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 스페인에서 모로코로
스페인 최남단 도시인 타리파. 버스를 타고 타리파에 도착하자마자 여객터미널로 가서 가장 빠르게 출발하는 배를 탔다. 두 시간 정도면 모로코에 도착할 수 있었다. 유럽과 아프리카가 이렇게 가까울 줄 몰랐다. 해가 잘 드는 갑판에 나가 가족들과 영상통화를 했다. 신기하게도 유럽의 바다 국경선을 벗어나자마자 데이터가 끊겼다. 유럽에서 산 유심이니 사실 당연한 일이긴 했다.
배는 모로코 탕헤르에 무사히 도착했다. 하지만 곧바로 이곳을 떠날 생각이었다. 오늘의 최종 목적지는 파란 지붕의 도시 쉐프샤우엔. 이곳은 버스로 갈 수 있다고는 하는데 인터넷에선 탕헤르에서 곧바로 쉐프샤우엔으로 가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지금은 그렇지 않은 것 같지만 당시에는 바로 마라케시로 가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버스 터미널은 걸어서 20분 정도면 갈 수 있는 곳이었다. 구글맵을 보며 길을 가는데 가는 길이 너무 황량했다. 제대로 된 건물도 인적도 없는 길이라 소매치기가 따라오지는 않을까 걱정스러웠다. 그리고 버스터미널은 나타나긴 할까 의심스러웠다. 이럴 때 거의 대부분, 염려한 것처럼 나쁜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다.
버스터미널에 들어서자 모로코에 도착했다는 현실감이 들었다. 터미널 안을 가득 채운 아랍 -엄밀히 말하면 모로코는 아프리카 대륙에 있지만, 종교적 이유로 아랍 문화권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 사람들과 그들의 언어는 타국에 와 있다는 사실을 실감 나게 했다. 유럽에 도착했을 때보다 훨씬 더 이국적이고 머나먼 세계에 떨어진 기분이었다. 처음 한국을 떠나 러시아로 가는 비행기에서처럼 한국 사람이 없는지 살펴봤다. 갑자기 낯설어진 환경에 살아남기 위해 동족을 찾으려는 원초적이고 본능적인 행동이었다.
역시 여행자들이 많이 다니지 않는 경로라 한국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지만 포기하지 않고 몇 번 터미널을 왔다 갔다 하던 차에 의자에 앉아있는 한국인 분을 겨우 발견했다. 그분과 눈이 마주쳤다. 반가운 듯 해 보이나 어색한 기색. 긴장감을 풀기 위해 내가 먼저 말을 걸고 일정을 물어봤다. 둘 다 쉐프샤우엔으로 가는 길이었다. 함께 이동했다 쉐프샤우엔에 도착했을 땐 저녁 무렵이라 숙소부터 잡고 쉬었다.
쉐프샤우엔은 모로코의 산토리니라고도 불린다고 한다. 그렇지만 산토리니가 하얀 마을이라면 쉐프샤우엔은 푸른 마을이었다. 탁한 푸른빛을 띠는 건물들, 골목 사이사이에 진열된 향신료와 갖가지 색깔의 염료를 파는 가게들, 빨랫대에 매달린 옷들.... 조용하지도 번잡스럽지도 않은 마을이었다.
동행분과 어제는 이동하느라 정신없어 하지 못한 대화를 나누며 그분에 대해 몇 가지 알게 되었다. 첫 번째로는 군대를 막 제대하고 오셨다는 것. 비슷한 또래로 보였다. 그렇다면 나와 비슷하게 삶의 의미를 찾아 세상을 향해 뛰쳐나오신 걸까…..?. 두 번째는 말 수가 적고 낯을 많이 가리신다는 것. 제대하고 사회로 나오신 지 얼마 안 되어서인지 혹은 갑자기 나타난 낯선 동행을 대하기 어려워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대화할 때마다 어색함이 뚝뚝 묻어났다. 세 번째는 모로코에 오기 전 인터넷 카페로 동행들을 구했는데 그분들도 이제 쉐프샤우엔에 도착하셨다는 것. 나에게 함께 조인할 의향이 있는지 물어보셨다. 계속 어색하게 지낼까 봐 살짝 걱정스러웠는데 다행이었다.
시내 구경을 마치고 쉐프샤우엔에 도착하신 다른 동행 분들과 숙소 앞에서 만났다. 갑자기 그중 한 분이 나에게 다가왔다.