용어로 사용합니다.


여담으로 50년대부터는 리바이스에서 바지 잠금 방식을 버튼 플라이뿐만이 아닌 지퍼 방식도 도입하게 됩니다. 이유는 지퍼가 더욱 친숙했던 동부 사람들을 고려해서라고 합니다. LEE 같은 경우에는 이미 그전부터 지퍼를 도입했다고 하네요.


1960년대, 히피족과 나팔바지

60년대의 히피족과 그들이 착용하던 바지

60년대에는 베트남 전쟁과 불안한 미국 사회의 영향으로 무기력에 빠진 젊은 히피족들이 생겨납니다. 이들은 기존 사회의 질서를 거부하고 자유와 평화 등의 정신적 가치를 중시하며 물질을 부정하던 사람들로, 60년대부터 70년대까지 영향을 끼칩니다. 물질적인 가치를 부정했기에 히피족은 록 콘서트나 생활에서 구제나 물려 입은 청바지를 주로 입었습니다. 구멍이 나도 개의치 않아했으며, 찢어진 곳은 패치를 꿰매 누더기처럼 입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문화를 따라 청바지 의류 회사들은 이미 손상된 형태의 제품을 만들어서 팔거나 그에 반하여 해군들은 나팔바지(Bellbottoms)를 착용한다는 마케팅 전략을 내세웠습니다. 해군들은 배에 물이 들어와 일을 할 때 바지를 걷어올리기 편해 나팔바지를 선호했다고 합니다.


1970~1980년대 데님의 확장 및 디자이너 청바지의 시작

70년대의 다양한 데님 패션

1970년대부터는 다양하고 실험적인 디자인들이 많이 늘어나게 됩니다. 청청패션으로 불리는 Canadian Tuexdo의 유행과 더 과감해진 나팔바지, 특이한 디테일들이 추가된 데님 의류가 많아지게 됩니다. 동시에 히피족들처럼 중고의류나 부모 세대의 옷을 물려받아 패치나 커스텀을 하는 문화도 이어집니다.


1970년대 후반~80년대부터는 디자이너 브랜드의 청바지 시대가 열립니다. 프랑스 청바지의 고급화 마케팅 전략으로 최초의 디자이너 브랜드 청바지가 Gloria Vanderrbilt에서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이후 Calvin Klein, Guess와 다수의 하이엔드를 포한한 의류 브랜드들에서 스톤워싱, Acid 워싱된 데님들이 출시되기도 합니다.

브룩 쉴즈의 1980년 캘빈 클라인 광고의 한 장면

특히 Calvin Klein의 경우, 기존 런웨이에서 볼 수 없던 청바지를 76년에 등장시키기도 했으며, 80에는 당시 15살의 Brooke Shields를 모델로 세워 "저와 제 켈빈 사이에 뭐가 있는지 아세요? 아무것도 없어요."라는 대사의 선정적인 광고로 많은 논란을 빚었습니다.

1989년, 베를린 장벽

이와 같이 섹시미가 강조되긴 했지만 청바지는 여전히 반항 및 저항에 대한 메시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50년대의 반항아 이미지, 60년대 히피족의 사회 체제에 대한 거부는 미국뿐만이 아닌 세계적으로 공통되어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그 예시로 1989년 베를린 장벽의 붕괴 사진을 봐도 다수의 청년들이 청바지를 입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국내에도 5.18 민주화운동 6.10 민주 항쟁에서 수많은 청년들도 청바지를 입고 시위를 했을 것입니다. 이미 일상복의 개념이 된 지 오래지만, 역사적인 순간들에 청바지가 함께했다는 것 또한 사실이라 생각합니다.


1990~현재의 청바지

스티브 잡스, 힙합 아티스트 Diplomats,

90년대에는 힙합 거리의 디자이너 Karl Kani와 일부 디자이너들이 baggy Jeans를 유행시키는데 일조하였으며, 그런지, 배기, 과하게 찢어진 청바지들이 유행했습니다. 2000년대는 스키니진처럼 몸에 달라붙고 밑위가 짧은 형태와 패스트 패션이 크게 작용했습니다. 특정 인물에 제약 없이 스케이트 보더, 라이더, LGBT, 펑크, 록, 힙합 등의 뮤지션, 군인, 운동선수들 등 사회 곳곳에서 여러 인물들에게 청바지는 계속 착용되고 있습니다.


2010년대 후반부터 현재까지는 와이드하고 여유로운 실루엣과 친환경적인 데님, 재활용, 빈티지 문화가 크게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또한 IT업계에서 스티브 잡스의 청바지 착용을 시작해 오늘날에는 여러 기업에서 복장 자율화가 이루어지며 청바지는 이제 평범한 회사원의 복장으로도 자리 잡고 있습니다. 많이 변한 듯하면서도 늘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청바지와 데님은 앞으로도 계속 사람들의 옷장의 한 구석을 차지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LVC 특징 및 장단점

LVC는 Levi's Vintage Clothing의 약자입니다. 리바이스에서 옛 자료를 참조해 고증을 지켜 모델별로 연도에 따른 옛날의 의류를 복각하는 라인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위에서도 언급했듯 원단을 수급받던 콘밀의 화이트오크가 운영하지 않게 되었고, 그 외의 핏이나 디테일들 또한 실제 과거와는 차이가 크다는 의견이 우세적입니다. 오히려 복각 완성도는 리얼멕코이, 웨어하우스, 풀카운트 등의 일본의 다양한 데님 브랜드들이 우세하다는 의견이 많기에 사실상 LVC는 리바이스에서 셀비지 원단으로 만드는 일종의 고급 라인이라고 생각하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필자의 LVC 47501 처음 구매 당시(21.03)와 현재(22.03)

필자가 보유한 LVC 바지의 이름은 47501 Rigid V2로, 앞 두 글자는 연도, 뒤 세 자리는 핏 번호입니다. 즉, 47년도 501(레귤러 스트레이트) 라인이라고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생산 이후 물에 닿지 않은 "리지드"로 구매하였으며, V2이기에 콘밀 원단이 아닌 일본의 카이하라 원단입니다.


물론 방축가공이 되지 않은 셀비지 원단이기 때문에 장시간 착용을 하면 색이 빠지고 페이딩이 진행됩니다. 위의 첨부한 사진을 보면 주름이 잡히는 구간이나 주머니에 물건을 넣어 마찰이 많이 일어나는 구간의 색이 더 많이 빠진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페이딩이나 워싱에 대한 것은 다음 글에 더 자세히 적어보겠습니다.


개인적 의미 및 구매 이유

위에서 필자가 얘기하였듯 LVC는 데님계에서 마치 2대 사장님이 운영하는 전통 50년의 유명 맛집에서 기존 레시피와 많이 다른 메뉴를 시켜먹는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함에도 핏 자체가 이쁘고 150년이 다 돼가는 역사를 가진 리바이스가 가진 가장 프리미엄 라인이기에 개인적으로 만족합니다. 사실 복각률이 높다고 훌륭한 의류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과거인이 아니니까요. 오늘 글에서도 적었듯 사람들의 역사 속에서 데님도 끊임없이 변화해 왔습니다. 그런 세상에서 오로지 과거만을 고집하는 것은 우매한 것인지도 모르겠죠. 말 그대로 Vintage clothing이라기보단 그 정신을 이어받았다고 생각하는 필자입니다. 옷이란 튼튼하고 입었을 때 아름다우면 그만 아니겠습니까?


이토록 긴 글을 읽어주신 분이 있으시다면 감사의 말씀을 전하며, 오늘도 필자의 착샷으로 마무리합니다.

필자의 착샷

p.s. 역사가 긴 만큼 이번 주 내내 자료조사만 하다가 끝나버렸네요. 다음번에는 더 짧게 쓰는 연습을 해야겠습니다.



참조자료

https://www.youtube.com/watch?v=pL1BEmIV_oY&t=26s&ab_channel=NowYouKnowAbout

https://www.youtube.com/watch?v=aT9s6J1raE8&ab_channel=Insider

https://www.youtube.com/watch?v=6R9cAoCyatA&ab_channel=Levi%27s%C2%AE

https://www.youtube.com/watch?v=orY4FVCy-vc&t=20s&ab_channel=WoodlawnSchool

https://www.youtube.com/watch?v=orY4FVCy-vc&t=20s&ab_channel=WoodlawnSchool

https://www.youtube.com/watch?v=SdwM2oMdFSQ&ab_channel=TheWalrus

https://www.youtube.com/watch?v=WyjmEZOxz3I&ab_channel=CenterforBrooklyn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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