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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모로코

5-3. 메르주가

by WPE

언덕 밑에 사람들이 한둘 모여드는 게 보였다. 동행들이 이제야 나를 발견한 모양이었다. 그들도 언덕을 올라가자고 하는 소리가 귀에 들렸다. 내면에 젖어있던 시간에서 현실로 돌아올 시간이 된 것이었다.


그들도 모래 언덕을 오르기 시작했고 빠른 속도로 뒤를 쫓아왔다. 하지만 역시 거센 바람을 이기기 어려웠던지 내 근처에 오자 하나둘 주저앉았다. 흩날리는 모래에 눈을 뜨기 힘듦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내려가자는 말을 하지 않았다. 거대한 사막에 비하면 아주 작은 모래 언덕 하나도 제대로 못 올라가는 사람이지만 무언가 도전하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모두 함께 힘을 내어 다시 정상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결국 끝이 보이지 않는 언덕 오르기를 포기하고 하산을 결정했다.




"미끄럼틀처럼 타고 내려갈 수 있지 않을까요?"




말이 끝나자마자 붉은 물결이 튀었다. 말라가에서 먼저 마주쳤던 동행이 언덕을 미끄러져 내려갔다. 거센 모래바람을 거슬러 올라왔던 것과 다르게 이를 타고 내려가는 길은 한없이 가볍고 수월해 보였다. 수많은 생각이 필요 없는 몸 움직임 놀이는 무겁고 잘 사라지지 않는 존재적 고민을 무색하게 날릴 정도의 힘을 가졌다. 얼른 뒤따라 언덕 아래로 몸을 던졌다. 바람의 도움으로 내려가는 속도가 점점 더 빨라졌다.



비록 모래와 뒤엉켜 몰꼴이 엉망이었지만 즐거움을 참지 못해 웃음이 터졌다. 어느새 모두 미끄럼 놀이에 푹 빠져 한참을 언덕을 오르고 내려오기를 반복했다.







그날 밤은 사막에서 보내는 마지막 밤이었다. 마지막 밤이라 그런지 바로 잠들기는 아쉬워서 다들 옹기종기 모여 대화를 나누는데 가장 어린 막내가 새로운 대화 주제를 꺼냈다.



"혹시 제가 하고 있는 작은 프로젝트에 같이 참여해 주실 수 있나요? '행복'을 주제로 사람들이랑 인터뷰 한 내용을 개인적으로 정리하고 있거든요. 같이 얘기해 보면 의미도 있고 재밌을 것 같아서요."



"못할 것 없죠. 그런데 왜 이걸 시작하게 된 거예요?"



"제 꿈이 기자거든요. 그래서 사람들을 만나서 인터뷰하고 그 내용을 정리해두고 있어요. 의미도 있고 실력을 기를 수 있고 혹시 취업할 때도 도움이 될 수도 있잖아요. “



그리고 그녀는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분위기를 좀 더 편안하게 하고 싶어서 그러는데, 혹시 호칭을 언니, 오빠로 불러도 될까요?"



"편안게 하세요."



"그럼 먼저 오빠, 오빠에게 행복은 무엇이에요?"



나와 함께 쉐프샤우엔으로 온, 막 군대를 제대하고 온 동행이 입을 열었다.



"저한테는 가족이 행복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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