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 집으로 가는 길에 ‘제23회 순천 남승룡 마라톤대회’ 현수막을 봤다. 2023년 11월 11일 순천 팔마종합운동장에서 개회식과 함께 열릴 예정이라 한다. 작년엔 ‘이태원 참사 애도 기간’으로 개최되지 않았었다. 나는 그동안 잊고 있었던 달리는 즐거움에 입술 양 끝이 실룩거렸다. 덩달아 운전대를 잡은 손과 두 다리도 들썩였다.
21년 전인 2002년 막내 여동생과 난 달리기에 흠뻑 빠졌다. 우리는 매일 새벽 5시 동네 헬스클럽 러닝머신에서 10km를 달렸다. 경쾌한 음악과 함께 아무 생각 없이 달리는 기분은, 해봐야 알 수 있는 즐거움이고 행복이다. 새벽 달리기 후 ‘냉커피’로 힘듦과 땀을 식히고 걷는 발걸음은 가볍고 경쾌했다. 달리기까지 하고 출근한 탓인지 가끔 근무 중 졸기도 했다. 퇴근 후에도 우린 10km를 달렸다. 새벽엔 건강을 위한 운동이었고, 퇴근 후는 순전히 ‘생맥주’를 마시기 위해서였다. 목마름을 단숨에 해결해 주는 시원한 ‘생맥주’가 좋았다. 동생과 난 식도를 타고 넘어가는 그 시원함에 하루를 잘 마쳤다는 기분이 들었다. 날마다 우린 달리고 마시고를 반복했다.
우린 그렇게 반복하다, 마라톤대회에 참가해 보기로 했다. 그해 10월 ‘제2회 곡성 섬진강 마라톤대회’에서 10km를 달렸다. 러닝머신에서 달릴 땐 지루했지만, 바람을 맞으며 처음 본 사람들과 함께한 마라톤은 지루하지 않았다. 동생과 난 첫 마라톤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뒀다. 내친김에 한 달 뒤인 11월 ‘제2회 순천 남승룡 마라톤대회’까지 참가했다. 그 후 2004년 11월 ‘제4회 순천 남승룡 마라톤대회’에서는 막냇동생과 난 21.0975km인 하프 코스, 아버지와 둘째 동생, 둘째 동생 큰아들은 5km를 완주했다. 흥분한 모습 그대로 우린 기념 촬영을 했다. 74세던 아버진 울음 섞인 목소리로 외쳤다.
“난 열심히 앞만 보고 사느라 동천이 이렇게 변한 줄도 몰랐다. 날씨도 좋고 응원하는 사람들도 많아 기분이 좋다. 딸 셋과 손자까지 달린 오늘이 바로 잔칫날이다!”
그 말에 아들과 함께했던 둘째 동생은 맞장구치며 선선한 바람처럼 엉덩이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마라톤 맛을 본 그들은 다른 대회에도 참가하고자 했다.
하지만 이런저런 일들이 겹치면서 더 이상 달리기를 못 했다. 막냇동생과 난 출근 후 밀려오는 피곤함에 새벽 운동 대신 퇴근 후에만 달렸다. 시원한 ‘생맥주’도 계속 함께 했다. 2005년 ‘제3회 광양항 마라톤대회’를 마지막으로 나는 무릎을 다쳐 달리기를 멈췄다. 그동안 한 번씩 달리고 싶은 욕망이 꿈틀댔지만 무릎이 허락하지 않았다. 벌써 20년 전 이야기다.
오늘 퇴근길 현수막을 본 후 내 무릎 상태를 무시한 채 손과 발이 들썩거린 것이다. 난 막냇동생에게 전화했다.
“옥아! 남승룡 마라톤대회 현수막이 붙어있더라. 아! 너랑 달리던 시절이 그립다.”
“오~ 몰랐구나! 이번에 난 친구들 7명과 참가하잖소. 50대 힘을 한번 보여주려고 우리가 뭉쳤지. 내 등번호는 제한 없음이야. 멋지지! 내가 언니 몫까지 뛸 테니까 기대해 봐.”
난 부러움과 달리고 싶으나 달릴 수 없는 속상한 마음을 애써 누르며 대답했다.
“마라톤 끝나고 너희 친구들이랑 시원하게 생맥주나 한잔하자. 내가 살게”
뭉게구름과 푸른 하늘, 햇살이 절묘하게 어울리는 이런 날 나도 달리고 싶다. 바람에 휘날릴 머리카락과 콧잔등 위에서 왔다 갔다 하는 안경을 매만지던 게 떠오른다. 운동화 끈 단단히 묶고 시작 총소리에 마라톤 선수처럼 출발하던 내 모습이 그립다. 아니, 어쩌면 돌아가신 아버지와 지금보다 젊었던 시절의 내 모습 그리고 시원한 생맥주가 그리운 건 아닐까? 나는 달리는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뜨거워졌다. 이런 마음을 몰라주는 오른쪽 무릎이 야속하다. 괜스레 브레이크를 밟고 있던 오른쪽 허벅지를 ‘툭’ 한 대 때렸다. 뜨거워진 가슴을 식히며, 운전대를 꽉 쥔 채 ‘에잇! 오늘 저녁엔 맥주나 한잔해야겠다.’라고 중얼거리며 집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