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와 전숙 이야기
위무위 즉무불치
爲無爲 則無不治
"함이 없이 하면 다스려지지 않음이 없다"
(노자 3장)
9살 아들이 등하교를 같이 하는 한 친구와 종종 다투곤 했다. 어느날 저녁 그 친구의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우리 아이가 그 친구 아이를 엘리베이터를 못타게 밀었다는 자신의 아이의 이야기를 듣고 그것은 잘못임을 얘기하기 위해 전화했다 한다. 나는 의아했다. 그 엄마의 방식대로 옳고 그름을 따지고 원리원칙을 가르치는 것이 최선일까? 아이들 얘기만 듣고 옳고 그름을 우리가 정확히 판단할 수 있을까? 이 상황에서 원리원칙을 가르치는 것이 제일 중요한가? 꾸짖지 말고 자연스럽게 아이들이 깨닫고 해결해 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방법은 뭘까? 그 엄마는 변호사일을 하고 있다. 나는 지금 노자철학을 공부하고 있다. 우린 다른 해결 방식을 생각하고 있다.
한나라 초기에 조나라 출신의 전숙(田叔)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자기가 모시던 조나라 왕 장오라는 사람이 누명을 쓰자 함께 멸족을 당할 수 있음에도 왕을 모시는 신하로서 자진해서 왕과 함께 체포되어 압송되었다. 그의 의로움과 바른 행실을 눈여겨 본 한고조 유방은 그를 한나라 지방군수로 썻다. 당시 효경제 때 황제의 막내동생인 양나라 효왕이 어리석어 효경제에게 직언을 하던 신하 승상 원앙을 주살한 일이 벌어졌다.
이에 효경제는 이에 대한 진상조사를 의로운 전숙에게 맞겼다. 전숙은 조사 후 왕에게 이렇게 얘기한다.
“더 이상 이 일을 규명하지 마십시요. 이 일을 만약 법대로 처리하면 양효왕은 사형되어야 하고 그러면 양효왕과 경제의 친母인 두태후에게 너무나 큰 고통을 안겨주게 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법대로 못한다면, 나라의 법치를 세우는데 문제가 될 것입니다." 경제는 이러한 전숙의 사려 깊은 간언에 감탄했고, 그를 노나라 재상으로 승진시켰다. 전숙의 이야기를 통해서 시시비비를 따져 밝혀 법대로 처리하는 것이 능사가 아님을 다시 배운다.
그럼, 이번 아이들의 다툼에 엄마로서 나는 어떻게 해야할까? 먼저, 나와 그 아이의 엄마가 공통적으로 원하는 부분은 이것이다. 그것은, 아이들이 상처입지 않는 것이고, 다시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는 것이고, 엄마로서 아이들을 도와줄 가장 좋은 방법을 찾고 싶은 것이다. 문제는 그 방법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옳고 그름을 따지는 방식은, 우리가 원치 않음에도 결과적으로 모두 감정의 상처를 받기 쉽다. 왜냐하면 아이들은 아직 어리기 때문에 자기 기억의 단편만을 엄마에게 이야기 할 것이고, 자기 방어적 기제로 사실을 왜곡해서 엄마에게 얘기 하기 때문에 누구의 잘잘못을 정확히 가를 수 없어 싸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녀석들은 이미 9살인데 친구랑 같이 엘리베이터를 사이좋게 타야한다는 규칙이나 규율은 이미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그런 행동을 했을 때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 전에 어떤 일이 있거나 어떤 감정적 오해나 마찰이 있었는지를 살펴봐야 근본적으로 이 문제의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 친구 엄마에게 제안했다. 아이들을 위해서, 아이들이 스스로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할 수 있도록 엄마들이 각자 아이들과 더 대화해보고, 한번 기다려 보자고 했다. 다행히 그 이후로 녀석들은 더이상 다투지 않고 그럭저럭 같이 학교를 잘 다니고 있다.
이런 방식이 노자의 '위무위 즉무불치', 즉 '함이 없는 함'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