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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PE Nov 18. 2024

5. 모로코

5-1. 메르주가

"어머 어머, 여기서 다시 보게 되네. 여행 잘하고 있었죠?"



"네. 별 탈 없이 무사하게 지냈어요. 다시 보게 될 줄 몰랐는데 너무 신기해요"



말라가 숙소에서 퇴실할 때 마주쳤던, 맞은편 혼숙 도미토리에서 나오셨던 분이었다. 모로코에서 마주치게 될 줄 상상도 못 했다. 그분을 포함한 네 분 그리고 우리 두 명이 만나 여섯 명이 되었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니 분위기도 사뭇 달라졌다. 나는 딱딱하게만 여겼던 동행의 말이 뭐가 웃기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말에 항상 웃음이 터지는 사람 덕분에 동행과 나 사이에 어색한 긴장감은 많이 누그러졌다.  밝고 귀엽게 항상 다른 사람들을 챙기는 사람, 말은 없지만 푸근한 인상으로 편안함을 만드는 사람..... 다들 서로를 배려하는 분들이라 함께 동행하는데 큰 무리는 없었다.



그러나 알게 모르게 지쳐갔다. 모로코에서 우리의 돈 많은 관광객일 여겨질 뿐이라 숙소를 잡을 때나 물건을 사야 할 때는 무조건 흥정해야만 했다. 사막투어를 하러 메르주가에 도착했을 때 일이다. 투어를 떠나기 전에 머무를 숙소로 사람들이 주로 가는 괜찮고 가격이 좀 있는 숙소 대신 그 옆에 있는 이름 없는 숙소에 가보기로 했다. 도착해 보니 우리 외에 다른 손님들은 보이지 않았다. 다른 이들은 돈을 좀 더 내더라도 쾌적한 숙소로 갔겠거니 추측할 수 있었다.



흥정은 한두 번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다른 동행이 계속 밑으로 밑으로 가격을 불렀다. 숙소 주인의 일그러지는 표정이 보였지만 다른 사람들은 개의치 않은 듯해 보였다. 계속 가격이 내려가다 누군가 오케이를 외쳤다. 말도 안 되는 저렴한 가격이었다. 값을 지불하고 나니 주인이 방과 화장실을 안내해 주었다. 손님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표정은 계속 일그러져 있었다. 방은 남녀 나누어서 어디 어디를 쓰면 되고, 화장실과 샤워실은 조금만 나가면 있는 곳이라 알려주었다. 특히, 화장실은 안쪽에도 있지만 이곳만 써야 함을 강조했다.



얼마 안 있어 화장실에서는 악취가 나기 시작했다. 물이 제대로 내려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인에게 말해봤지만 고칠 수가 없다는 말만 반복했다. 숙소 주인의 속내는 알 수 없었고 나는 흥정을 과하게 한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렸다. 다들 어차피 며칠만 있을 곳이니 그냥 참자고 말했다.






사막투어 역시 계속된 흥정 끝에 저렴한 가격으로 할 수 있었다. 가게에 들러 각자 마음에 드는 터번을 사서 머리에 둘렀다. 터번을 두르고 낙타를 타니 영락없는 아랍인이었다. 깔깔 웃으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사진을 서로 사진을 찍어주었다. 터번을 두른 모습, 낙타에 타고 있는 모습.. 심지어 그림자까지 기록할 순간들이 넘쳐났다.



밤이 되면 텐트에서 잠을 잤다. 사막의 밤은 낮과 다르게 매우 추웠다. 말라가에서 마추졌던 동행은 이불을 두껍게 덮지 않으면 매우 추우니 갑갑하더라고 꽁꽁 싸매고 자야 한다고 강조했다. 혹여나 누군가 이미 누운 몸을 일으키기 귀찮아하면, 달려가서 직접 이불을 덮어주곤 했다. 



사막여행엔 가이드가 있었다. 그는 길 안내뿐만 아니라 여행 내내 식사를 담당했다. 그리고 다른 텐트에서 잠을 잤다. 어느 날 밤의 일이었다. 그날 도착한 텐트는 매우 허름했고 저녁 식사도 부실했다. 누군가 불만을 터트렸다.



"저 가이드 우리한테 사기치고 있는 거 같아. 텐트도 별로고 요새 식사도 점점 대충 하는 거 같은데."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돈 줬는데 잘해야지. 이건 아닌 거 같아요"



"한 번만 더 푸대접하면 본때를 보여줘야지"



"현지인은 믿을게 정말 못된다니까요"







아침이 되어 밖에 나가보니 커다란 모래언덕 뒤로 눈부신 해가 빛나고 있었다. 사막에 부는 바람은 모래언덕을 만들기도 사라지게도 하기 때문에 갑자기 언덕이 생기거나 없어지는 건 흔한 일이었다. 하지만 저 모래언덕은 지난밤 바람에 굴하지 않고 어제부터 자리를 지켜고 있었다. 모래 언덕이 오늘도 살아있으면 올라가 보자 얘기한 게 얼핏 떠올랐다.




무작정 모래 언덕에 오르기 시작했다. 다른 동행들은 아직 나를 보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들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모래로 장난을 치고 있었다. 그들을 뒤로 한채 계속 올라갔다. 밑에서 볼 때 한없이 고요해 보이던 언덕은 올라갈수록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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