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가 나에게 친절을 베풀면, 나는 그 감정을 있는 그대로 믿어버리는 경향이 있다.
마음 깊이 악의가 없다는 느낌이 들면, 쉽게 신뢰하게 되고, 그래서 자주 착각을 하기도 한다.
25년 전, 어린 고양이와의 만남이 그 시작을 보여주는 듯하다.
부대 식당관리관으로 일하던 시절, 겨울밤 술을 마시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홀로 방황하던 새끼 고양이를 만났다.
주머니 속 마른안주를 건네주자 녀석은 망설임 없이 다가와 먹었다.
잠시 몸을 쓰다듬어주고 나는 집으로 들어갔지만, 다음날 새벽 출근길, 아파트 입구에서 다시 마주쳤다.
나를 기다린 듯 앉아 있던 고양이는 부르자 곧장 달려와 몸을 비볐다.
그날 이후 나는 녀석을 부대 식당 뒤편에서 키우기 시작했다.
멸치와 우유를 주며, 그렇게 작은 인연이 이어졌다.
돌이켜보면, 어미에게 버려진 듯 외롭고 배고픈 그 고양이는 차가운 겨울밤 주차장의 열기를 붙잡고 살아남고 있었다.
그리다 우연히 나를 만나, 따뜻한 마음을 가진 집사라고 믿었던 것 같다.
나 역시 사람에게 받은 상처로 한동안 타인을 두려워하며 살았다.
한때는 사람의 눈을 제대로 마주치지 못했고,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할지도 몰랐다.
예전에는 상대의 눈을 똑바로 보며 대화하는 사람이었는데, 어느 순간 그마저도 어려워졌다.
그래서 사람을 관리하는 역할을 맡으라는 제안이 왔을 때, 두려움이 앞섰다.
‘과연 해낼 수 있을까? 오히려 상처를 주게 되지 않을까? 말을 들어주지 못해서 오해만 남기게 되는 것은 아닐까?’
몇 달을 망설이다 결국 선택했지만, 불안은 쉽사리 가시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며, 한 사람의 따뜻한 영향과 스스로의 다짐이 더해져 마음은 조금씩 안정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타인의 눈을 마주하는 일은 힘겨웠다.
그런데 최근 들어 누군가의 눈을 다시 보기 시작했다.
눈을 바라보다 보니 얼굴이 보이고, 얼굴을 보니 그 사람의 생각과 마음까지 느껴지는 듯했다.
친절하게 다가오는 이들을 다시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마치 그때의 새끼 고양이처럼, ‘믿을 수 있는 존재’라는 신호를 스스로 받아들이며 마음을 연 셈이다.
하지만 여기서 또 다른 혼란이 시작되었다.
상대의 감정이 진심인지, 아니면 직업적 친절인지 알 수 없게 된 것이다.
편안히 대하고 마음을 열다 보니, 내 감정이 진짜인지, 혹은 착각인지 갈피를 잡지 못한다.
오늘 새벽 두 시에 깬 이유도 바로 이 생각들 때문이었다.
감정의 혼란 속에서 정답을 찾고 싶었지만, 명확한 답은 없다.
마음속에는 의심과 착각, 오해와 믿음이 뒤섞여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나는 직접 표현하고 싶고, 또 상대의 진실된 마음을 목소리로 듣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의 관계에서는 위험할 수도 있다.
어떤 대답이 돌아올지, 그리고 그 대답이 관계에 어떤 파장을 남길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으니까.
그래서 오늘도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믿음은 어디까지가 순수한 감정이고, 어디서부터가 착각일까?
그 경계 위에서 나는 여전히 고민한다.
진심과 착각을 판단하기 어렵지만, 그 혼란 속에서도 누군가를 믿고 싶은 마음으로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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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 이미지 출처] Carat 생성 (구글 이마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