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배추

나를 웃긴 양배추

by 준용

어제저녁에 수영을 격하게 했다. 거리로는 1km 도 채 안되었지만 킥을 400m 하고 스프린트를 두 번 반복했다. 팀프로젝트 때문에 회의를 하고 지친 상태에서 저녁도 먹지 않고 그렇게 수영을 해댔으니 끝나고 기진맥진하였다. 저녁을 먹을 수 있는 곳이 서브웨이 밖에 없어서 토핑을 잔뜩 추가하며 정말 맛있게 먹었으나, 오른쪽 아래 어금니 뒤에 무언가 단단히 꼈다.


작년부터 오른쪽 아래 잇몸이 간간히 부어오르며 아파서 약 2달 전에 치과에 갔다. 알고 있었지만 역시나 사랑니 때문이었다. 염증이 보일 정도인데 그동안 안 아팠냐며 치과의사 선생님이 나에게 물어볼 정도였다. 어쨌든 발치를 잘 마치고 고통의 회복기를 거쳐 지금은 아주 깊은 협곡 모양의 틈이 생긴 상태이다. 해당 부분은 칫솔도 들어가지 않아서 닦을 수 없는 상태이며, 치과에서는 이걸 쓰라며 주사기에 끝이 구부러진 금속관을 연결한 기구를 주었다. 양치하고 주사기에 물을 채워 해당 부분을 청소하란다.


어떻게 매번 귀찮게 주사기를 들고 다니며 청소를 하는가. 수압을 이용한 거라면 입에 물을 머금고 힘차게 우물우물하는 것도 똑같지 않나 싶어 음식물이 낄 때마다 열심히 우물우물 입안의 압력을 조절하였다. 대개는 잘 나왔다. 종종 심하게 끼어 나오지 않는 경우에도 열심히 우물우물하거나 다음 식사를 하고 양치를 할 때면 잘 나왔다.


하지만 어제는 상황이 달랐다. 아무리 헹구고 입안의 물을 힘차게 가글 하여도 이빨 사이에 낀 그것은 나올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 귀찮게 여기던 주사기가 생각났지만 본가에 두고 왔기에 가져올 수도 없었다. 늦은 시간이었고, 소화도 시킬 겸 과제를 진행하고 프로젝트 제안서를 작성하며 잠시 잊어보려 노력했다. 혀가 가만히 있지를 않는다. 결국 신경 쓰였던 이물질 빼내기를 다시 도전하였다. 이대로 자면 최소 7시간 이상은 이물질이 이빨 사이에서 부패하며 세균이 번식할 것 같다는 생각에 열심히 화장실에서 우물우물 가글을 했다. 어느덧 시간은 새벽 1시가 되어, 특단의 조치로 아주 얇은 빨대 (바나나우유 노란 빨대)를 가지고 도전했으나 실패하였다. 차선책으로 칫솔을 잘 컨트롤해서 틈 사이에 넣고 닦아보려 했으나 그것도 잇몸에 상처만 내고 실패하였다. 또 다른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며 칫솔질을 하던 찰나 약간의 피맛이 나며 칫솔이 붉게 변하자 얼른 입을 헹구고 그만두었다.


아침에 일어나서도 여전히 신경 쓰여 차라리 치과에 가서 빼자는 결심을 하고 아침을 먹었다. 치과까지 가는 버스의 배차 시간이 많이 남아 있는 것을 확인하고 잠시 도서관에 앉아서 내 할 일을 하며 기다리기로 했다. 물부터 한 잔 마시고 오늘의 계획을 점검하고, 칫솔에 치약을 발라 화장실로 이동한다.


평소와 같이 양치를 하고 헹구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젯밤과는 느낌이 달랐다. 어금니 뒤쪽의 이물질이 여전히 혀로 느껴지지만 헹굴 때마다 이물질의 방향이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혹시나 싶어서 열심히 헹구어 보았다. 혀와 입 안쪽의 근육을 열심히 쓰는 것도 생각보다 힘든 운동이었다. 어느새 시원한 물이 이빨과 잇몸 사이를 통과하며 쾌감이 느껴졌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시린 느낌. 잇몸과 이빨 사이의 틈으로 물이 지나가는 느낌이 들며 나의 골칫덩이가 사라졌다는 것에 정말 기뻤다. 골칫덩이는 보라색 양배추였다.


귀찮게 치과를 가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과, 신경이 쓰였던 오른쪽 아래 어금니 뒤쪽의 이물감이 사라졌다는 느낌은 거울 속의 나에게 절로 미소를 띠게 만들었다. 점점 미소가 커지며 실실 웃음이 새어 나오지만 화장실로 들어온 다른 사람의 눈치가 보여 애써 웃음을 참아본다. 양배추가 나를 웃기네ㅋ...

keyword
작가의 이전글'나'라는 착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