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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뱃살공주 Nov 06. 2023

달리기와 생맥주

 퇴근 후집으로 가는 길에 23회 순천 남승룡 마라톤대회’ 현수막을 봤다. 2023년 11월 11일 순천 팔마종합운동장에서 개회식과 함께 열릴 예정이라 한다작년엔 이태원 참사 애도 기간으로 개최되지 않았었다나는 그동안 잊고 있었던 달리는 즐거움에 입술 양 끝이 실룩거렸다덩달아 운전대를 잡은 손과 두 다리도 들썩였다.  

   

 21년 전인 2002년 막내 여동생과 난 달리기에 흠뻑 빠졌다우리는 매일 새벽 5시 동네 헬스클럽 러닝머신에서 10km를 달렸다경쾌한 음악과 함께 아무 생각 없이 달리는 기분은해봐야 알 수 있는 즐거움이고 행복이다새벽 달리기 후 냉커피로 힘듦과 땀을 식히고 걷는 발걸음은 가볍고 경쾌했다달리기까지 하고 출근한 탓인지 가끔 근무 중 졸기도 했다퇴근 후에도 우린 10km를 달렸다새벽엔 건강을 위한 운동이었고퇴근 후는 순전히 생맥주를 마시기 위해서였다목마름을 단숨에 해결해 주는 시원한 생맥주가 좋았다동생과 난 식도를 타고 넘어가는 그 시원함에 하루를 잘 마쳤다는 기분이 들었다날마다 우린 달리고 마시고를 반복했다.

 우린 그렇게 반복하다마라톤대회에 참가해 보기로 했다그해 10월 2회 곡성 섬진강 마라톤대회에서 10km를 달렸다러닝머신에서 달릴 땐 지루했지만바람을 맞으며 처음 본 사람들과 함께한 마라톤은 지루하지 않았다동생과 난 첫 마라톤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뒀다내친김에 한 달 뒤인 11월 2회 순천 남승룡 마라톤대회까지 참가했다그 후 2004년 11월 4회 순천 남승룡 마라톤대회에서는 막냇동생과 난 21.0975km인 하프 코스아버지와 둘째 동생둘째 동생 큰아들은 5km를 완주했다흥분한 모습 그대로 우린 기념 촬영을 했다. 74세던 아버진 울음 섞인 목소리로 외쳤다

난 열심히 앞만 보고 사느라 동천이 이렇게 변한 줄도 몰랐다날씨도 좋고 응원하는 사람들도 많아 기분이 좋다딸 셋과 손자까지 달린 오늘이 바로 잔칫날이다!”

그 말에 아들과 함께했던 둘째 동생은 맞장구치며 선선한 바람처럼 엉덩이를 살랑살랑 흔들었다마라톤 맛을 본 그들은 다른 대회에도 참가하고자 했다.

하지만 이런저런 일들이 겹치면서 더 이상 달리기를 못 했다막냇동생과 난 출근 후 밀려오는 피곤함에 새벽 운동 대신 퇴근 후에만 달렸다시원한 생맥주도 계속 함께 했다. 2005년 3회 광양항 마라톤대회를 마지막으로 나는 무릎을 다쳐 달리기를 멈췄다그동안 한 번씩 달리고 싶은 욕망이 꿈틀댔지만 무릎이 허락하지 않았다벌써 20년 전 이야기다.     


 오늘 퇴근길 현수막을 본 후 내 무릎 상태를 무시한 채 손과 발이 들썩거린 것이다난 막냇동생에게 전화했다.

옥아남승룡 마라톤대회 현수막이 붙어있더라너랑 달리던 시절이 그립다.”

몰랐구나이번에 난 친구들 7명과 참가하잖소. 50대 힘을 한번 보여주려고 우리가 뭉쳤지내 등번호는 제한 없음이야멋지지내가 언니 몫까지 뛸 테니까 기대해 봐.” 

난 부러움과 달리고 싶으나 달릴 수 없는 속상한 마음을 애써 누르며 대답했다.

마라톤 끝나고 너희 친구들이랑 시원하게 생맥주나 한잔하자내가 살게

 뭉게구름과 푸른 하늘햇살이 절묘하게 어울리는 이런 날 나도 달리고 싶다바람에 휘날릴 머리카락과 콧잔등 위에서 왔다 갔다 하는 안경을 매만지던 게 떠오른다운동화 끈 단단히 묶고 시작 총소리에 마라톤 선수처럼 출발하던 내 모습이 그립다아니어쩌면 돌아가신 아버지와 지금보다 젊었던 시절의 내 모습 그리고 시원한 생맥주가 그리운 건 아닐까나는 달리는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뜨거워졌다이런 마음을 몰라주는 오른쪽 무릎이 야속하다괜스레 브레이크를 밟고 있던 오른쪽 허벅지를 ’ 한 대 때렸다뜨거워진 가슴을 식히며운전대를 꽉 쥔 채 에잇오늘 저녁엔 맥주나 한잔해야겠다.’라고 중얼거리며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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