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허도령 Mar 23. 2022

데님, 그 특성에 대하여

Pure Blue Japan XX-003 (PBJ) 리뷰

지난번 글을 통해 간단히 데님의 역사에 대해 적어보았습니다. 오늘은 페이딩을 비롯한 데님의 특성에 대해 소개해볼까 합니다. 추가로 데님과 관련된 상식이나 용어와 함께 필자가 소장 중인 Pure Blue Japan의 XX-003 모델을 리뷰해보겠습니다.


데님의 구조 및 특성

데님의 구조

데님은 좌측 그림의 중앙 사진인 능직(=트윌, twill)의 한 종류입니다.

특성을 소개하기에 앞서 데님의 구조에 대해 짚어보겠습니다. 데님은 트윌(능직)이라는 원단의 한 종류입니다. 트윌은 날실(Warp, 상하) 또는 씨실(Weft, 좌우)이 연속해서 2올 또는 그 이상을 상하로 교차되어 조직점이 능선으로 나타납니다. 데님의 경우, 날실과 씨실의 색이 다릅니다. 날실은 인디고를 사용해 푸르게 염색되는 반면, 씨실은 실의 본색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청바지의 밖은 파란색인 반면, 내부는 그보다 밝은 색을 가지고 있습니다.


데님의 염색 원료, 인디고

인디고 염료의 원재료가 되는 식물 Indigofera tinctoria, 인디고를 염색중인 실

데님은 인디고(Indigofera tinctoria)라는 식물에서 얻어진 푸른 염료를 이용해 염색을 진행합니다. 천연 인디고는 불순물이 많아 고르지 못한 염색이 나옵니다. 1878년 독일의 화학자 A. 폰 바이어의 합성 인디고 개발 성공 후, 1913년까지 합성 인디고는 점차 천연 인디고의 자리를 차지하게 됩니다. 인디고는 소재의 특성상 실에 쉽게 달라붙지 않고 염색이 어려워 요즘의 의류 회사에서는 화학적 처리를 통해 염색을 하는 곳도 많습니다. 데님용 실을 염색하는 방법으로는 염료가 담긴 통에 실을 담그고 산소를 차단시켜 염색하는 Vat Dyeing 방법과 염료가 담긴 통에 실을 적신 뒤 로프에 매달아 건조하는 과정을 반복하는 Rope Dyeing 기법 등이 있다.


페이딩이란?

인디고로 염색된 실의 구조(좌측), 데님의 염료가 벗겨져 원색이 드러난 모습(우측)

페이딩(Fading)이란 청바지를 장시간 착용하며 인디고 염료가 바래지며 생기는 경년 변화를 말합니다. 위에서 설명한 데님 원단 구조에서 인디고로 염색된 날실의 염료가 빠져나가며 색이 옅어지게 됩니다. 인디고는 실에 쉽게 착색되지 않는 만큼, 염색 후에도 실의 중앙부까지는 인디고가 침투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실의 외부의 인디고가 빠져나가게 되면 원래 실의 색이 나타나게 됩니다. 

페이딩은 마찰이 강하게 일어난 부분에서 더욱 강하게 일어납니다. 착용자가 청바지를 착용하며 주름이 생기게 되는 부분에서는 데님 천이 서로 부딪혀 마찰을 일으키게 되고, 그 결과 더 빠르게 색을 잃게 됩니다. 그렇기에 원단이 강한 마찰을 일으키게 하는 요인 즉, 페이딩이 강하게 일어나게 하는 요소는 아래와 같습니다.


1. 무거운 원단: 원단 자체의 두께와 무게 덕분에 같은 활동 후에도 원단끼리의 마찰이 가벼운 원단에 비해 더 강하게 일어나기 때문에 페이딩이 더 강하게 진행됩니다.

2. 원단의 불규칙성: 원단을 구조 자체가 불규칙할 경우, 특정 부분의 실이 더 튀어나와 요철감을 주게 됩니다. 이렇게 튀어나온 부분의 실은 외부 마찰에 더욱 쉽게 노출되고 빠르게 색이 빠지게 됩니다. 이러한 요철감을 보통 "슬러 비하다"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3. 착용자의 격한 활동: 청바지를 착용한 사람이 격한 외부활동을 하게 되면 청바지의 주름에 가해지는 힘도 강해집니다. 동시에 인디고의 탈색도 강하고 빠르게 일어납니다.


이처럼 착용자의 움직임과 생활습관, 원단의 특성에 따라 마찰이 다르게 발생합니다. 그렇기에 청바지에 나타나는 주름과 색바람은 비슷해 보일지언정 전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그 청바지와 착용자만의 비밀 가득한 디테일로 자리 잡아갑니다.


부위별 페이딩 명칭

페이딩이 강하게 일어난 바지를 가지고 페이딩 명칭을 설명해보고자 합니다.

페이딩이 강하게 일어난 고온스 바지

1. Coin Pocket Fades: 워치포켓 또는 코인 포켓에 넣은 물건의 실루엣대로 페이딩이 일어난 모양

비슷하게 앞주머니나 뒷주머니도 지갑, 핸드폰 등의 물건을 넣고 다니면 그 모양대로 페이딩이 일어납니다.

2. Whiskers: 고양이수염의 모양을 닮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3. Knee whiskering: 무릎에서 일어나는 whisker 페이딩

4. Stacks: 국내에서는 곱창 주름이라고도 하며, 롤업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바지를 입었을 때 끝단에서 일어나는 페이딩

5. Train tracks: 다리의 외곽선에 있는 원단 접합부의 라인을 따라 페이딩이 일어나는 부위 

6. Honeycomb: 무릎 뒤쪽으로 벌집 모양처럼 페이딩이 일어나는 부위, 핏이 스키니할수록 잘 일어남


그 외에도 여러 번의 세탁에 따라 세로 줄무늬 모양으로 색이 전체적으로 빠지는 타테오치, 바지를 잠그는 방식이 버튼일 경우 버튼 모양에 따라 일어나는 단추 모양 페이딩, 세탁 후 바지 끝단에서 파도 모양으로 물이 빠지는 아타리 등의 페이딩도 있습니다. 청바지 업체에서 이미 어느 정도 인위적으로 어느 정도 페이딩을 진행시켜 제품을 출시하기도 하는데, 이런 경우에는 체감상 워싱이라는 용어를 더 많이 사용하는 것 같습니다.


데님 관련 상식 및 용어

다음으로는 데님을 즐길 때 알아두면 좋은 용어나 상식을 적어보고자 합니다.

구형 방직기와 셀비지 일러스트

@구형 방직기(Shuttle Loom): 구형 방직기로 찍어낸 데님 원단은 불균일하고 원단의 폭이 좁은 것이 특징입니다. Shuttle이라는 장치가 앞뒤로 반복적으로 움직이며 실을 원단으로 만드는데, 이러한 과정 속에서 탄생한 원단은 실이 스스로(self) 끝(edge)을 마무리한다 하여 셀비지(Selvedge)라 부릅니다. 원단의 구성 시간이 길기 때문에 실에 가해지는 장력이 약하고, 요철감이 생기는 것이 구형 방직기의 특징입니다. 이러한 요소들은 방직기마다 나오는데 님에게 독특한 특성을 불어넣어 줍니다.

 

@신형 방직기(Shuttleless Loom): 신형 방직기는 구형과 반대로 생산시간이 빠르고 셀비지 원단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구형보다 생산속도가 4배나 빠르고 원단의 폭도 넓어 구형에 비해 생산성은 10배 정도입니다. 그러나 원단의 구성이 균일학에 독자적인 특성은 구형보다 떨어집니다.


@Raw denim(Loomstate, Rigid): 어떠한 인위적 가공도 거치지 않은 생지 데님을 말합니다.

- 데님 바지가 물에 닿지 않고, 워싱 및 방축, 화학적 가공을 거치지 않은 상태


@One-wash: Raw denim 상태에서 1번 세탁을 진행한 후 판매하는 데님을 말합니다. Raw denim의 경우, 원단 수축률이 10% 정도이기 때문에 원단 수축을 피하고 싶은 소비자들을 위한 선택입니다. 


@Sanforized/Unsanforized: 데님 원단의 수축을 방지하기 위한 방축가공의 유무를 나타냅니다. Unsanforized가 방축가공이 되지 않은 상태로, 크게는 10%까지 수축됩니다.


@Button fly/ Zipper fly: 바지를 여닫는 방식이 버튼인지 지퍼인지를 말합니다.


@Rivet(리벳): 청바지에서 장력이 가장 많이 가해지는 부분을 고정하기 위한 쇠붙이. 리바이스의 특허로 청바지에 처음 적용됐습니다.

@Bar tack 리벳과 같은 역할을 하는 여러 번의 스티칭


@Leather patch: 오른쪽 허리 뒤쪽에 보통 달리는 가죽 패치를 말합니다.


@Hidden selvedge line: 워치 포켓의 숨겨진 셀비지 마감선을 말합니다.

위 2개의 경우 lock stitch, 아래 2개의 경우 chain stitch, 최하단은 union special로 작업. 자료 참조: 스티크 업체 블로그 

@Lock stitch: 밑단을 일자로 마감하는 방식

@Chain stitch: 파도 모양 페이딩(퍼커링 또는 아타리)에 영향을 끼친다는 밑단의 작업 방식입니다. 

- union special machine 43200으로 완성된 경우를 가장 원조로 쳐줍니다.

위 사진에서 어떤 방식으로 밑단을 작업했는지에 따라 페이딩이 달라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온즈의 정도에 따른 설명

@온즈(OZ): 청바지의 무게를 나타내는데 주로 쓰이는 단위로, 원단 1야드당 몇 온즈의 무게를 가지는지를 말합니다. 온즈에 따라 착용 시의 편안함의 정도가 달라집니다. 일반적인 SPA 청바지의 경우, 주로 13온즈 미만이나, 위에서 얘기한 바와 같이 고 온즈 일수록 페이딩이 강하고 잘 나타나기에 고가 데님의 경우 고 온즈로 제작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부위별 명칭

청바지 혹은 바지 부위별 명칭


@ right hand twill / left hand twill / broken twill: 원단이 짜인 방향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Raw denim의 경우, 세탁과 착용을 거듭하며 원단이 짜인 방향으로 다리 부분이 돌아가는 현상(leg twist)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Broken twill의 경우 다리가 돌아가지 않습니다.


@Crocking(이염): 페이딩이 진행되며 손이나 데님에 접촉한 물건에 인디고가 묻어나는 현상입니다.


Pure Blue Japan(PBJ) XX-003 소개

PBJ XX-003, 9개월 착용, 약하지만 각종 페이딩을 볼 수 있다.

Pure Blue Japan(이하 PBJ)는 천연염료로만 염색한 데님을 완제품으로 만드는 전 세계적으로 얼마 남지 않은 브랜드 중 하나입니다. 데님의 퀄리티 유지를 위해 오카야마의 소규모 공장에서만 작업을 진행하는 만큼, 전 세계적으로 풀리는 물량이 적은 편입니다. 전통적인 방식과 기술을 토대로 구형 기계를 아직까지 활용하여 PBJ만의 독특한 특성을 가진 원단으로 제품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특히 PBJ의 원단은 로프 다잉을 고수하여 진행하는 진한 인디고 염색, 불규칙한 원단감, 숙련된 장인들의 기술 하에 탄생하는 특유의 강한 색감과 요철감으로 널리 사랑받고 있습니다. 빈티지한 재봉기계들의 개량 및 개조를 통해 바지를 만드는 것 또한 이들의 특징입니다. 엉덩이의 나뭇잎과 허리춤의 염색 장인이 그려진 사슴가죽 패치 로고는 이들 브랜드의 시그니쳐입니다.


PBJ는 타 브랜드 대비 슬림한 핏으로 데님이 제작된다고들 합니다. 그렇기에 필자가 구매한 XX-003은 레귤러 스트레이트 핏인데도 불구하고 일반 레귤러 스트레이트보단 조금 더 슬림한 편입니다. 위에서도 설명한 바와 같이, 강한 요철감과 구형방직기로 짜낸 장력이 약한 원단 덕분에 굉장히 슬러비하고 페이딩이 강하고 빠르게 진행되는 것이 특징입니다.  필자가 이전 글에서 소개한 LVC 47501은 1년간, PBJ XX-003은 9개월간 착용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페이딩은 PBJ가 훨씬 극명한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개인적 의미 및 구매 이유


지금도 데님을 잘 모르지만 필자가 완전히 데님에 처음 입문하던 시절, 고급 일본 데님 브랜드들의 바지를 보고 떠올린생각이 있습니다. "다 똑같이 생겼는데 왜 저렇게 비쌀까?" 그중에서도 하나 눈에 띄는 브랜드가 있었으니 엉덩이에 나뭇잎이 박힌 PBJ였습니다. 장인이 그려진 패치의 로고 또한 뭔가 필자에게 독특한 인상을 심어줬습니다.

PBJ의 시그니처 디테일들(엉덩이 나뭇잎, 가죽패치, 푸른색 셀비지 라인) 밑단의 아타리도 확인 가능하다!

LVC도 그렇지만 PBJ도 필자에게 특별한 의미를 가집니다. 지난번 글이 너무 길어져 개인적 의미를 길게 적지 못했는데, 여기서라도 조금 적어보고자 합니다. 필자가 처음 입사한 후, 개인적으로는 힘든 일이 많았습니다. 혼자만 동떨어진 신입의 그 분위기에 짓눌리고, 다들 아는 업무를 나만 몰라 허덕이던 일상 속, 자존감이 남아나질 않았습니다. 실제로 가슴이 답답하고 갑자기 숨이 가빠지고 식은땀이 나는 등 이상 증상도 나타났지만 그냥 버텼습니다. 필자가 하는 업무들이 너무나도 보잘것없고 심지어 그마저도 똑바로 처리하지 못해 일이 꼬일 때면 이렇게 사는 것이 맞나 생각도 들었습니다. 


매일매일 나의 일상이 사라지고 회사만 남아 나의 인생은 어디로 흘러가는 건가 싶던 당시, 우습지만 청바지만이 필자의 하루하루를 기억해주었습니다. 내디뎠던 모든 걸음들과 현장 계단을 오르내리던 필자의 모습이 차곡차곡 쌓여 페이딩으로 드러났습니다. 퇴근하고 우연히 걸어놓은 청바지를 보고, 그래도 여기서 무언가 버텨냈구나, 어느새 이 정도는 적응했구나를 되돌아보았습니다. 어영부영 신입 시절을 함께 쌓아가고 함께 색도 빠지고 주름 잡히며 늙어가는 그런 옷이기에 PBJ는 필자에게 더욱 특별한 의미를 가집니다. 오늘도 필자의 착샷으로 글을 마칩니다.

구매 후 첫 착용한 상태(좌측, 페이딩이 거의 없는 원워시 상태), 6개월 정도 착용한 시점(우측, 주머니와 무릎 부근의 페이딩을 볼 수 있다.)



이전 07화 데님, 그 푸른 역사에 대하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