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같은 거리, 같은 빈도일 필요는 없어요
중심이 같은 원들이 있어요.
같은 중심을 가지고 있지만 반지름이 다른 여러 개의 원들.
저를 중심으로 아는 사람들을 크고 작은 동그라미로 그려봤어요. 어떤 사람은 가깝게 어떤 사람은 멀찌감치 큰 원으로 그려보았죠.
그림을 보니 거리가 가깝다고 해서 제게 꼭 중요한 사람은 아니더군요.
사람들을 만나지 않고 살기는 힘들어요. 당연히 만나면서 살아야죠.
일주일이 멀다 하고 자주 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일주일에 한번 보는 사람, 한 달에 한번 보는 사람, 일 년에 한 번, 몇 년에 한 번...
친하다고 꼭 자주 보는 것 같지는 않더라고요. 며칠 전에도 절친을 만났는데 분기별로 한 번 보면 자주 보는 거예요. 꼭 바빠서 그렇다기보다 평소에는 문자로 소통하면 되고 그동안 쌓인 친분과 신뢰가 두텁다 보니 오랜만에 만나도 속 깊은 얘기를 할 수 있더라고요.
반면 너무 자주 보면 피곤한 사람들도 있어요. 굳이 사적으로 친하고 싶지 않은데 자주 보다 보면 속사정을 알게 되고 또 구구절절 사연을 듣다 보면 간혹 '시간이 아깝다...'라는 생각도 들거든요.
가까운 거리에 사는 지인들이거나 비즈니스 혹은 취미생활을 위해 만나는 사람들은 사적으로는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고 싶더라고요.
저는 친할수록 시간과 거리를 지키자는 주의(注意)예요. 사실 쉽지는 않아요. 친하면 보고 싶고 만나고 싶은 게 당연하잖아요.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라면 어떨까요. 당연히 연로하신 부모님은 자주 봬야 할 것 같고, 독립해서 주말에나 볼 수 있는 자녀들과 만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은데요.
물론 부모님이 병환 중이시거나 돌봐야 할 의무가 있는 경우라면 사정이 다르겠지만 자녀들 경우는 좀 복잡합니다. 자녀들이 본가에 자주 오지 않는다고 서운해하는 부모들이 있는 반면 드문드문 메시지로만 소통하거나 서너 달에나 한 번씩 만나는 부모들은 주변으로부터 자식에게 너무 무관심한 거 아니냐는 핀잔을 듣기도 합니다. 그건 가족의 성향에 따라 다르겠죠. 알아서들 잘하겠죠.
사실 혈연관계를 염두에 두고 이 글을 쓰기 시작한 건 아니에요. 일반적인 친분관계를 생각하며 떠올린 주제거든요. 사람들의 친분, 만남이라면... 아마도 많은 이들은 가장 먼저 이 유명한 격언을 떠올릴 거예요.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
맞는 말이죠. 자주 만나지 않는다는 것은 관심에서 멀어졌다는 뜻이니까요. 실제로도 점점 만남의 횟수가 줄어들면서 결국 만나지 않게 되는 이들도 있긴 해요.
하지만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고 말하고 싶어요. 소통의 방식이 다양해졌거든요.
만나지 않는다고 반드시 유대관계가 단절된다고 하기 어렵거든요. 글로벌 시대에 디지털 노마드족로 살아가는 이들도 많고 수만 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친구들과도 언제든 소통할 수 있는 세상이잖아요.
이제 문제는 '얼마나 자주 직접 만나느냐', 즉 눈에 보이는 횟수 보다 만남의 내용과 깊이, 그리고 서로에 대한 감정이에요.
자주 본다고 반드시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 되는 건 아니니까요.
그래서 친하다 할지라도 서로의 시간에 자주 끼어들기 보다 만나는 빈도를 지키면서 그 사이의 애틋함을 간직하는 것이 서로의 관계에 훨씬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됐어요.
나를 중심으로 그려진 크고 작은 동그라미들. 모두 중요한 사람들이에요. 없어선 안될 사람들도 있고요.
섣불리 관계를 정리하지 않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편안하게 대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인 것 같아요.
나는 나의 동심원을 그리며, 상대방도 역시 자신의 동심원을 그리며 살다가 간혹 지구와 달이 한 달에 두 번 가까이 만나듯이 한 달에 한 번, 일 년에 한 번 이렇게 만나면 좋지 않을까요.
원을 그리며 빙글빙글 돌아요. 서로 침범하지 않으며 거리를 잘 유지하며 열심히 잘 살다가 또 만나고.
좋잖아요, 정말 보고 싶을 때 만나는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