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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이수 Oct 24. 2021

비어 있어야 쓰임이 있고, 채울 수 없는 것은?

노자와 한안국 이야기


비워야 그 쓰임이 있고 결코 채울 수 없는 것은

도충이용지 혹불영.

연혜! 사만물지종.

좌기예, 해기분, 화기광, 동기진.

담혜! 사혹존.

道冲而用之, 或不盈.

淵兮, 似萬物之宗.

挫其銳, 解其紛, 和其光, 同其塵.

湛兮 似或存.


"도는 비어있어 그 쓰임이 있고, 혹 가득차지 않는 듯 하다. 그윽하도다. 만물의 으뜸인 듯 하다.

그 날카로움을 무디게 하고, 그 얽힘을 풀며, 그 빛을 조화롭게 하며, 그 티끌을 고르게 한다.

맑구나. 마치 존재하는 듯하다. "


(노자 4장)








세상 만물 중에 비어 있어 그 쓰임이 있으며, 채워지지 않는 것은 무엇일까? 답은 사람의 마음 아닐까. 그런 빈 마음으로  임하면 날카로움을 부드럽게 하고, 얽힘을 풀고, 강한 빛을 조화롭게 하며, 튀어나온 티끌을 고르게 할 수 있어 그윽하고 맑음이 느껴진다는 노자의 도덕경 내용이다.   

  

한경제에서 한무제 시대에 호는 장유이며 양나라 출신인 한안국이라는 인물이 있었다. 그는 두태후의 총애를 많이 받았던 효경제의 막내 동생인 양나라 효왕의 중대부 신하이다. 흔히 위기가 기회라는 말처럼 한나라 위기였던 오초7국의 난이 그에게는 이름을 알리는 기회로 작용했다. 양나라는 지리적으로 중원에 위치하고 있어서 동쪽 오나라 등이 서쪽 수도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지나가야 하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다. 그래서 서쪽으로 진군해 가려는 반란군인 오군을 막기 위해 양나라 효왕은 한안국을 장수로 삼아 지휘하게 했고 다행히 잘 방어해서 오초 난은 진압되었고 한안국은 공을 세울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이후 조정에서 그를 신뢰하게 되었다.


그가 다시 명예를 얻게 된 기회가 또 있었다. 대체로 막내아들이 버릇없고 철없는 것처럼 양효왕 또한 두태후의 막내아들로 마치 자신이 천자인양 오만하고 사치스런 모습을 자주 보이자, 효경제는 양효왕을 못마땅해 했고 두태후도 이를 자주 문책하고 황실 가족의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이에 양나라 사신으로 조정에 간 한안국은 책망하는 두태후가 만나주지 않자, 효경제의 누이인 대장공주를 대신 만나 양효왕의 철없는 행동들을 이해시키고 용서를 구하는 말을 ‘울면서’까지 전했다. 그는 말한다. 양효왕은 아버지와 형이 황제이기에 때문에 자라서면서 본 것이 다르다. 그래서 다른 제후들보다 더 과시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는 것이지만, 그것은 황실의 권위를 보이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이며, 오초의 난 때 양나라가 기여한 점을 얘기하며 황실 가족으로서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으니 부족해도 어미와 형으로서 용서해 달라 한다. 이에 효경제는 그의 말에 깊게 뉘우치게 되었고 형제가 서로 돕지 못하여 태후께 걱정을 끼쳤다며 두태후에게 사죄하였다. 한안국은 이 일로 조정의 큰 신뢰를 얻고 후한 상도 받았다.


이렇듯 자신이 모시는 왕과 조정의 평화를 위해 울면서까지 ‘갈등을 해결하는’ 해결사의 일을 한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의로운 신하의 모습이며 ‘해기분’의 모습이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갈등을 해결하는 일은 절대로 쉽지 않다. 그것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안위와 출세에 대한 욕심보다, 불화 원인에 대한 정확한 해석과 신하로서 사태를 해결하고픈 의로운 마음이 있었기 때문 아닐까.


하지만 양효왕이 죽자, 그는 관직에 대한 욕심에서인지, 당시 실세인 왕태후의 측근이 전분에게 뇌물 오백금을 주었다. 아무튼 그의 명성을 알고 있었기에 한무제는 그를 도위로 임명하였다. 이 때 흉노가 화친을 요청해오자 조정은 논의를 하게 되었는데, 당시 연나라 사람으로 오래 군사를 맡아오던 왕희는 한나라를 무시하는 흉노에게 위세를 보이자고 했다. 하지만 한안국은 선왕들이 아무리 분해도 흉노와 화친한 이유는 그들을 정벌해봤자 얻는 게 적었고 다스리기 힘들었기에 실리적으로 판단해서 화친을 주장한 것임을 주장했다. 하지만 이미 안정기에 들어선 한나라의 무제는 이미 정벌 쪽에 마음이 가있었고 결국 왕희의 유인책을 선택했다. 그러나 왕희의 유인책을 알아차린 흉노는 도망갔고 왕희는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고 죽어야 했다. 이렇게 옳은 판단력을 보여줬던 한안국은 어사대부로 승진하였고  더욱 유명하게 되었다. 이때 그는 조정에 훌륭한 인재들을 많이 추천하기도 했다. 또, 당시 외척 실세인 전분이 승상에 임한 지 5년만에 죽자, 무제는 한안국을 그를 이어 다음 승상으로 임명하려 하려 했다. 드디어 한안국은 지방 신하에서 조정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그는 마침 마차에서 떨어져 다리를 심하게 다치는 부상을 당하게 되고 다리를 절게 되자, 무제는 그를 승상으로 임명하지 않았다.

 

그 후 병이 낫자 무제는 흉노와 다시 전쟁을 벌이던 상황이였기 때문에 그를 다시 변경지역에 도위로 임명하고 싸우게 한다. 문사이고 군자인 한안국을 다시 전장으로 돌리자 패전하게 되는 상황이 되었고, 무제는 그를 책망하고 지방 호군으로 좌천시킨다. 이에 그는 뜨는 별인 위청 대장군과 달리 지는 별이 되어 버리고 만다. 그러다 결국 울적한 마음이 커지고 마음을 잡지 못하고 한안국은 피를 토하고 죽었다 한다.


반고와 사마천 모두 한안국 그에 대해 장자이며 군자였던 그가 마지막 순간에 추락하여 ‘슬픈 운명’이라 평한다.  그는 의로운 언변과 용기 있는 직언으로 세상을 이롭게 하고 그로 인해 명성을 얻었던 과거의 일들이 있었는데, 비록 최고의 자리인 승상이 못 되었고, 말년에 공도 세우지 못했더라도, 신하로서 만족할 순 없었을까 안타깝다.


역시나 마음이 문제다. 다 채워지지 않는 그 마음이 그를 슬픈운명으로 만든 것 아닐까. 

이럴때 떠오르는 노자의 말씀은  ‘혹불영’이라. 사람의 마음은 절대 채워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더 채우려 하면 할수록 슬퍼지는 것임을 말이다.  그리고 ‘도충이용지’. 그 마음이 비어 그윽해질 때 쓰일 수 있다는 것을 나는 한장유의 슬픈 운명을 통해 배운다.


비록 채워지지는 마음 때문에 사마천과 반고는 한안국을 '슬픈 운명'으로 기록했지만, 그래도 나는 한안국을 사심없는 마음으로 ‘해기분’의 경지를 보여준 인물로도 기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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