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이수 Oct 24. 2021

'상선약수' 물의 리더십이란?

노자와 한나라 고조 유방 이야기

상선약수 

上善若水 

"가장 좋은 것은 물과 같다."


수선리만물이부쟁, 처중인지소오, 고기어도. 

水善利萬物而不爭, 處衆人之所惡, 故幾於道.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며, 사람들이 싫어하는 것에 처하며, 그러므로 도에 이른다."


거선지, 심선연, 여선인, 언선신, 정선치, 사선능, 동선시

居善地, 心善淵, 與善仁, 言善信, 正善治, 事善能, 動善時

"땅에 거하며, 연못처럼 그윽한 마음으로, 어질게 더불며, 

말은 신엄있게 하고, 바르게 다스리며, 능히 잘 하며, 시의에 맞게 움직인다."


(노자 8장)

2021년 서천 국립생태원 연못


우리는 자신은 물론, 우리의 아이들이 리더십이 있는 아이로 자라, 이왕이면 리더가 되길 원한다. 하지만 리더십이 무엇인지, 그것의 본질은 무엇인지 잘 모르는 것 같다. 


사실 노자의 도덕경은 '리더십 지침서' 같은 책이다. 당시 사회를 이끄는 지도자이며, '성인'으로 지칭되는 리더가 이해하고 지향해야 하는 세상의 이치를 담은 수준 높은 '정치 철학서'이기 때문이다. 읽어보면 단순한 무위 자연을 읊은 시가 절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소 형이상학적인 개념들과 표현들이 많지만, 리더의 본질과 리더가 깨우쳐야할 이치를 여러 비유들을 들어 최대한 쉽게 설명하고 있다. 


그 중에서 많이 회자되는 것이 "상선약수"라는 구절이다. 가장 좋은 것은 마치 물과 같다라는 것이다. 비유적인 표현이다. 도의 경지, 혹은 그 경지에 이른 성인/리더의 모습은 마치 물과 같은 모습, 즉 본질을 띈다는 것이다. 물을 들여다 보자. 물은 아래로 아래로 흘러 낮고, 사람들이 싫어하는 곳까지도 향한다. 그리고 만물을 보듬어 적시고 모두를 생하게 돕는다. 그리고 물이 모여 그윽한 못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차갑고 맑음으로 세상을 정화하고, 거세게 흘러 세상을 또 씻어내기도 한다. 그리고는 결국 가장 낮은 곳에 다다라 바다가 되어 세상 모든 것을 넓게 품는다. 이것이 물의 이치이며, 최상의 도이며, 성인/리더가 지향해야 할 모습이라는 것이다.        


동양 고전 인물 중에서 리더십 인물로 가장 많이 회자되는 인물 또한 초한쟁패 시대에 그 유명한 한고조 유방이다. 그는 진시황제 이후에 난립한 제후국들 사이에서 천하제일 강자였던 항우를 결국은 이기고, 한나라를 건국한 성공한 리더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그에게도 '상선약수' 즉, '물'과 같은 리더십이 있었을까? 


일단, 사마천의 <사기> 고조본기에 유방은 패현 풍읍 사람으로 학문을 좋아하지 않았고 다른 사람처럼 농사일을 하지 않아 겨우 지방 말단 관리가 되어 요역을 담당하는 일을 했다. 하지만 '성품이 사람을 좋아하며, 너그러운 편이고, 남을 위해주길 잘하며, 마음 씀씀이가 옹졸하지 않았다" 전한다. 또 한번은 함양에 요역이 있어 갔다가 진시황제의 행차를 보고 ‘응당 사내라면 저래야지’ 라고 했다는 걸 보면 리더가 되고픈 야심과 욕망이 있었던 것 같다. 또 가난한 평민이지만 돈 한 푼 없이 어느 자리에 가서도 기죽지 않았는 뻔뻔함도 보인다. '상선약수..여선인'이라. 사람을 좋아하고 더불어 함께 하기를 잘하는 면이 물의 모습과 닮아 있다. 


또, 항우는 전장에서 힘으로 제압하는 카리스마가 대단했다 하지만, 말의 힘으로는 유방을 이길 수가 없었다. 특히 항우 앞에서 유방 자신이 천하를 재패해야 하는 명분을 논리적으로 잘 말하자 민심은 바로 유방에게 흘렀다.  이에 화가 난 항우는 철퇴를 던져 유방의 가슴에 맞기도 할 정도로 항우는 말로 유방을 당할 수 없었다. "상선약수_언선신"이라. 말 속에 차가운 물과 같은 신엄이 느껴지는 리더의 모습이다.  


그리고 유방의 리더십을 이야기할 때 가장 많이 언급되는 점이 그의 '용인술'이다. 그에게는 항우와 다르게,  소하, 장량, 진평, 한신, 조참, 하우영, 번쾌 등 여러 많은 각기 다른 능력있는 신하들이 곁에서 그를 조력해주었다라는 점이다. 이것이 유방의 리더십인데,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을까. 항우가 함양을 차지한 뒤, 유방을 오지인 한중 지역 왕으로 명해 보낸다. 이에 파촉지역으로 들어갈 때는 유방은 장량의 말을 듣는다. 항우 항왕의 의심을 없애기 위해 함양으로 되돌아 가는 절벽 외길인 잔도를 태워 버린 것이다. 그리고  소하의 절대적인 추천을 믿고, 대장군으로 추대한 한신의 유세를 듣고는 또 과감히 초한 전쟁에 돌입한다. 그리고 한나라가 초나라가 접전을 할 때는 장량과 진평의 이간계 계책도 기민하게 잘 선택해서 실행시킨다. 즉 중요한 순간에 부하인건 원로이건 누구이든 그들의 조언을 잘 듣고, 때마다 옳은 선택을 해서 승리한 것이다. 역시 리더는 정확하고 빠른 판단력이 중요한 것 같다. 이는 '상선약수..동선시'와 일맥한다. 시의적절한 움직임, 이것 또한 물과 같은 리더의 모습이다. 


반면에 '동선시'를 이루지 못한 리더의 모습은 패배한 항우와 한신에게서 찾아볼 수도 있다. 항우는 자신의 책사 범증이 홍문관에서 과감하게 유방을 죽여야 한다고 했지만 뇌물에 정신이 팔려 살려주었다. 한신도 자신의 책사 괴통이 한신을 위한 천하의 묘책 '삼분지계' 계책을 냈지만, 냉정하게 판단하지 못해서, 결국 토사구팽 당했다. 역사적으로 보면 이들은 절대절명의 순간에 그른 선택을 한 것이다. 때로는 물과 같은 냉정함이 리더에게 필요한 것이다. 


물론 유방도 여러 약점이 있었겠지만, 몇가지 역사 이야기들로 보았을 때, 그는 사람과 더불기를 잘 하며, 말에 신엄이 있고, 시의적절한 판단력의 소유자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제 나는 골목대장 같은 나의 어린 아들에게 몇천년 전부터 전해진 노자가 전한 '물의 리더십'과 '유방의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이전 02화 비어 있어야 쓰임이 있고, 채울 수 없는 것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