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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체육샘 Feb 02. 2023

아내와 운동하기-2일차

내 아내의 퍼포먼스

그래, 오늘은 소망탑이다.

아내를 위해 등산 스틱을 꺼냈다.

스틱을 사용해서 걷는 것을 노르딕 워킹이라 한다.

스틱을 사용하면 하체에만 가해지는 체중을 스틱과 팔을 통해 상체에 분산할 수 있고 상체 근육도 사용하게 되어 나름 걷는 것과 오늘 할 등산이 전신 운동이 된다.

오늘은 둘레길이 아니라 소망탑 방향으로  갔다. 계단이 많고 제법 가파르다. 아내는 첫 구간 계단부터 힘들어했다. 하지만 1일차 만큼은 아니었다. 힘들었지만 소망탑으로 오르고자하는 의지가 보였다고나 할까. 첫날의 극한의 당황스러움을 지나온 터라 나조차도 심리적으로 준비가 되어있었다.

물도 챙겼다. 1일차 아내의 정신교육 덕에 남편이 가져야 할 태도, 매너...같은 것도 함께 챙겼다. 기다려주었고 중간에 벤치가 나올 때마다 쉬어갔다. 올라갈 때 5번은 쉬었다.

쟈기야, 물 좀 마셔

아내는 힘이 들 때마다 스틱에 몸을 의지해서 허리를 숙였다. 누구나 힘들면 상체를 숙이고 숨을 쉰다. 딱히 배우지 않아도 몸이 그렇게 반응한다. 상체를 숙이는 쪽이 호흡이 더 잘되기 때문이다. 복식 호흡이 자연스럽게 이뤄지고 숨을 더 깊게 들이마실 수 있다. 네발로 다니는 동물들이 뛰고 나서 배를 헐떡이는 모습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인간은 언젠가부터 직립 보행을 하고 있지만 힘이 들면 몸을 숙여야한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 내 아내도 그것을 까먹지 않고 기억하고 있었다.


"쟈기야 얼마나 남았어?"

"이제 3분의 2정도 왔지. 조금만 더 가면 돼. 힘내 쟈기야!"


여보, 고마워

1일차의 잔소리가 고마움으로 변해있었다. 나만 했던 테니스, 배드민턴, 골프, 스키 같은 운동들은 사실 나를 위한 운동이었다. 혼자 운동을 하러 나간다는 것은 아내와의 단절을 의미했다. 혼자만 좋았지. 운동을 하면서 느끼는 것들을 아내와도 함께 느끼고 싶다고 생각만 했었지 행동으로 쉽게 옮기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 조금씩 실천을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손을 잡고 산으로 운동장으로 체육관으로 나가야지.


사실, 아내의 퍼포먼스는 내가 운동할 때의 그것을 훨씬 뛰어넘었다. 아이 둘을 출산했기 때문이다.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최대의 능력치 중에 하나가 출산아니겠는가? 그것도 제왕절개와 자연분만을 모두 경험한 여자다. 그랜드슬램이랄까. 내가 아무리 밖에서 깨작거려봐야 그것들을 능가할 수 없다는 것을 세삼 깨닫는다. 여자들은 위대한 존재다. 퍼포우먼스라고나 할까.


우여곡절 끝에 소망탑이 있는 봉우리에 도착했다. 아내의 입에서 나오는 감탄. 그녀는 '우와 우와'를 연발했고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낮은 산이었지만 나름 서울 시내가 한눈에 보였다. 미세먼지가 살짝 낀 것 같아 아쉬웠다.


날 좋을 때 다시 올라오자 쟈기야


혼자만 올라와서 보던 풍경을 아내와 공유할 수 있게되니 기분이 뭉클했다. 풍경도 찍었지만 평소에 잘 찍지 않는 부부 셀카도 찍었다. 사이가 좋아졌나.


인생이 계획대로 되나? 그냥 즉흥적으로 가는거지. 반대로 내려가서 밥먹자.


즉흥적인 아내 덕에 반대편으로 내려가 계획에도 없던 밥과 커피도 사먹었다. 거기부터는 주도하는 사람이 바꼈다.


다음에는 수영하러 가자.
작가의 이전글 학술지에 논문이 게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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