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 시 셋
주광색 등불이 스며든 책 페이지
한꺼풀 한꺼풀 쓸어내리는 밤,
방을 낮게 채운 쿨 재즈와
타들어가는 인센스 스틱의 향은
6, 7년 전 카투사 시절 한없이 차가웠던
막사의 방바닥으로 날 돌려보낸다
얇은 콘크리트 벽을 하나 사이에 두었던
까까머리 인연들은 어디에서 누구든지 되었겠지
하루하루 채워가던 날들은 이젠 온데간데 없고
어디론가 벗겨져 부끄러운 나날이다
열린 창 틈으로 비집고 들어와 볼을 스치는
부드러운 봄바람은 연인의 살결을 닮았다
생각을 말아야지 고개를 저어본들
벽에 걸린 세탁부 그림 때문에
눈을 감고 너의 목덜미에 고개를 파묻던
그런 시절이 생각도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