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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체육샘 Feb 01. 2023

아내와 운동하기-1일차

둘레길부터

집 뒷편에는 우면산(牛眠山)이 있다. 높이가 293m로 낮은 산이다.

소가 누워서 자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고 하여 우면산이다. 나와 아내는 둘 다 소띠다.

누워만 있던 소띠 아내를 일으켜 세워 우면산으로 이끌고 간 것은 산 명칭과의 역설이라 할 수 있다.

집에서 올라갔다가 내려오면 총 1시간 30분 정도가 소요된다. 빨리 올라갔다가 오면 1시간 정도.

하지만 이건 나의 경우였고 보통은 2시간 내외다.

정상에는 군부대가 있어서 접근이 불가하고 일반적으로 소망탑을 정상으로 보고 등산한다.

낮은 산이지만 다소 가파른 부분이 있다. 처음 올라갈 때 생각보다 힘들고 가파른 면이 있어 놀랐다. 그래서 아내와는 우선 둘레길만 걷기로 했다.

형촌마을 쪽 사면에서 출발하여 자연생태공원 방향으로 올랐다. 자연생태공원 입구를 지나자마자 아내가 가뿐 숨을 몰아쉬었다.


쟈기야 나 심장이 너무 빨리 뛰어.


본인도 놀랬겠지만 나도 놀랐다.

첫 째를 임신했을 때 만삭에 제주도 성산일출봉을 오르던 아내의 모습이 떠올랐다.

세월이 많이 지났지만 체력이 급격히 떨어진 아내의 모습을 보고 여러가지 감정이 들었다.

동네 낮은 산의 입구에서부터 헐떡이는 그녀를 보며 무언가 단단히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그녀의 몸에서는 김이 나고 있었고 이마는 땀에 젖어있었다.

둘레길도 걷지 못할 정도의 체력 밖에 남지 않은 아내를 보면서 머릿속이 복잡했다. 그런데 애잔한 마음과는 달리 나는 이미 체육교사가 수업시간에 할만한 잔소리를 아내에게 쏘아대고 있었다.


이래서 남편들이랑 운동을 안하는거야.
쟈기는 운동을 좋아하니까 그렇지.
애 둘 낳고 키운 것도 벅찬데 관리를 하고 싶었겠냐.
굳이 안해도 될 말을 꼭 그렇게 해야겠어?

아내의 반응을 예상했지만 입 속에 맴도는 말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극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긁어야겠다고 판단했다.


미안해, 그런데 남편이니까 이런 소리하지.
그리고 다 쟈기 생각해서 하는 말이고 그러니까 같이 왔잖아.
일부러 자극 좀 받으라고 그런거야.


초반에 실랑이를 벌이다가 본격적으로 산을 올라야 할 시점에는 내 말을 귀담아 들을 여유가 아내에게 없어졌다. 아마 자기 자신에 대한 실망, 떨어지는 자존감, 야속한 세월과 더 야속한 남편 등이 머릿 속에 맴돌지 않았을까.


어쨌든 힘든 고개를 넘어 내리막으로 들어섰을 때부터는 아내와 손을 잡고 내려왔다. 올라갈 때와 달리 말수가 많아진 아내는 올라오면서 내가 했던 말들이 왜 잘못되었는지 조곤조곤 설명해주었다. 나의 잔소리 레파토리가 비슷하듯 그녀의 잔소리 답장도 늘 일관적이다. 그래도 어쨌든 둘레길을 돌아 집에 도착했다.


내일은 소망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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